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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학술·연구일기 (55)
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은용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질서는 흔히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불린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여 형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질서는 주권국가를 기본단위로 하여 이들 간의 평등, 자유무역, 다자주의, 그리고 인권 규범을 근간으로 한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 이 질서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학계와 정책 현장 모두에서 쏟아지고 있다. 브렉시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세계적인 권위주의 득세, 그리고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부과나 군사력 사용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는 그 위기의 증거로 거론된다. 그런데 이 '위기' 담론에는 정작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과연 우리가 “자유주의”라고 불러온 시대는 진정 자유주..
국립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오태희 최근 청년 노동시장을 둘러싼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쉬었음’이다. 통계에서 이 단어는 비교적 담담하고 가치중립적인 표현처럼 제시된다. 취업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며, 정규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도 아닌 청년들 가운데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사람들. 그러나 이 짧은 표현은 우리 사회가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여러 문제를 품고 있다. 주의할 점은 ‘쉬었음’이 청년 비경제활동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경제활동 상태 안에는 취업이나 진학을 준비 중인 청년도 있고, 가사·육아를 담당하는 청년도 있으며, 건강상의 문제나 기타 사유로 노동시장 밖에 머무르는 청년도 있다. 따라서 최근 ‘쉬었음’ 청년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만, 이를 청년 비경제활동..
더스쿠프 한정연 칼럼니스트 미국이 이스라엘과 시작한 이란 전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전쟁은 그 결과나 지속 기간에 상관없이 세계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짙다. 현재 미국 경제와 그 어느 때보다 밀착된 한국 경제에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의 보편적이고 단기적인 피해는 다음과 같은 경로로 전파된다. 단기적 석유 공급 충격은 국제유가 하락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중동의 에너지 가격에는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위험 프리미엄이 붙을 확률이 높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모든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면, 각국 중앙은행은 고물가를 금리 상승으로 상쇄시킬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부가 기준금리를 높이는 통화정책으로 단기간에 물가를 잡겠다는 얘기는..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최은상 뇌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사람의 감정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이러한 화학물질을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한다. 감정 조절과 밀접하게 관련된 뇌 영역에는 전두엽, 측좌핵, 선조체 등이 있으며, 이들은 보상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약물중독은 중독성 약물이 보상계의 정보 전달을 변화시켜 감정을 정상적으로 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뇌 질환이다. 도파민은 감정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마약류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도파민은 보상계에서 일정한 수준으로 분비되어 감정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마약류를 사용하면 도파민 분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강한 쾌감인 유포리아(euphoria)를 경험한다. 이는 과도하게 증가한 도파민 신호가 뇌의 항상성을 무너뜨려 나타..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강사 노희호 바야흐로 효율과 즉각적 반응의 시대이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숏폼의 대중화 등으로 인해 우리 주변의 세상은 한결 간편해졌다. 원하는 정보는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원치 않는 정보마저 다양한 경로로 간단히 접하게 된다. 이 같은 사회의 흐름은 분명 인류에게 편리와 효율을 가져다주었으나, 한편으로는 모종의 착각을 쉽게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마치 내가 세상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거나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래서 한 뼘쯤 더 똑똑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착각 말이다. 나아가 기술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며, 이에 따라 사회 또한 진보할 것이라 믿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성으로 설명되지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전문연구원 안정은 더 강력해진 ‘관세맨’ 트럼프의 귀환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과 함께 더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돌아왔다. 특히 대선 캠페인 내내 자신을 ‘관세맨(tariff man)’이라 부르며 “관세는 미국에게(미국에) 아름다운 것(beautiful thing)”이라고 강조했고, 강력한 관세 정책을 추진하며 전 세계를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4월 ‘해방의 날’ 선언을 기점으로 발효된 보편적 상호 관세 조치는 국제 통상 질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매일 ..
중앙대학교 화학과 석사 임연수 우리는 화학을 보통 반응식으로 처음 접한다. A와 B가 만나 C가 되는 간단한 식을 통해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과정을 설명한다. 이러한 반응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멈추고 평형에 도달한다고 배운다. 교과서 속 화학은 언제나 정리되어 있고 계산 가능하며, 결국 가장 안정한 상태로 수렴한다. 많은 학생들에게 화학은 문제를 풀기 위한 학문이었고 평형은 그 문제의 정답과도 같은 개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화학의 모습이 자연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자연은 우리가 정리해 놓은 반응식처럼 단정하게 멈춰 있지 않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바닷물은 증발과 응결을 반복하며, 세포 안에서는 수많은 분자가 생성되고 분해된다. 우리의 몸은 단 한 순간도 ..
기자 박하늘 요즘 새로운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에 회원가입 해 계정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있다. 바로 가입 약관의 SNS 마케팅 정보 수신 동의 선택을 해제했는지의 여부다. 회원가입 과정에서 약관 전체동의를 눌러버리고 SNS 마케팅 정보 수신 동의 체크박스를 해제하지 않으면 며칠 이내로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기업의 마케팅 정보를 빙자한 광고가 도착한다. 이렇게 도착한 메시지들은 다시 웹사이트 혹은 어플리케이션의 개인정보 탭에 접속해 해지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쌓인다.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튼 하나를 잘못 눌러 결제가 진행되거나 결제해오던 정기 구독 상품을 해지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끝없는 터널에 갇힌 것처럼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러한..
서강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황효진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부터 2025년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기까지, 나는 매주 광장에 나갔다. 내가 운영 중인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의 멤버들과, 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등 총 13개 단체의 연대체인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 퀴어- 네트워크’의 구성원들과.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매주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고 피켓을 높이 든 채 행진했다. 집에서 잠깐 쉬다가도 현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면 남태령으로, 한남동으로, 서촌으로 그야말로 말벌 아저씨처럼 뛰쳐나갔다. 그때의 내겐 광장에 참여하고 탄핵 관련 뉴스를 보는 것만이 중요한 일로 느껴졌다. 그로부터 약 1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 송나현 1.‘독립적인 인간’이라는 말은 어쩌면 구태의연한 지적이 된 듯 하다. 적어도 내가 속한 곳에서는 그렇다. 현재 내가 속한 학과는 페미니즘과 젠더연구에 대한 매우 강한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돌봄에 매우 큰 관심을 지닌 동료들이 많으며, 이들에게 ‘돌봄에 빚져 살아가는 의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일종의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나 또한 그러한 전제를 공유한다. 페미니즘은 돌봄노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의 재생산노동이 여성(성)과 결부되며 가치절하되는 상황과 마주하여, 재생산노동의 재가치화와 평등한 분배를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더하여, 에바 키테이(Eva Kittay)와 같은 여성학자는 돌봄을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역량(capa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