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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20호] 다른 여럿의 삶이 온전히 여럿으로 남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이 지금은 단지 기억 속 한 귀퉁이의 먼지 쌓인 유물이 되고만, 그 과정의 체념과 회한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꿈은 이룰 수 없는 한에서만 꿈일 수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작 문제는 왜 우리는 다 다르면서도 또 다 같은 삶을 사는가 하는 거예요.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호에서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다른 삶도 가능할까? 언제부터인가 삶의 여러 가능성들이 하나의 보편적 형상으로 통약되더니 이제는 여기서 벗어난 삶을 상상하기가 힘든 지경이 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각자의 삶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라 부를 수 있는, 공인된 삶을.. 더보기
[119호] 감수성 감정이 메말랐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기쁘거나 화가 나지도 않고 슬프거나 유쾌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이외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갸우뚱해집니다. 우울한 것만도 아닌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이 또한 풍부한 감정을 요구하는 까닭에 스스로도 이게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편의상 ‘애매한’ 감정이라고 부를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애매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상황을 더 애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연기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혼자 있을 때 혹은 여럿 중에 혼자 섬이 될 때는 어느새 이 애매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남들이 웃을 때 울고 울을 때 웃을 수 있으면 차라리 낫겠지만 남.. 더보기
[118호] at issue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는지라(그렇다고 잘한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거죠.) 학교 와서 집에 갈 때까지 책만 보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이래저래 눈짐작으로라도 챙겨보려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건들이나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의 경우 아무래도 놓치고 말 때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이게 도무지 나랑 무슨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건의 경우, 아예 관심조차 안 가질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먹고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관심을 가질 여유도 의지도 점차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이러다 꼰대가 되는 건 아닌지 무서워지더군요. 아뿔싸. 부랴부랴 신문을 펼칩니다. 이것저것 주간.. 더보기
[117호] 선데이 서강 시대를 풍미했던 잡지 선데이서울을 기억하시나요? 형용색색의 겉표지는 보기만 해도 뭇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냈지요. 표지 한 가운데서 이상야릇한 웃음을 띠고 있는 여배우는 왠지 모를 두근거림으로, 쳐다만 봐도 얼굴 빨개지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새처럼 대놓고 야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야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뭐랄까 왜그런 거 있잖아요. 야릇함은 적나라한 노출보다는 보여줄 듯 안보여줄 듯 애태우는 긴장 속에서 나오는... 으흠! 흠! 암튼 여기에는 짐짓 점잖은 채하면서 안 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흘깃거리면서 쳐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길거리 자판 앞을 지나갈 때면 저 잡지 안에 어떤 별천지가 있을지 너무도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내 기회를 포착.. 더보기
[116호] 아, 논문 아, 어렵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가슴이 답답해 한숨을 크게 내쉽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을 겪으면서 좋았던 성격도 자꾸만 날카로워 집니다. 열심히 써보자는 반복된 다짐은 애초의 절실함을 잃어버리고 통과만 하자라는 안일함으로 바뀌어 갑니다. 누군가가 논문에 대해 물을 때마다 화를 내거나 혹은 애써 쓴 웃음을 짓는 것도 일상다반사의 일이지요. 공부를 시작했을 때의 열의와 포부도 어느 샌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하는 후회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신에 대한 연민 내지 분노로 조금씩 희석되고 맙니다. 취업한 친구들이 차례로 결혼을 하더니 심지어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유행가 가사가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게 느껴집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더보기
[115호] 그대 이름 이곳에 우리가 이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쉬운 물음이 아닙니다. 어쩌면 저마다 답이 다 다를 것 같아요. 아마도 이들을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에 따라 혹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요. 지금 대학원을 다니는 우리들에게 이들의 이름은 조금은 생소한 하지만 낯설지는 않은 애매한 이름일 것 같습니다. 박종철이나 기형도의 이름은 특히 그렇지요. 김수영도 고등학교 때 배운 시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나마 유재하나 김광석은 음악으로 남아있기에 조금 익숙해 보입니다. 혹시 이들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리운 나머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분들도 계신가요? 아, 저기 한분 계시네요. 전태일이라고요? 얼마 전이 전태일 열사 40주기였지요. 그런데 아직 처음 질문에 답을.. 더보기
[114호] Media + Logic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합니다. 아이폰이 어떻고 갤럭시가 어떻고 구글폰이 어떻고. 하지만 이 변화를 따라갈 만큼 기민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핸드폰이 어떻기에 이리 호들갑인지 의구심을 갖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샌가 트위터를 하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청와대에 사는 독수리 타법의 ‘누군가’도 하는 트위터인데, 트윗질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팔로우가 뭔지 RT가 뭔지 도무지 헷갈리기만 한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 블로그도 있네요. 글 좀 쓴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블로그를 잘 꾸며야 한다더군요. 블로거라는 명칭이 자기 소개란에 쓰인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글로벌하게 활동하려면 페이스북이라는 것도 해야 하나 봅니다. 이참에 전자책을 사야할지도 모.. 더보기
[113호] 연애, 열애, 열외 두 사람에게 뻗어나온 선(線)이 말과 감정과 몸의 형태를 빌어 서로 섞인다.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를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 몸들은 접촉한다.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농밀하게, 양자를 잇는 현(絃)은 쉴 새 없이 진동한다. 사람 사이의 연(緣)이 ‘붉은실’로 표상되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연애(戀愛), 즉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행위는 말과 감정과 몸을 이용해 너와 나를 얽는 하나의 망(網)을 함께 자아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을 구성하는 선들이 서로 마찰하며 붉은 빛깔의 열기를 방사하는 상태를 우리는 열애(熱愛)라 부른다. 하지만 연애에서 열애로의 전위에는 부정적인 계기가 함축되어있다. 이전의 성긴 망은 열애를 통해 점차 틀에 박힌 직물(織物)로 재단.. 더보기
[112호] 공-간 空-間, 비우고 띄우다 권력은 공간(space)을 분할함으로써(barred) 자신의 역량을 생산한다. 이곳과 저곳, 안과 밖, 그리고 나와 너를 나누며 권력은 자신의 영토를 구축해낸다.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바는 ‘이미 완성된 권력’이라는 통념에 대한 부정이다. 권력은 분할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급적으로 구체화된다. 폴리스가 비오스를, 문명이 야만을, 서구가 동양을 특정한 양태로 대상화하며 밀어내(고 포섭하)는 과정의 이면에는 폴리스-문명-서구가 자신의 내부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 있었듯이 말이다. 푸코의 논의를 차용하자면, 권력은 권력의 적용 대상으로부터 자기 구축의 지지점을 마련한다. 권력 행사와 권력 생산은 따라서 동일한 차원에서 파생되는 권력의 두 가지 효과인 셈이다. 하지만 권력은 항시 불완전하다. 이는 현존하는 권력.. 더보기
[111호]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과 그 떨림 속에 담긴 잔잔한 울림을 느끼고 싶습니다. 말 할 때마다 찡긋거리는 미간과 살짝살짝 내비치는 웃음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턱을 괴고 있는 당신의 얼굴이 그립습니다. 진실이 있다면‘나’에게도‘너’에게도 아닌 바로 나와 너‘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당신의 말이 한없는 진실로 느껴집니다. 나만의 바람일까요? 당신 또한 나와 같겠지요? 수많은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수많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우리’라는 허망한 일체감을 두지 않고 끝까지 ‘사이’로 남겨둔 채, 때로 말하고 때로 듣고 때로 그냥 머물고 싶습니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아직 들을 준비가 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