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2.03 23:37

이정민(KAIST 인문사회과학부 대우교수)


근대과학의 이념

1245년 파리 대학. 얼마 전 자기 스승을 따라 옮겨왔다는 한 학생. 스물이나 되었을까? 선생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흰 옷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모습에서 교단에 몸담은 수사임을 알 수 있다. 강의 주제는 최근에 이 대학에 들어 온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난해한 개념과 미묘한구분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경청한다.“자연을 탐구 할 때에는 창조주 신이 자유 의지에 따라 창조한 모습이 로 무너지기까지 자연에 대한 기본 탐구 방식이었다. 이렇게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도 실험이나 관찰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가 중시되었다는 점에서 중세 대학은 근대 대학과 같은 연구 기관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에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을 흡수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에서 진정한 지식을 아닌, 자연 안에 내재한 원인에 따른 운동 그 자체를 탐구 해야 합니다.”순간 빛이 스쳐 지나간다. 자기가 몸 바칠 일생일대의 기획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 학생, 밤이면 노안의 선생을 위해 서기로 일하며 자기 학문을 이룰 날을 꿈꾸던 이 청년이 이후 수백 년간 유럽 대학과 가톨릭 교회 모두에서 권위로 군림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Aquinas, 1225-1274)이다.

시간과 장소를 바꾸어 166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강의가 한창이다. 한 학생, 강의는 딴전이고 노트에 무엇인가를 끌쩍거린다.

Amicus Plato amicus Aristoteles
magis amica veritas
플라톤은 (내) 친구, 아리스토텔레스도 내 친구,
하지만 내 진정한 친구는 진리



 

『어떤 철학적 의문들』(Quaestiones quaedam philosophicae)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노트 전반부는 이 학생이 수업에서 배웠을 법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윤리학 그리스어 필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만의 당당한 선언대로 위 표어 이후 고대의 저자들은 다시 등장하지 않고, 대신 자연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자유로운 사고와 실험에 대한 구상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노트의 주인공이 훗날『프린키피아』와『광학』을 저술하고 근대 물리과학을 정초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다. 13세기 무렵부터 유럽 이곳저곳에 세워지기 시작한 대학은 처음에는 상인이나 장인들의 길드와 같은 학생과 교사의 조합(universitas, 영어로 corporation)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들이 교과 과정의 중심으로 내세웠던 것이 12세기부터 아랍 세계에서 수입되어 번역되기 시작한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들이었다. 그리고 아퀴나스와 그의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처럼 이들 저작과 기독교 성서, 교부 저작을 해석하고 주석을 다는 학문 탐구 방식을 보통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대부분을 포괄하며 특히 자연에 대한 탐구(곧 지금 우리 과학이 담당하는 영역)인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 철학은 전통 신학과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1210년과 1277년 두 번의 금지령) 아퀴나스와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유럽 대학에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이것이 근대 초기 과학 혁명을 뜻하는‘과학’(scientia)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원리들을 발견하는 활동이 아닌, 일반 원리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끌어내고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활동을 뜻했다.

이러한 연역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원인 개념으로 이러한 원인은 우리가 아는 사실이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 개념에 충실하지 않은 탐구 형태, 예를 들면 원자론이나 수학이 들어간 과학(mixed sciences, 곧 잡학)은 과소평가되어 학문의 주변부로 밀려났고, 반면 신은 자체원인 또는 제일 원인으로 불리며 형이상학의 중심 주제로 들어섰다.

그런데 근대과학, 특히 경험주의에 중심이 되는 한 경향은 위와 같이 원인 개념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원인(anti-cause)은 물론 원인에 대한 탐구 전체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어떤 결정적인 지점에서 설명과 체계의 완결성만을 위해 원인을 꾸며내는 것에 반대하는 개념이다.‘결정적인 지점’이란 뉴턴이 말하는바,“실험으로 보일 수 있는 이상”을 뜻하며 이렇게“현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원인에 대한 진술을뉴턴은 가설이라고 불렀다.“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hypotheses non fingo)는 뉴턴의 선언은 바로 이러한 학문 탐구 방식의 거대한 전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원인이 중세 자연철학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대변하는 표어인 반면 근대과학의 이념을 긍정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말로 기계론(mechanism)과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을 들 수 있다. 기계론은 보일의 비유대로 자연을 시계와 같이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파악하려는 생각이다. 곧 자연 과정은 시계 톱니바퀴처럼 입자 알갱이들이 서로 맞물려 운동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기계론은 색깔, 냄새, 소리와 같은 눈에 보이는 감각 성질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 성질과 운동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강한 환원주의(reductionism)의 성격을 띠며, 이러한 환원주의는 비단 17세기 역학뿐만 아니라 19세기 통계물리학, 최근의 분자생물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성공 사례 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철학적 입장이 되었다. 여기서 환원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마치 근대과학과는 조화될 수 없는 신념으로 보는 태도 또한 생겨나게 되었다.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은 보일이나 뉴턴이 기존 자연철학과 자기들의 자연 탐구 방식을 구분하기 위해 쓴 말이다. 이는 물론 우리가 아는 실험을 통해 자연을 탐구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러한 실험과 결부된 여러 복합적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곧 실험에 뉴턴의 대학시절 노트. 1660년경 어떤 철학적 의문들 중에서 색에 대해 대한 강조는 현상을 원인에 대한 가설보다 중시하는 사실 존중의 태도를 함축함과 동시에, 그러한 사실 또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필연적인 원인이 아닌, 실험 결과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모든 과학 법칙이나 진술에 남기게 된다. 곧 원인에 대한 가설이라는 것도 단지‘시험해’볼 수 있는 명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이렇게 우리가 무엇이 맞을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험해 본다는 뜻의‘실험적’(experimental)이 그 원래 의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근대과학은 바로 이 의미에서‘실험’과학이며 그러한 실험으로 확립된 법칙이나 이론은 어디까지나 개연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관측이나 실험을 하게 되면 언제든 이와 모순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흔히 과학적 태도라고 알려진 사실이나 증거를 편견 없이 열린 자세로 바라보는 태도는 그 자체로 근대과학에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다 이러한 실험 철학이라는 뿌리 깊은 이념에서 파생된 결과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근대과학 이념에는 과학 단체나 저널과 같은 제도적 장치, 교육을 통한 이념의 보급, 신학과 조화와 대립과 같은 외부 요인을 포함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도 근대과학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과학 제도나 문화 형성에는 이러한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지금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자연 탐구 방식에 높은 가치를 두는 문화가 17세기에 유럽에서 형성되었고, 이것이 인류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와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근대 학문에서는 모든 인식적 가치가 과학 위에 세워지게 되었고 사회(과)학, 의학 심지어는 인문(과)학 또한 과학을 표방하는 학풍이 조성되었다. 이렇듯 근대과학 이념은 대학이라는 제도 또한 알아볼 수 없게 변화시켰고 이제 더 이상 고대 저자에 대한 언쟁과 주석이 아닌 현상에 대한 탐구와 실험이 대학을 채우고 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을 밀어낸 지금의 과학 이념 또한 새로운 이념에 의해 밀려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과학 또한 매우 거대하기는 하지만 하나의 이념이며 지금 우리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이념이 미래에 탄생할지 모른다. 근대 과학의 이념에 대한 탐구는 이러한 길을 열어놓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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