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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08호] 소크라테스에게 길을 묻다


엄정식(철학과 명예교수)

소크라테스에게 길을 묻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과 고대 아테네의 역사적 상황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시민들에게“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치던 그 절박한 상황이 우리의 입장과 놀라울 정도의 유사점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엄청난 거리가 가로놓여 있고, 또 급속한 과학 문명의 발달로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양자 사이의 유사점에 주목하고 이것을 문제 삼는 이유가 무엇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 더 본질적인 요소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사점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아테네를 통해 한국을 보다

우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 구도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아테네는 오늘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였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했던 반면, 스파르타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산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적 평등과 국가적 일체감을 강조하였다. 사실 그러한상황에서 싹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조국의 분단을 초래하고 남북한의 대결을 첨예화했다고 볼 수도 있는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분단의 구조가 한민족의 발전을 저해하고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들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아테네와 남한 사이에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여 상업주의가 정착되고, 이에 따른 개인주의적 민주화 과정이 급속하게 진전되었다는 유사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이 가치의 창조에 관여하게되며, 따라서 극도의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혹은 가치의 다원화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치적으로 반영한 것이 자유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상업화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업주의가 팽배해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걷잡을 수 없이 욕구가 분출하고 이해가 서로 충돌해서 투쟁과 분규가 끊길 날이 없고, 허술한 통치 체제를 틈타서 각종 부정과 부패, 퇴폐와 향락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아테네와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세번째 유사점인 것이다. 아마 이 밖에도 고대 아테네와 현대의 우리나라 사이에는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분단의 대결 구조 및 퇴폐와 향락을 조장하는 상업주의 그리고 민주화란 미명 하에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정치 풍토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표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던져진 소크라테스의 질문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소크라테스의“너 자신을 알라”라는 외침은 지금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시민들을 향해서도 울려 퍼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우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다음 자기의 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적 무지의 자각에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의 행적과 죽음에 임하는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들을 놀랍게도 많이 추적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개방적이고 비판적이며 반성적 생활 태도 그리고 자율성, 합리성 및 도덕성을 강조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 중 한 사람이면서 다른 성현들과 달리 제자를 거느리거나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질문을 계속 던짐으로써 지식이나 지혜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도록 도와주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떠한 선입견이나 전제를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누구와도 기꺼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에서 개방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어떠한 종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논증을 통해서 검토한 후 그 결과만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비판적 합리성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정치적이든, 지적이든 혹은 종교적이든 무조건적 권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비판적인 태도는 그것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까지 겨냥함으로써 절정에 달하였고, 이것은 곧 삶 전반에 대한 반성적 태도로 이어졌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그는 결국 아테네 시민들의 분노를 자초했고 당시의 정권으로부터 외면당했지만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그것은 성숙한 시민의 바람직한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믿으며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각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인권의 신장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 구조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접근 방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위대한 면모는 역시 그의 이른바 ‘철학적 순교’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결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 집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지인들의 배려로 탈옥의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 준법정신, 신과의 약속 이행 등으로 그들의 권유를 거절하고 독배를 마신다.물론 이러한 그의 입장에 대해서 우리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가령 국가관이나 종교관 혹은 법리적 해석에서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기 전에 고려한 세 가지 사항, 즉 자율성, 합리성, 공평성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민주 사회의 토대 : 자율성, 합리성, 공평성

소크라테스가 생사의 기로에서 맞이한‘도덕적 상황’에서 우선 염두에 둔 것은 개인의 자율성이었다. 무슨 결정에 도달하든 그는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친지의 충고나 관습 혹은 주위의 억압이나 위협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을 능동적으로 판단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그는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였다. 여기서 그가염두에 둔 것은 감정에 치우치거나 충동에 의해 행동하지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합리적 사고나 이성적 판단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특전이며 최선의 기능이라는 것을 그는 확신하였다. 특히 상황이 절박하고 위태로울수록 더욱 냉철한 이성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결과가 지닌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로운지 혹은 해로운지가 아니라 과연 옳은 것인지 혹은 그른 것인지만 고려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판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자신에게 해롭다고 하더라도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면 그것을 선택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도덕성의 기초이자 정의의 원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도출한 덕목은 이 밖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한 그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는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의 자질을 갖추는 데 특히 중요한 사항들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자세를 견지할 수 있다면 사회적 혼란을 줄이고 질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인 자만심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전횡과 부패, 종교적 권위와독단에도 숙고와 반성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