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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11호]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과 그 떨림 속에 담긴 잔잔한 울림을 느끼고 싶습니다. 말 할 때마다 찡긋거리는 미간과 살짝살짝 내비치는 웃음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턱을 괴고 있는 당신의 얼굴이 그립습니다. 진실이 있다면‘나’에게도‘너’에게도 아닌 바로 나와 너‘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당신의 말이 한없는 진실로 느껴집니다. 나만의 바람일까요? 당신 또한 나와 같겠지요? 수많은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수많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우리’라는 허망한 일체감을 두지 않고 끝까지 ‘사이’로 남겨둔 채, 때로 말하고 때로 듣고 때로 그냥 머물고 싶습니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된 까닭이겠지요. 당신의 말을 듣는다고 해놓고 결국 내 말만 늘어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말을 듣기 전에 우선 내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나요? 혹은 당신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건 아닌가요? 선생이 학생에게 무엇이든지 말해보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러지는 않았나요? 혹시 그랬다면... 미안해요...

지면을 통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내 말만 늘어놓았네요. 당신은 겸연쩍어하는 나를 보고 웃네요. 나도 웃습니다. 반성은 그 자체로 진실을 담고 있다는 당신의 위로가 힘이 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간직하려는 당신과 나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편집장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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