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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0호] 대학원에서 성정치를 말하다


캔디.D (서강대학원 석사과정)



변함없이 잔존하는 성폭력적 요소들, 여성 대학원생으로서 겪는 불편함들, 남성 위주의 행정과 시스템들 등 남성 편향적 질서는 대학원 공간 내에 여전히 뿌리 깊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현실들을 살펴보고 이들을 성정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해보고자 한다.

대학원과 성정치를 이야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 든 생각은 ‘대학원은 성(性)적으로 폐쇄적인 곳이고, 그 안에서는 아무 이야기도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니 대강 그런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 아니겠어?’였다. 그런데 과연 대학원이 ‘폐쇄적이고 아무 이야기도 못하는 곳’이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 가능한 곳일까? 최상위층 학문기관이라는 정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 대학원이라는 공간 아닌가. 대학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가지고 생각해보자. 
 
대학원 현실의 단면들

상황1. 대학원 4학기생인 A. 논문을 지도받기 위해 교수님과 매일같이 상담을 하고 지도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교수님과의 친분은 쌓여가는 것이 당연한 일. 어느 날 교수님이 밤늦은 시간에 A를 불러 술이나 한잔 하면서 논문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도교수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는 일. 찾아간 술자리에서 교수님은 ‘논문을 위해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제안을 거절한 A. 다음날부터 교수님은 A에게 논문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서 계속 논문을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상황2. B는 대학원생 모두와 교수님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교수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런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B양은 학교에 고발을 했고, 교수님은 징계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후 B가 논문을 쓸 시기가 되자 어떤 교수님도 B양의 지도교수를 해주지 않으려했고, B는 결국 논문을 쓰지 못하게 된다.

상황3. C는 동성애자이다. 정체성과 무관하게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학과내의 어떤 사람이 C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고, 주위사람들에게 그를 아웃팅 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그 후 C는 학과 사람들과 동석하는 자리가 있을 때 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수군거림에 괴로워하고 있다.

상황4. D는 트랜스젠더이다.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대학원 생활은 쉽지가 않다. 교수님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나눠가며 이야기하고, 그때마다 자신을 설명하는 D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D는 학문을 공부하는데 왜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은 대학원뿐만이 아닌 어떠한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일이 대학원이라는 공간과 맞물렸을 때 학문을 지속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권력관계와 연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학부와는 다르게 자신의 ‘현실적인 미래’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A와 B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논문에 타격을 받게 되며, C와 D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에 시달리며 이후 학문의 지속에 고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 아닐까?

이런 대학원에서 과연 성정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장 개인적이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처럼 개인의 정체성, 연애,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들은 이 공간 안에서 다양한 의미로 거듭난다. 그리고 권력과 맞물리면서 다시 한 번 정치적인 의제로 떠오르게 된다.

개인적인 삶에서 정치적 의제로

나는 여성(female/woman)이며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고 트랜스젠더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며) 여성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어느 누가 나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만약 여성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했다면, 그리고 학과의 다른 대학원생들이나 교수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들은 나를 긍정해 줄 것인가? 아니, 긍정을 떠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대학원 내의 성정치에 대한 생각은 나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에서 시작이 된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은 “대학원은 학문을 하는 곳일 뿐 아니라 그러한 학문의 다양성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과 열린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감이었다. 4학기동안 그런 기대감이 충족되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다들 각자의 학문에만 몰입하고 있었고 공부 이외의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차이’를 이해는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듯 보이는 학자들의 모습은 당황스러웠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문이 학문을 위한 학문으로 남는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러한 학문을 공부하는 이들이 바꿔나갈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불안감도 동시에 일기 시작했다. 또한 뭔가 좀 더 소통하고 싶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욕심과 동시에, 그러한 나의 욕심이 나의 학업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민이 됐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했을 때 들어줄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이며 들어주는 사람들이 과연 나와 함께 고민할 것인가, ‘차이’있는 생각을 가진 개인을 ‘차별’하지 않을 것인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도대체 성정치가 뭐라고 끊임없이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다면, 세상엔 나와 같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학문을 공부하든지 간에 당신은 학문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민하지 않는 이상 당신의 삶 또한 이해받지 못 할 수 있으며, 학문을 위한 학문에 머무르게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 또한 당신이 불편하게 생각하던 그러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차이에 대한 긍정, 단순한 정답의 실천

나를 발견하는 일, 그리고 차이를 긍정하는 일에서 성정치는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의 성정치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학문과 권력의 정치로 가득 차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떠한 성정치를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태도로 그것들을 마주해야 할 것인가. 처음에 이야기한 몇 사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저들의 사건과 고민의 해답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저런 사건들에 대해서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치기어린, 악에 받친, 혹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행동’ 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가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정답일지도 모른다.

이런 단순하고 간단한 정답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 그 정답을 향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는 이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르지만, 그 불편한 시선이 지지와 동참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대학원 안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고민의 시작일 것이고 또한 대학원에서의 성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