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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11호]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의 저자 이석영을 만나다

사람들은 과학 지식의 대부분을 입시 교육 과정에서 배운다. 하지만 이 또한 단편적인 지식들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기자 역시 빅뱅 우주론의 기본 아이디어만을 알고 있을 뿐 우주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이론으로서 빅뱅 우주론을 체계적으로 접한 적은 없었다. 이석영의「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은 제목 그대로 빅뱅 우주론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천문학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에게 우주의 탐구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로 연결될 수 있음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속에 담겨 있는‘천문학’,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이 이름은 밤마다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 만큼이나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7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남북 10000 킬로미터 한반도만 생각해도 벌써 머리가 혼미해진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인류의 진정한 고향이자 근원인 우주 앞에서, 그 무한한 심연 앞에서 느낄 현기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빅뱅 우주론이 현재의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아름다운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전까지의 빅뱅 우주론은 수학자들의 시각으로 볼 때 조금 불편한 면이 있었어요. 그때 제기되었던 세 가지 문제점이 우주의 편평도 문제, 우주의 지평 문제, 원시 입자의 문제였어요. 대표적으로 편평도 문제 같은 경우,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수학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작은 확률을 가진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런데 암흑 에너지가 그 부분을 채워주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초신성 연구를 통해 빅뱅 이론이 수학적으로도 매력 있는 이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암흑 에너지 개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 분야가 이 분야이기도 합니다. 암흑 에너지가 100개도 안 되는 적은 숫자의 초신성 연구를 통해 관찰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프로젝트들은 1000개, 10000개의 초신성을 통해 암흑 에너지를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있어요. 규모가 크기 때문에 팽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훨씬 정밀하게 알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탐구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는 진공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지만, 이론적 예측과 실제 값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직 수수께끼로 남겨진 부분이 많습니다.

● 천문학에선 하나의 의문점을 풀기 위해 대단히 많은 이론들이 서로 경합을 해왔는데요. 그렇다면 현재 빅뱅 이론에 도전하고 있는,‘우주의 시작과 지금’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은 없나요?

20년 전까지만 해도 빅뱅 이론에 대치되는 이론이 있었는데 그것이 정상우주론이에요. 이것은 정적인 상태가 유지된다는 이론으로, 우주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대략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무(無)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팽창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이론이죠. 그러나 허블 망원경을 통해 은하들이 서로 멀어져가고 있다는 걸 발견한 이후엔 점차 사라지게돼요. 다시 말해 지금 빅뱅 이론 외에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단지 빅뱅 이론 내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최초의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보다는, 일단 시작했다고 가정한 뒤 어떻게 팽창했는가, 어떻게 물질이 생기고 별과 은하가 생겼는가를 연구하는 식이지요. 또 지금까지는‘어떻게’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요즘은 최초의 빅뱅이‘왜’생겼는가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물질에는 입자가 있고 반입자가 있듯이, 우주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지역이 있는 반면, 같은 공간이지만 다크섹터(Dark Sector)라는 암흑의 세계도 있다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지요. 쉽게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영향을 주는 섹터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주로 입자물리학에서 많이 연구되는 분야인데요. 우주에는 알 수 있는 물질과 알 수 없는 물질이라는 이항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대표적으로 입자와 반입자, 전자와 양전자의 존재입니다. 이처럼 관측되지는 않지만 알 수 있는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알 수 없는 물질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지요. 연구자들은 이 상호작용의 증거가‘중력’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만약 이게 증명이 되면 바리온 이외의 임계밀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요. 정리하면, 빅뱅 우주론에 대적할만한 다른 우주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빅뱅 우주론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들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천문학이라고 하면 우주인 이소연 박사를 가장 먼저떠올릴 정도로 아직까지는 천문학이 보편화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학지식의 대중화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까지 크게 활동을 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이 책을 낸 이후로 그러한 요청들이 많아졌죠. 그리고「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이 예상보다 많이 읽히는 걸 보고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해 관심이 있구나하고 느꼈고요. 실제로 연세대학교에서‘우주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맡고 있는데, 한 학기에 약 400명 정도가 들을 정도로 인기가 굉장히 높아요. 저는 학기 초와 말에 학생들에게 강의에 대한 소감을 꼭 적어서 제출하게 하는데, 학기 초에는 다들 천문학에 대해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다가도 학기말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굉장히 좋은 평가, 재미있다는 평가를 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지요. 강압적인 교육 때문에 수학과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기회가 없고 점차 과학에 대해 낯설어지게 되거든요. 안타깝게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지긋지긋한 대상으로 생각해버린다는 거예요. 학생들을 보면 대체로 과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사실 국가 전체로 보면 엄청난 손해예요. 학생들이 수학∙과학 등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배워보면 재미있는데도 말이지요. 결국 이는 대중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요.그리고 실제로 고정관념을 깨고 과학지식의 대중화에 힘쓰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컨대 조경철 박사의 경우, 우리 같은 아폴로 세대들은 TV에서 그분의 강의를 들으며 천문학도의 꿈을 키웠거든요. 오늘날에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때 학자로서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대중교육 활동을 하다보면 대중의 요구는 많아지게 마련이고 그 요구들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학자 본연의 자세인 연구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하시며 연구 활동을 하셨는데, 세계에서 한국 천문학의 위상은 현재 어떠한지 궁급합니다. 또 앞으로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일단 한국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국가 인지도가 낮다 보니까 국내의 학자들도 마땅히 인정을 받기가 어렵고요. 개별 연구자들이 연구를 잘해도 국가 인지도가 낮으면 연구 활동을 인정받는 게 늦어지는 것이죠. 현재 한국에서 천문학 박사 인원이 150명 정도인데 이는 매우 작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규모에 비하면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 자체는 활발한 편이에요. 그래서 다른 학문들과 비교할 때, 규모에 비해 국제적 위상이 높다는 생각을 하고요. 올해 물꼬를 틀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대 망원경인‘대 마젤란 망원경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죠. 이 망원경은 2017년에 완성 예정인데요. 거울 면적이 현존하는 망원경의 거의 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망원경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한국이 관측 시간의 10%를 사용하게 되었죠. 이건 엄청나게 비약적인 발전이에요. 미국의 연구 인력이 우리의 50배인데, 그들이 5~60%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한국이 10%를 사용한다는 것은 관측여건이 엄청나게 좋아진 거라고 보시면 돼요. 과거에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였다가‘스바루’라는 8.4m짜리 자체 망원경을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그 이후에 천문학적 위상이 높아졌지요. 우리도 이 망원경이 완성되면 아마 위상의 변화가 있을 겁니다.

● 관측 여건이나 기기의 발전에 의해 위상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편인가요?

그렇습니다. 자연과학은 이론보다 실험에 더 많은 바탕을 두는 학문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큰 발견이 실험을 통해 이뤄져요.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여태껏 할 수 없었던 새로운 해상도로 이미지를 볼 수 있다든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파장 영역의 빛을 볼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측을 통해 과거에 갖지 못한 정보를 가지게 되면 급격한 지식의 진보가 오는 것이고요.

● 선생님께서 2006년에 발표하신 논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논문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은하는 나선 은하와 타원 은하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나선 은하는 별이 생성되는 은하이고 타원 은하는 별이 생성되지 않는 은하이지요. 지난 100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타원 은하는 별을 더 이상 생성하지 않는, 죽어가는 은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많은 타원 은하가 아직도 별을 생성하고 있다는 자외선 특징을 발견하게 됐어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 발견으로 정리 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타원 은하도 별을 생성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어떤 타원 은하는 별을 생성하고 어떤 은하는 별을 생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제기되죠. 왜 어떤 타원 은하는 별을 생성하는데 어떤 타원 은하는 그러지 않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지요. 제 연구는 이 의문을 기반으로 하나의 이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타원 은하만의 특징은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있다는 것인데, 이 블랙홀이 잘 알려졌다시피 주변 기체를 빨아들이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기체를 뜨겁게 달구는 역할도 해요. 그런데 별이 생성되려면 기체가 차가워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기체가 있어도 별을 생성하는 것을 막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주장한 것은 타원 은하 중심의 블랙홀에 의해 타원 은하 내의 별 생성이 조절된다는 이론이었어요.

● 현재 진행 중이신 프로젝트와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은하 형성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저와 우리 연구팀의 목표입니다. 천문학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대상이 은하에요. 별과 우주에 대해서는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대상이 은하거든요. 은하의 생성에 대한 질문이나 거대 은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미완의 질문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거대 은하의 경우 작은 은하 수천 개가 충돌과 병합을 하면서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아직 이론적으로 다 기술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은하에 대한 이해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가 100점이라면 아직 10점정도 수준에 와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만큼 은하 이론은 천문학에서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는 분야라고 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제 희망사항은, 연구를 하기 시작한지 10여년 정도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은하 연구를 하는 그룹을 하나 만들어서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에요.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영역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천문학에 남아 있는 최고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 그룹을 만들어 내는 것이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제 소망입니다.

●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연구자의 입장에서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갖는 의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선 매력이 다르지요. 응용학문은 자기가 아는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매력이 있어요. 반면 순수학문은 그와는 다른 의미로 재미있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사상의 지평을 넘는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세계 최초로 안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을 알았을 때의 희열이라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지요. 콜럼버스의 경우를 떠올리면 쉽게 공감하실 겁니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희열, 나머지 수억의 사람들이 꿈도 못 꾸는 세계를 현실로 보았을 때의 재미라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랙홀을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저는 블랙홀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 심지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요. 지금도 저는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토론한 뒤 집에 가는 게 아쉬워요. 아침에 일어나면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자신의 직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퇴근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아요. 그러한 기쁨이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김지현 객원기자 / 정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