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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12호] 공-간 空-間, 비우고 띄우다

권력은 공간(space)을 분할함으로써(barred) 자신의 역량을 생산한다. 이곳과 저곳, 안과 밖, 그리고 나와 너를 나누며 권력은 자신의 영토를 구축해낸다.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바는 ‘이미 완성된 권력’이라는 통념에 대한 부정이다. 권력은 분할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급적으로 구체화된다. 폴리스가 비오스를, 문명이 야만을, 서구가 동양을 특정한 양태로 대상화하며 밀어내(고 포섭하)는 과정의 이면에는 폴리스-문명-서구가 자신의 내부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 있었듯이 말이다. 푸코의 논의를 차용하자면, 권력은 권력의 적용 대상으로부터 자기 구축의 지지점을 마련한다. 권력 행사와 권력 생산은 따라서 동일한 차원에서 파생되는 권력의 두 가지 효과인 셈이다.

하지만 권력은 항시 불완전하다. 이는 현존하는 권력이 단지 ‘과정’에 놓여있어서, 즉 아직 완성된 권력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이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대상이 권력에 붙들려 있는 것만큼이나 권력은 분할이라는 과정에 붙들려 있다. 다시 말해 권력이 분할 없이 존재할 수 없기에 이 분할 자체가 불완전하다면 권력도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로 많은 분할들이 현존한다. 법이란 이름, 그리고 자본이란 질서에 의해 배제되고 격리되는 삶들이 생겨난다. 물론 배제와 격리의 과정에는 필히 갈등과 모순이 발생하며 이 구체적 갈등과 모순들이야 말로 분할의 불완전성을 예증하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 사건은 쉬이 은폐․망각되고, 이에 권력의 분할선은 재차 매끈해진다. 때문에 필요한 것은 은폐와 망각을 넘어서는 일, 권력의 분할을 끊임없이 재사유하는 일이다. 이는 매끈한 권력의 분할선을 구부림으로써 권력의 분할 자체에 저항하는 것이자, 동시에 잠재되어 있는 갈등과 모순을 드러내어 분할의 불완전성을 현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하지만 동시에 이 묶음에 저항하는) 글들을 실어보았다. 각각의 글이 가진 특이성들을 쉬이 환원시켜 얘기하는 것은 무리일 테지만 공간과 함께 권력을, 다시 말해 공간을 분할함으로써 생산되고 작용하는 권력을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평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대학원신문이라는 이 지면-공간 또한 분할의 동력動力을 탈각시키는(barred->bar) 자리, 즉 분할된 공간(barred space)에서 현재의 권력을 조금이라도 비워내고 저항의 여백을 산출(space bar)하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편집장 곽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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