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광장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우리는 광장이란 상상적/실재적 공간이 새로운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는 지점이라 쉬이 낙관할 수 있는가. 근대적 광장의 탄생과 중간계급의 욕망을 결부 짓는 필자의 논의를 통해 광장이란 공간에 내재하는 간극을 톺아보고, 이 모순된 공간을 사유로 횡단함으로써 발생할 새로운 민주주의 현실화를 전망해본다.
이택광(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
근대 도시는 광장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었다. 도시는 곧 정치적 민주주의의 물질적 구현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프랑스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서울’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실행하고 있는 다양한 ‘(재)개발정책’은 이 19세기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던 ‘오스망화’ Hausmannization 를 연상시킨다. 21세기 한국에서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환영을 발견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국에 온 프랑스 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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