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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13호] 연애, 열애, 열외

 


두 사람에게 뻗어나온 선(線)이 말과 감정과 몸의 형태를 빌어 서로 섞인다.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를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 몸들은 접촉한다.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농밀하게, 양자를 잇는 현(絃)은 쉴 새 없이 진동한다. 사람 사이의 연(緣)이 ‘붉은실’로 표상되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연애(戀愛), 즉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행위는 말과 감정과 몸을 이용해 너와 나를 얽는 하나의 망(網)을 함께 자아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을 구성하는 선들이 서로 마찰하며 붉은 빛깔의 열기를 방사하는 상태를 우리는 열애(熱愛)라 부른다.

하지만 연애에서 열애로의 전위에는 부정적인 계기가 함축되어있다. 이전의 성긴 망은 열애를 통해 점차 틀에 박힌 직물(織物)로 재단되곤 한다. 그리고 이 꽉 짜인 직물은 이미 얽혀있는 선의 이탈과 구조의 재배치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집착, 의무, 강요가 연애 관계를 물신화 하고, 이에 연애의 망은 연애의 주체들을 결박하는 포승줄로서 기능한다.

또한 연애가 타자와의 무한하고 부단한 접속을 추동하는 것만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연애는 접속의 단절을, 즉 열-외(列-外)를 야기한다. 동성애가 소크라테스에겐 하나의 선택 가능한 연애 방식이었지만 현재에는 일탈이듯, 한 사회 내에는 ‘정상적인 연애’ 라는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연애 방식이 현존한다. 그리고 이 정상적인 연애는 보편자의 위치에서 다른 양태의 접속들을 비정상의 범주로 열외 시킨다. 표현컨대, 차이와 특수성을 환원∙수렴하는‘동일성의 소용돌이’는 타자성과의 접속을 긍정하는 연애 내에도 침윤해 들어와 있는 셈이다.

두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어짐과 나뉨, 접속과 분할, 포섭과 배제의 사태를‘정치적인 것’이라 할 때, 열애와 열외의 계기를 동시에 함축하는 연애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신화적 순수성으로 그 열외적 동학을 효과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연애야말로 정치적 사유의 개입이 시급히 필요한 이데올로기적 기표라 하겠다. 아무쪼록 우리의 연애가 끊임없이 접속-탈구되며 무한히 탈주하는 열띤 모험이 되기를 기대하며, 연애의 동학을 톺아보는 글들을 실어본다.

편집장 곽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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