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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4호] 블로그, 디지털 리터러시의 시작과 끝



장상미 (함꼐하는 시민행동 미디어팀장)

블로그에서 트위터로, 유튜브로, 페이스북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강자가 탄생하며 진화해가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는 완결된 형태의 방법론, 즉 정답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오히려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험하고 공유하며 다음 단계의 힌트를 찾아내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능력, 즉 디지털 리터러시는 기존의 교육 시스템이나 조직, 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의 흐름에 공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고 발현된다. 우리는 웹2.0 혁신과 함께 등장한 블로그를 통해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블로그란 무엇인가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블로그란 무엇인가?’란 오래된 질문으로부터 말문을 열어보려 한다. 블로그란 과연 무엇인가? 선뜻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렵다면 지금 당장 구글에서 ‘블로그란 무엇인가’라고 입력해 보라. 누구는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일기장 같은 것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손쉬운 정보전달기능을 가진 ‘1인미디어’라 말하며, 개인을 구성하는 하나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온라인의 실존, 즉 페르소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정의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블로그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유독 컨텐츠의 생산 기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 블로그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쓰는 사람은 누구인지, 실제로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기술하며, 더 나아가서는 이른바 ‘파워블로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힘주어 설명한다. 이러한 정의 방식은 블로그를 하나의 새로운 ‘매체’라고 전제하는 시각에서 출발해, 사람들로 하여금 이 ‘파워풀한 신매체’를 통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발신할 것인가에 몰두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기대로 블로그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신대륙이 생각만큼 그리 신통치 않음에 이내 당황하기 마련이다. 자유로운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나가는 과정은 나름의 기획력과 정성을 필요로 하고, 또 공들여 쓴 글들이 아무에게도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할 땐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주요 포털과 전문 블로그 사이트에 가득한, 주인 잃고 방치된 무수한 블로그들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이미 블로그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선언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1인미디어를 넘어 소셜미디어로

그러나 블로그는 단지 컨텐츠 생산의 새로운 도구가 아니라 컨텐츠를 매개로 수많은 개인‘들’의 연결망을 탄생시켜온 요람이다. 양적인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에서 블로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개인은 단지 나만의 공간에 나만의 이야기를 쓰거나 보관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신/공유하는 정보를 매개로 다른 이들과 의견을 나누고 (코멘트), 연결되고 (링크, 트랙백), 구독받고 (RSS), 추천되면서 (메타블로그) 생명력을 키워왔다. 더불어 검색과 링크로 블로그에 방문하는 개인들은 그곳에서 정보를 발견하고, 소통하며, 가치를 매기고 관계를 맺어왔다. 이 같은 블로그의 진화과정은 온라인 공간이 전자적인 정보의 연결망에서 유기적인 개인‘들’의 연결망으로 진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고, 2010년 현재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만개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 시대를 뒷받침하는 징검다리이자 허브로서 기능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열심히 멋진 글을 써서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을지를 골몰하던 개인들은 이제 검색과 링크, 그리고 SNS를 통해 부담없이, 그러나 적극적으로 의미있는 정보를 골라내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블로그를 바라보는 시각도 생산 중심에서 유통과 소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여전히 생명력 있는 블로그의 절대수는 적을지 모르나, 블로그를 통해 발신되는 메시지들은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 이런 생산, 유통, 소비과정이 공존하는 공간이 곧 현재의 소셜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공유하고 창조하고, 고로 존재하는 개인의 탄생

블로거 ‘혜민아빠’(http://sshong.com)의 경우를 보자. 웹기획분야의 일을 하면서 2005년부터 책 서평과 여행기를 주로 다루는 블로그를 운영해온 그는 2007년 들어 그간 서평을 올린 책을 방문자나 이웃 블로거들과 나누는 북크로싱을 시작했다. 초기 언론의 조명도 있긴 했지만, 책과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한 이 소통과 만남의 새로운 방식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이 열기가 곧 열두 차례의 자발적인 블로거 포럼으로 이어졌고, 혜민아빠는 이후 저자 인터뷰를 연재하는 전업 인터뷰어로 직업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이 모두 블로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그의 블로그는 다양한 소통방식을 실험하며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하는 소셜미디어의 전시장으로 변신해가고 있다.

또 다른 블로거 ‘민노씨’(http://minoci.net)의 경우는 어떠한가. 진보정치와 시사 이슈를 주로 다루는 블로거로 비교적 초기부터 잘 알려져 왔지만 실제로 민노씨는 새 글을 갱신하는 것보다 각 글의 링크와 덧글을 통해 교류하고 소통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인 편이다. 그러는 사이 블로깅은 어떤 주의나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 욕구와 감성으로부터 발현되는 일종의 개인화된 행동주의로 발전해왔다.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부터 2010년 상지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거 거창한 일 아니에요. 즐거운 일입니다’라며 일상과 우연한 인연의 연속선상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블로거 벗들’을 호출해왔다. 그리고 2010년 봄, “우리도 뭐 좀 해봅시다!”라고 외치며 10여명의 블로거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기획한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는 블로그-트위터로 확장된 연결망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서 생동감 있는 이야기마당을 만들어 내었다. 인터넷 실명제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열린 자리였지만 발표자들은 제각기 평소에 가져왔던 블로거로서 스스로의 고민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고, 참석자들은 다시 그런 고민에 반응하면서 트위터로, 블로그로 의제를 재생산해나갔다. 결과적으로 이 공간은 민노씨의 것도, 기획에 참여한 블로거들의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SNS를 통해 전 과정이 기획, 진행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Ignite Seoul의 기획자 정진호의 경우를 보자. 야후코리아에 근무하면서 사진공유서비스 플리커를 통해 공유의 매력을 알게 된 그는 가족과의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들을 꾸준히 공개했고, 이 사진들은 때로 위키백과에 인용되거나 공공기관의 관광홍보자료에 인쇄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었다. 더불어 업무프로세스와 의사소통에 관한 기법이나 노하우를 담은 슬라이드 발표자료 등을 수시로 블로그에 게시했는데, 탁월한 감각과 세심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그의 자료들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대부분의 자료를 조건없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공유의 중요성과 재미를 재치있게 강조해 주었다. 그런 그가 트위터를 통해 ‘20장의 슬라이드로 나누는 5분간의 이야기’를 제안했을 때, 이 새로운 실험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신뢰는 놀라울 정도로 강렬했다. 150명의 청중과 13명의 발표자가 한자리에 모여 벌이는 가을 저녁의 프리젠테이션 파티는 기획과 현장 진행, 자료공유와 평가, 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열의로 가득했다.

공유하고, 창조하고, 고로 존재하는 개인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태어나고 자라나가고 있다. 사례로 든 이들은 이미 ‘파워블로거’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단지 독보적인 ‘파워블로거’로서만 존재하지 않으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공존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블로그 역시 필력으로 자웅을 겨루는 장으로서보다는 서로 보완하고 채워가면서 인식의 틀을 넓혀가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한 학습장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블로그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까? 소셜미디어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규모면에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기능적으로는 오히려 SNS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통해 생산, 유통, 소비의 과정이 공존하는 소셜미디어 환경의 촉매제로서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장으로서, 공유하고 창조하는 개인들의 요람으로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시작이자 끝으로서 블로그는 그 존재가치를 유지해 갈 것이다. 그것이 언제까지며 그 다음 주자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궁금하다면 그저 뛰어들어 부대끼고, 함께 걸어가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