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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4호] 세대의 문화정치와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의 미래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미학/문화연구)


맑스가 강조했듯이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와는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 던져져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조건 자체에 순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그 조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적 구조와 주체 사이에 변증법적 긴장이 발생하고, 각 주체들이 상이한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이념과 감정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며, 결과적으로 세대 간 단절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세대 간 갈등과 단절을 다룬 연구들이 꾸준히 제시되었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세대 간 단절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입각하여 사회변동의 흐름을 전망하기보다는 세대 간 화합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자는 식의 도덕적 ‘봉합’에 매달려 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진보적 관점에서 사회변동을 분석하고 전망을 예측하려는 연구들에서는 세대 문제는 계급과 지역이라는 쟁점에 가려져 진지한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구사회에 비해 근 8배에 달하는 빠른 속도로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한 한국사회의 경우 한 세대 남짓 경과할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무려 아홉 세대의 사회적 삶이 응축되는 결과가 야기되었다. 때문에 한국인의 삶의 지층에는 토플러가 제1물결, 제2물결, 제3물결이라고 불렀던 농경사회적, 산업사회적, 정보사회적인 변동의 층위들이 만들어낸 “삼겹살” 형태의 아비투스와, 그 이외에도 4.19에서 촛불항쟁에 이르는 민중항쟁의 주기적 폭발에 따른 이질적인 감정 구조가 겹쳐졌다. 그 결과 계급-지역 내의 세대 차이가 계급-지역 간 차이보다 더 큰 단절을 만들어낼 정도로 사회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386-촛불세대의 공유경험과 새로운 진보 이념의 가능성

계급적·지역적 차이가 이렇게 복잡한 역사적 무늬와 리듬을 따라 각 주체에게 다른 방식으로 투사되고 분배되고 체화되는 방식의 차이가 곧 세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계급투쟁의 리듬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에도 세대 간 차이와 유사점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세대’의 문화정치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현재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세대 간 차이의 주된 특징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2010년 현재 한국사회 구성원들을 70세 이상의 6.25세대(해방세대/전후세대; 70세 이상), 개발세대(4.19세대/유신세대; 70~50세), 386세대(5.18세대/6.10세대; 50~37세)와 신세대 이후 세대(신세대/IMF 세대/촛불세대; 37세 이하)의 4개 범주로 대별해 보면 그간의 ‘압축 성장’에 따른 개발의 최대이익을 받은 세대는 단연코 6.25 세대와 개발세대이다. 하지만 이들의 4분의 3은 대부분 사회의 중추 기능에서 퇴장했고, 나머지 유신세대(58~50)가 사회의 중추관리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밑에서 반쯤 보상받고 반쯤은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간 386세대가 현재 한국사회 허리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2014년이 되면 5.18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고, 유신세대는 퇴장하며, 그 뒤를 이어서 6.10세대가 오고, 이들 세대가 사회의 중추를 관장하는 기간이 무려 12년에 걸쳐 지속된다. 또 2014년 촛불세대는 20대 후반에 진입하며 2024년에는 사회적 생산의 주 역할을 담당하는 30 대 후반이 된다. 이는 곧 2014년을 전후로 해방 65년 동안 개발독재와 보수화의 주축이 되어왔던 6.25세대와 개발세대가 퇴장하고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진보의 주축이었던 386세대와 이들의 자식 세대인 촛불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386세대와 촛불세대는 부모-자식 관계로서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하나는 2002년 월드컵 광장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촛불항쟁이다. 이 경험은 다른 세대의 부모-자식 간에는 공유할 수 없었던 독특한 경험들인데 이 두 가지 공유경험, 즉 미디어를 매개로 한 문화적 축제 형태의 집단적 소통 경험의 공유는 2014년 이후 새로운 진보적 이념과 감정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감성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개방적인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 두 세대는 그에 앞선 세대들이 비록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일 수 있어도 문화적으로는 대부분 보수적이었다는 점에서 내적 모순을 지녔던 것과는 달리, 축제적 향유, 디지털 네트워킹, 페미니즘, 생태주의적인 문화혁명적 의제들을 글로벌한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치경제적 진보와 사회문화적 진보를 유기적으로 결합해낼 수 있는 가능성에 근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카오스 혹은 네크워크

많은 이들이 어림짐작하듯이 2013~14년은 마치 1929년 대공황이 1930~45년 사이의 세계사적인 이행의 출발점을 이루었던 것과 유사하게 향후 10~20년이 소요될, 세계사적인 이행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세계적, 지역적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계급투쟁이 전면화되고, 새로운 진보이데올로기와 보수이데올로기가 격돌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때 새로운 진보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양상을 예측할 수는 없으나 ‘역사적 공산주의’나 ‘역사적 사회주의’에서 올바로 구현되지 못했던 프랑스 혁명의 이념, 즉 자유-평등-박애의 동시적 구현에 더하여, 68혁명 이후 세계화된 반인종차별, 페미니즘, 생태주의, 문화혁명의 이념 등이 결합된 복합적 형태의 새로운 진보의 이념이 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반면, 새로운 형태의 보수이데올로기는 총자본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과거 파시즘과 유사하면서도 발전된 과학기술과 미디어를 이용하여 더욱 격화된 방식의 선택과 배제의 기술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파시즘 X’). 이 두 가지 경향 중에서 어느 쪽이 향후 이행과정에서 우위를 획득할 것인가는 예측하기 어렵고 또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할 때 무엇보다 고려해야 할 점은 세계체계가 점점 더 큰 카오스적 요동 상태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체계가 안정되어 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는 구조와 행위의 변증법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자의 시기에는 주체적 행위가 웬만해서는 안정된 구조에 변화를 야기하기 어렵다. 반면 후자의 시기에는 작은 행위라도 소위 ‘나비 효과’를 야기하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지식인운동과 사회운동 등은 여러 층위에서 새로운 진보이념의 형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있던 운동 단위들 간의 연대 역시 지지부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체계의 카오스적 요동이 더욱 커지게 되면, 다양한 행위 주체들의 노력이 체계의 다른 성원들에게 미칠 영향과 체계 자체에 미치게 될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체계의 요동이 격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글로벌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네트워크적인 접속 경험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과 그렇지 않은 세대들 간의 차이가 점점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카오스적 요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위키피디아, 플릭커, 페이스북, 트위터,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개방성’과 ‘공개성’을 특징으로 한 다양한 소셜 미디어들의 급속한 증가와 이를 통한 새로운 주체적 행위들의 문화정치적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셜 미디어에 기반한 문화교육적 실험이 필요한 때

그러나 네트워크 문화의 일반화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는 신기술의 확산이라는  흐름이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진보의 엔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공황의 전조 속에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감정 구성체가 억압적-예속적 주체화의 길로 나아갈 반동적 감정 구성체로 전락하게 될 위험도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성적 네트워크를 넘어서 자유-평등-박애의 해방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되, 차이를 긍정함과 동시에 연대를 증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진보적 감정구성체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문화교육적 실험들이 필요하다. 물론 대다수가 경제적 생존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고 긍정적 감정을 지닌 자율적-연대적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허황한 구호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태우고 있는 체계 자체가 극심하게 요동치고 있을 때 이 낡은 체계와 더불어 익사하지 않고 급류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각각의 주체가 자본의 체계로부터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자율적 주체들 간의 새로운 연대를 구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혁신하려는 노력을 시작할 때라야 찾아질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새로운 체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기나긴 이행의 과정에서 연대의 끈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보적 가치를 ‘체화’한 긍정적 감정의 구성체일 뿐이다. 이런 새로운 감정 구성체를 부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순한 지식-정보의 차원을 넘어서 진보적 가치를 몸으로 체화할 수 있는 감성-인성-지성-신체적 역능의 통섭, 다중지능적(multi-intelligence)인 소통의 활성화를 촉진할 새로운 문화교육적 실험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소셜 미디어가 향후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2030세대가 이런 형태의 문화교육적 실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