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8. 19:00


조성호-(이하 성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어떻게 읽었어? 1930년대 소설치곤 구보 박태원의 도시적 감각이 굉장히 세련되더라고.
정미지(이하 미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거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던데? 그런데 서울 풍경은 많이 달라졌잖아.
성호- 그렇긴 한데 오늘날의 우리가 당시 경성을 거닐던 구보와 같은 도시적 감각을 여전히 느끼고 있을까? 벌써 70여 년이나 흘렀잖아? 도시풍경이 변한만큼 구보와는 다르게 서울이 느껴질 법도 한데.
미지- 글쎄, 그럼 우선 구보가 처음 산책을 떠났던 곳부터 출발해보자. 여기가 구보의 집이 있던 청계천이지?
성호- 어, 근데 구보가 집을 나선 이유가 재미있었어. 글로 먹고 산다지만 딱 26세의 남자다워.
미지- 구보는 결혼을 재촉하는 어머니 잔소리에 쫓기듯 집을 나섰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산책하거나 구경하러 나왔네. 그런데 ‘천川’ 이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영 어색한 것 같아.
성호- 오늘은 더 그러네. ‘세계 등 축제’ 행사한다고 물 위에 설치된 저것 좀 봐.
미지- 지난 6월에는 지방선거에 투표하자는 피켓으로 가득했거든. 꼭 여기는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통보하는 곳 같아.
성호- 국가차원에서 복원 한 건데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 아냐? 하긴 투표하잔 국가홍보라는 게 얼마나 먹히는진 며느리도 모르지만.
미지- ‘자연’을 복원했다지만,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아?
성호-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저렇게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사막의 오아시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눈요기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유지비가 장난이 아니긴 하지만.
미지- 시멘트 위에 흐르는 물이 어떻게 자연이야. 진짜 자연을 즐기는 게 아니라 그냥 저걸로라도 위안을 삼는 거지.
성호- 위안도 위안이지만, 저런 축제처럼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지.
미지- 그런데 저기 나라별 정치인 인형들 모아놓은 곳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인형에 오스트리아 옷을 입혀 국제적으로 망신당했다고도 하지? 청계천 복원이든 세계 행사 유치든, 나라에서 생색내는 것뿐이지 그렇게 자랑스럽게 다가 오지는 않는 것 같아.
성호- 그렇게 생색낼만한 일이 서울시민에게 꼭 불필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저기 보이는 덕수궁에서 하고 있는 전통행사처럼.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다리 곁에 가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미지- 내가 매번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항상 똑같은 수문장 교대식을 하고 있더라구. 궁중의상을 입어보는 코너도 마찬가지고.
성호- 하긴, 평민 옷 입어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으니까.
미지-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 임금만 있었던 건 아니잖아.
성호- 그렇긴 한데 덕수궁 정도 되니까 궁중문화를 전통으로 재현해야겠지. 또 화려하기도 하고.
미지- 장소로만 보면 그렇긴 한데, 궁중문화가 꼭 전통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또 아이러니한 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소수였을 왕이나 귀족의 흉내를 내는 걸 좋아한다는 거야.
성호- 민주주의 사회니까 절대권력에 대한 백일몽의 기회도 균등히 주는 거겠지.
미지- 잠깐 즐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을 왕의 입장에서만 자꾸 보면 나머지 다수에 대한 건 묻혀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성호- 현대에서 재현되는 전통이 지나치게 기득권 중심적이라는 얘기야?
미지- 맞아. 저 왕의 옷을 입어보는 아이들에게 만약 전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당시 많은 평민들보다는 높으신 분들의 화려한 모습만 떠올릴 것 같아. 그리고 이건 꼭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성호- 애들보단 어른들이 더 좋아하더라. 아무래도 힘든 시대를 겪어선지 어른들에겐 화려한 전통이 잘 통하는 것 같아. 국사교과서 보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위로부터의 역사 중심이잖아? 게다가 이젠 그나마도 선택과목 신세지만.
미지- 우리는 항상 국사교과서가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전통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려울 거야.
성호- 그럼 도시에서 전통이 재현되는 방식이 중요하겠네. 왜냐면 그런 게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미지- 그렇지. 지금도 국민이라는 단어와 백성이라는 단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왕조를 강조하는 전통 재현은 위험할 수도 있어.
성호- 그래도 덕수궁 같은 게 관광명소로서 서울시의 수익창출에 이바지하는 면도 무시할 수 없겠는데? 청계천 유지비용 대려면 저렇게라도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지. 한 두 푼도 아니고.
미지-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느낀 게 한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서울의 의무감 같은 거였거든. 이왕 재현한다면 다양한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어. 저기 보이는 광장에서 해도 되잖아.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성호- 하긴 그래. 광장 한 켠에 어떤 시민단체가 마련한 무대 위에서 누군가 MB 뭐라고 외치니까 경찰 둘이 그 쪽으로 서서히 다가가는데 분위기 살벌하다.
미지- 몇 년 전만해도 월드컵 응원이나 촛불집회 때처럼 이름 그대로 ‘광장’이라는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곳이 바로 시청광장인 것 같아.
성호- 그래도 명색이 광장인데 보수 중인 청사건물 막고 있던 커다란 가림막에서 하트 손짓 하며 웃는 김연아, 한효주가 무색하다. 오히려 두 사람의 이미지만 손해 볼 같은데?
미지- 그게 바로 대외적 이미지로는 개방된 도시이고 싶은 바람과, 진정으로 개방하고 싶지는 않은 바람 사이의 괴리감 아닐까? 이렇게 넓은 공간인데, 우리는 여기서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답답함을 느끼잖아. 최인훈의 ‘광장’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어디도 갈 수 없는.’
성호- 주인공 이명준은 6.25 전쟁 후 남한과 북한 중 갈 곳을 선택하란 요구를 받고 결국 제3국을 선택할 자유라도 있었지. ‘도시의 자유’란 말도 여기만 보면 순전히 거짓말 같아. 사람들이 모이고 싶을 때 모이는 거지 허락 받고 모이면 그게 무슨 광장이야?
미지- 현재로서는 도시인의 자유보다 자동차의 자유가 더 중요한 거 같아. 여기 광장도, 단지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서 교통혼잡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성호- 우울한 말이네, 그래도 도시인이 자동차만의 자유를 원하는 것 같진 않아. 과거 혁명들만 봐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게 거리를 차지하는 거잖아? 자가용 소유자로서는 광장이 당장 불편할 순 있어도 도시인에겐 광장을 다르게 체험하고픈 심리가 늘 있을 것 같아.
미지- 오프라인에서 의견개진에 대한 제약을 받을수록 온라인 광장으로 더 몰리게 되는 것 같아.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말이 많아질수록 인터넷으로 쏠리게 되고.
성호- 그런데 알다시피 인터넷이란 광장 역시 자유의 공간이 되기 어려워 보여. 일상에서 우린 익명의 사람과 마주치면서도 늘 위협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주장하면 당장에라도 범죄를 저지를 것처럼 취급하잖아? 할 말 있으면 우선 민증부터 까보라는 식이지.
미지- 그럼 우리는 어느 광장으로도 갈 수 없겠네. 정말 ‘어디도 갈 수 없는’ 까닭에 망명이라도 가야 하는 걸까?
성호- 망명이라면 벌써 일부 누리꾼들이 사이버 망명을 떠나기도 했잖아? 당장 우리가 망명 같은 걸 갈 순 없으니 차나 한 잔 하러 가자.

“구보는 차를 마시며, 문득, 끽다점(喫茶店)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를 가져, 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본다.”

미지- 어라. 저것 좀 봐. 외국 커피 프렌차이즈 간판 위의 전통식 지붕이 올려져 있네. 너무 우스꽝스럽다.
성호- 스타벅스가 있는 저 자리는 구보가 머물렀던 조선 최초의 다방인 ‘낙랑파라’가 있던 곳이었대. 플라자호텔과 웨스턴조선호텔 사이에서 한옥지붕 얹은 스타벅스라. 마치 외국 관광객이 상투를 틀고 문화체험 하는 것 같네.
미지- 어디에든 지붕이나 상투만 올리면 한국적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은 너무 게으른 것 같아. 그래도 나름 먹히니까 저러겠지? 저 커피브랜드는 이미 한국에 넘쳐나는데 이제는 ‘전통’스러운 이미지까지도 이용하고 싶은가 봐.
성호- 굳이 저렇게 용쓰며 현지화 전략 안 해도 빈 자리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정말 이 정도 커피 한 잔 값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소설에서도 구보가 틈만 나면 다방에 가서 친구도 만나고 사람들도 관찰하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잖아? 당시에 굉장히 세련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미지- 지금 까페에 많이 가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또 다른 면도 있는 거 같아. 구보처럼 사람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걸 보면.
성호- 그러고 보니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처럼 앉아있는 게 신기하네.
미지- 커피값에는 그런 이중적인 심리도 감안한 비용이 포함된 거 아닐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무관심하도록 개인의 영역을 철저히 지켜주는 게 세련된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성호- 어찌 보면 참 피곤한 경험일 수도 있겠다. 집같이 편한 공간 놔두고 왜 저렇게 나와서 있는 걸까?
미지- 타인들이 옆에 있다고 무조건 피곤한 건 아니지.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가 더 피곤해서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할 수도 있으니까.
성호- 군중 속의 고독이라기 보다 군중 속의 안식을 구하려는 거로군. 여기와는 달리 도시인이 군중 속에서 불편하게 머무르는 곳 중 하나인 지하철에 가 보면 이런 심리를 더 잘 알 지 모르겠다.
미지- 그럼 다리도 아프니 지하철 타러 가자.



“자기는 대체, 이 동대문행 차를 타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대체 어느 곳에 행복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성호- 도시인에게 지하철은 편한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구보가 탔던 전차와는 달리 도시인으로부터 도시풍경을 빼앗기도 하지.
미지- 지하철만큼 도시인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공간은 없는 거 같아. 다른 교통수단과는 달리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어야 하고, 그 와중에 시선을 외면해야 하는 불편한 공간이니까.
성호- 구보가 전차에서 과거에 맞선 봤던 여성을 우연히 만났잖아? 서로 관심 없는 척 하는 공간인 동시에 우연한 만남을 기대해도 좋을 만한 곳이 지하철이지.
미지-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촌락과는 달리, 우연한 만남의 연속인 도시에서 ‘상호무관심’과는 상반되는 운명적인 만남이나 이벤트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을 거고.
성호- 지난 번 언론에서 다뤄졌던 ‘지하철 결혼식’ 사건만 해도 도시인들이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자극하는 사건이었던 같은데?
미지-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에 참석해서 사랑을 축복해 줄 수 있다는 점과, 경제적인 조건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에 대한 기대가 충족됐던 게 아닌가 싶네.
성호- 축의금에 대한 부담도 없었잖아? 현대 도시인에게 잊혀져 왔던 순수한 사랑에 대한 향수가 대표적인 근대문물인 지하철에서 복원된 사실이 재미있네.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데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미지- 벌써 우리 산책의 마지막 장소인 광화문 광장이다. 1년여 만에 만든 거치곤 볼만한데?
성호- 휑했던 시청광장과는 달리 야경이 꽤 화려하긴 하다. 전기세는 엄청나겠지만.
미지- 이순신 장군 없이 세종대왕 동상이 홀로 외로이 있네.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하려고 이순신 동상을 ‘요양’ 보냈다고 하더라.
성호- 왜 하필 서울의 중심이라 할만한 여기에다가 왕과 장군의 동상을 모셔놨을까? 단지 현대인들의 ‘전통’ 영웅들에 대한 숭배라고 단정하기엔 뭔가 좀 찜찜해.
미지- 두 동상이 세워진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순신장군은 박정희 때고, 세종대왕은 MB 땐데, 과거를 현재로 끌어다 이용하려는 것 같지 않아?
성호- 그렇다면 저런 동상건립이 전통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철저히 근대적인 전략이라는 거니? 하긴 이순신하면 위기에 빠진 나라에 백의종군했다는 이미지가 강하고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 훈민정음 창제했다는 소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으니까. 높으신 분들이 탐낼 만도 하네.
미지- 그러고 보니 덕수궁에서 했던 이야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네. 복원이나 전통의 재현을 순수하게만 볼 수 없는 게 도시라는 공간이라는 거지.
성호- 그러고 보니 도시에 사는 건 우리들이었는데 막상 그 공간을 점유하고 정의하는 건 국가였네. 그 동안 익숙하게 걸어 다녔던 도시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넌 어땠니?
미지 - 처음엔 구보한테 많이 동감하면서 산책을 시작했는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던 것 같아.
성호- 다시 글도 쓰고 어머니 말씀도 들을 결심을 하며 귀가하는 구보처럼 우리도 일상을 챙기러 돌아가자.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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