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 2. 18. 19:20



아, 어렵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가슴이 답답해 한숨을 크게 내쉽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을 겪으면서 좋았던 성격도 자꾸만 날카로워 집니다. 열심히 써보자는 반복된 다짐은 애초의 절실함을 잃어버리고 통과만 하자라는 안일함으로 바뀌어 갑니다. 누군가가 논문에 대해 물을 때마다 화를 내거나 혹은 애써 쓴 웃음을 짓는 것도 일상다반사의 일이지요. 공부를 시작했을 때의 열의와 포부도 어느 샌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하는 후회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신에 대한 연민 내지 분노로 조금씩 희석되고 맙니다. 취업한 친구들이 차례로 결혼을 하더니 심지어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유행가 가사가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게 느껴집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는 것만큼 비참한 것도 없겠지요. ‘아,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하는 자조로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도무지 진도는 안 나가지만 책상에 앉아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냥, 계속 앉아만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있었지만 한 줄을 채 쓰지 못하고 연구실 문을 나설 때 느꼈던 자조, 비탄, 우울, 절망, 좌절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말로 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경험이지요. 머리를 쥐어뜯어 봐도 별반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쐴 겸 밖에 나갔는데 하필 지도교수님이 지나가시면서 논문에 대해서 물어보실 때는,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름 좋은 점도 있거든요. 논문이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조금씩 형상을 드러낼 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튼튼한 골격을 이루고 살을 붙여 나갈 때, 무엇을 덜어내고 덧붙여야할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일 때, 고심하는 후배에게 여유롭게 웃음을 날릴 수 있을 때, 선생님의 지적에 쉽게 디펜스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연하기만 했던 논문에 대해 약간의 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때, 바로 이때야말로 지금까지 절차탁마하면서 고생했던 시간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수련의 과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요. 검은색 커버 위에 아로새겨진 금빛 뚜렷한 이름은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한 작지만 충분한 보상이기도 합니다. 왜 논문을 자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논문이 ‘끝판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 덤볐는데, 만신창이가 다 되도록 달려들었는데, 그래서 기진맥진한 채 겨우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정작 끝판 왕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논문을 다 쓴 뒤 뭔가를 이룩했다는 성취감 혹은 후련함도 잠시, 온통 계약직만 구하는 구인 사이트 앞에서 다시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지요. 그러고 보면, 아마도 끝판 왕은 영영 안 나타나나 봅니다. 다만 끝판 왕이라고 생각하고 덤비고 쓰러지고 다시 덤비는 과정만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매번의 끝은 또 매번의 시작과 그렇게도 가깝게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 끝판 왕이라고 생각하고 덤비지 않았다면 논문도 취업도 다른 어떤 것도 넘어서기(통과)가 어려웠을 겁니다. 
 
이번 호는 논문을 말 그대로 ‘통과’하고 졸업한 선배들의 논문으로 꾸며봤습니다. 아울러 이 과정 속에서 가열하게 체득한 여러 노하우들도 소개합니다. 논문을 쓰고 계시거나 쓰실 예정인 여러 학우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아, 한 가지 잊은 게 있네요. 논문 쓰는 선배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주세요. “선배, 논문 잘되고 있어?” 좋은 자극제가 될 겁니다.

편집장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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