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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17호] 학문적으로 잘 훈련된 소수를 배출하는 학과가 되어야

조현지(불문과 박사 과정)

서강대 불문과 대학원의 자부심은 무엇보다도 양질의 수업

저희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은 현재(2011년 1학기) 두 명의 박사과정과 두 명의 석사과정 그리고 세 명의 논문 등록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사 졸업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할 학생과 논문을 준비하면서 휴학 중인 학생들을 합하면, 위의 인원보다 조금 더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열 명 남짓한 대학원생들이 수업을 듣기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가끔 국제 문학 포럼 등에 참여하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면서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서강대 불문과 대학원의 자부심은 무엇보다도 양질의 수업에 기인합니다. 불문과의 교수님들은 불문과가 지향할 바가 학생이 많은 학과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잘 훈련된 소수를 배출하는 학과가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히, 한국에서 불문학을 공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언어적인 부분을 포함한 학업적 성취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은 매우 긴장도 높게 진행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번 학기에 진행 중인 말랭 교수님의 기호학 수업은 프랑스에서는 1년(8개월) 과정이지만 서강에서는 1학기(3개월) 안에 진행이 됩니다. 또한 다른 과목들은 매 시간 각자가 발표 분량을 담당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저희가 소수학과이다 보니 누리는 혜택입니다. 학생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매주 수업 중에 자신의 글을 발표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어로 수업을 하면서 외국어로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각자에게 돌아간다는 점 역시 소수학과이기에 누리는 혜택 중 하나입니다. 몸은 좀 힘들지만, 수업 중에도 충분히 개별적인 지도를 받고 있다는 든든함과 어느 대학 못지않게 강도 높은 학문적 훈련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불문과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생활하니, 서로 불어 해석에 관한 의견을 묻거나 선배님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프랑스의 최근 학계의 동향이나 문단의 흐름, 작가나 신간 서적에 관한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진다는 점이 좋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신 선배님들, 또 프랑스를 자주 오가시는 선배님들이 이따금씩 들리시니 그분들의 경험을 통해서 유용한 정보들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문화에 대한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또 우리의 문화적 바탕에서 프랑스적인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우리가 외국인으로서 프랑스 문화를 존중하며 탐구해야 하겠지만 수용에 있어서는 늘 선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요. 외국 문학과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담당하게 될 사람들이기에 늘 프랑스의 문학 및 그 바탕이 되는 사회, 문화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주시하게 됩니다.

인문학적 사고가 반영된 인문관 공간 배정을 기대하며

그런데, 이렇게 연구실에 도란도란 모여서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최근 새로 짓는 인문관 연구실 배분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연구실은 저희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는데 필수적인 공간임에도 소수학과라는 이유로 연구실 배정에서 우선순위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과 연구실의 중요성을 인원수로 파악하다니, 이것은 지성의 산실인 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은 학과가 우선시 되고 소수학과는 상황논리에 맞추어 고려된다면, 이는 시장을 관리하는 기업의 경영논리를 따르는 것일 뿐 인문학의 가치를 인식한 선택은 아닙니다. 인문학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학과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사회 내에서 학문 간 존중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존중은 공간의 물리적인 배분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인문대에서 소중하지 않은 학과는 없으며, 오히려 소수학과는 소수이기 때문에 독립성을 보호받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사고가 반영된 인문관 공간 배정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