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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8호]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Mundus?)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Mundus?)
- 전 세계로 번진 재정위기로 위협당하는 세계경제 -

장시복(목포대학교 경제학과)

전 세계로 번진 재정위기

세계는 재정위기로 중병을 앓고 있다.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는 아일랜드를 거쳐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해 재정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유럽연합이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에는 유럽연합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이 문제는 10월 위기설로 나타나고 있다. 10월에 유럽 주요국의 국채만기가 도래하면서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1년 8월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면서 재정위기는 이미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스탠다드앤푸어스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무리하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어찌됐든 이번 강등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향후 경기위축을 겪게 될 것으로 보여 재정위기는 단기에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재정위기가 미국 혹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가 공통으로 겪고 있으며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문제임을 잘 보여 준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미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또한 미국의 재정위기가 유럽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재정위기의 악순환’이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 국이 이 위기를 시급하게 풀지 못한다면 세계경제는 더 심각한 상태로 내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부채의 폭탄 돌리기

그런데 이번 위기에서 주목할 점은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민간부채가 국가부채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재정위기에 대한 각 국 정부의 대응은 부채 자체의 수준을 줄인 것이 아니라 부채를 떠안는 주체를 자본에서 국가로 이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재정위기는 자본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채문제는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부채규모는 GDP 대비 1.5배였는데, 이 비율은 2005년에는 3.5배로 계속 늘어나 지금은 전 세계 GDP 44조 달러에 맞먹는 수준이다. 부채의 증가는 모든 경제주체에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가계, 비금융기업과 금융기관, 정부 모두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가계부채의 경우, 주택경기 호황에 따른 주택 재융자와 신용카드 부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비금융기업도 기업매수와 합병이 유행처럼 퍼지고 주주자본주의 압력으로 차입금을 빠르게 늘리면서 대규모 부채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채 증가의 대부분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연유한다. 예를 들어 미국 금융부문의 부채는 1970년 초 전체 부채의 10%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5년 이 비중은 전체 부채의 1/3수준으로 늘어났다.

금융기관의 부채 증가와 함께 특히 자본을 유동화한 가공자본과 이를 재가공한 금융상품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예컨대, 주식은 이윤에 대한 청구권을 자본화한 수익증서로서 의제자본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일정한 금액을 신용화폐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시장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주식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대학등록금 대출과 자동차 할부 등 화폐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는 많은 금융상품들이 신용공급을 위해 유동화 되었다. 게다가 유동화 된 자본은 다시 재가공되었다. 이번 위기에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잘 드러난 것처럼 금융자본은 ‘그림자 금융시스템’을 통한 투기적 차익거래(speculative arbitrage)를 노리고, 유동화한 금융상품을 다시 쪼개고 분할하여 파생금융상품으로 재가공했다. 그리고 이 파생금융상품은 다시 2차, 3차 파생금융상품으로 재가공 되어 전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경제에서 금융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나타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0년 4월 세계 외환시장 1일 평균거래액은 3.9조 달러였다. 이 돈 대부분은 무역결제대금이 아니라 외환거래, 선도거래, 옵션 등의 금융거래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돈은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1일 평균거래액 3.9조를 우리 돈으로 환산(1달러=1,000원)하면 3,900조원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약 3.9배에 달하는 돈이다. 이 돈이 1년 돈안 움직인다면, 그 금액은 1,423조 달러에 달하며 우리 돈으로는 142경 3천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이처럼 금융투기에 기름을 붓고 동시에 금융투기가 더 많은 부채를 유도하는 상승작용이 벌어지면서 세계경제는 금융세계로 휩쓸려 들어갔다. 또한 금융에서 차익을 얻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이 뛰어들면서 금융위기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세계경제는 늘 불안정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위기는 금융에서 나타난 부채 폭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황으로 부채가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떠안아야 하는 짊이 되었으며, 정부가 이 부채를 금융안정조치와 경기부양대책으로 떠안으면서 자본의 위기가 국가의 재정위기로 전화된 것이다.

재정위기 해결의 곤란함

문제는 전 세계로 번진 재정위기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2006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대공황으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경기부양책의 약발이 다해가면서 세계경제는 ‘더블딥(double deep)’에 빠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으며 이윤율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실업률도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소비, 투자의 모든 영역에서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의 실물부문에서 더블딥이 발생하면서 재정위기는 더 심각해 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면 세계경제의 회복을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경기회복으로 세입이 늘어나야만 재정적자를 축소하여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아 실물경제의 추락을 저지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당분간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와 실물위기를 동시에 겪게 되면서 재정위기의 악순환을 쉽사리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면 감세정책을 철회하거나 공공부문의 긴축적 구조조정 등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정책들은 정치 갈등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부자감세를 철회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공화당과 티파티(Tea Party)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정치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부자 스스로 세금을 내겠다는 주장마저 계급투쟁의 문제로 몰아가는 분위기에서 긴축이나 감세철회로 재정위기를 해결하려는 정책은 정치 갈등을 양산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위기를 해결하려는 대책이 쉽사리 도출되기는 어려워 보이며 장기화될 가능성마저 높아 보인다.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최근 월스트리트에 분노한 미국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자”는 구호아래 시위대는 금융자본의 탐욕과 부패, 정권유착 등을 질타하고 사회적 불평등에 항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월스트리트를 넘어 시카고, 뉴멕시코, 워싱턴 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노암 촘스키, 마이클 무어와 같은 저명한 인사들도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다른 한편 재정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재정위기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공지출 삭감에 항의하고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에 대한 지원 강화를 요구하며 영국,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에서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분노가 정부의 행동을 전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재정위기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각 국의 시민들은 삶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막대한 손실을 만들고도 엄청난 퇴직금을 챙긴 금융 경영자들, 엄청난 금액의 구제 금융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금융시장,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경기부양책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시민들의 고통이 커지면서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윤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에 공분하는 시민들은 이렇게 묻는다. “좋은 시절 당신들은 자본주의의 미덕인 사유재산을 옹호하며 모든 과실을 가져갔다. 공황이 발생하자 당신들은 “우리가 망하면 모두가 망한다”며 구제 금융을 당연시했다. 그리고 이제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당신들은 다시 자본주의의 미덕을 내세우며 감세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느 별에서 왔는가?”

향후 세계경제는 재정위기의 여파로 인한 금융 불안정과 실물 경기위축으로 재정위기가 더 심각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재정위기의 악순환은 단순한 경제문제로 끝나지 않고 정치의 위기, 삶의 위기로 확대·심화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분노한 시민들은 재정위기가 세계대공황을 넘어서 정치와 삶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음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혼돈의 시대! 세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Mun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