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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118호] 학교는 조정자로서 최선 다했나?


조성호 기자

지난 9월 8일, 정하상관(이하 J관)의 준공식이 열렸다. 홍보실 자료에 따르면, J관은 인문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새롭게 개편된 국제인문학부를 포함해 국제대학원, 국제지역문화원, 교육대학원 등의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중 J관 5층에 자리가 마련된 국제대학원은 10월 현재 여전히 김대건관(이하 K관)에 머물러 있다. 이사날짜를 깜빡한 것일까? 취재 결과, J관 5층의 적막함 속에는 서강대의 뿌리 깊은 소통 문제가 숨어 있었다.

문학부, 국제대학원이 자꾸 무리한 요구하면 곤란

국제대학원 입주를 둘러싼 갈등의 전말은 J관 공간배정 논의의 진행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기획처 관계자는 건설위원회가 공간배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J관이 착공되기 전인 2010년 2월, 제7차 건설위원회에서 입주계획안이 확정되었는데, 이를 두고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부터 문학부와 국제대학원, 학교 측 사이의 입장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학장 직무대행을 맡아 문학부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국어국문학과 김경수 교수(현재 기초교육원장)는 애초 확정된 계획안 자체를 바꾸려는 국제대학원의 요구에 비판적이다. 아울러 J관이 국제인문관으로서 2001년부터 논의돼 왔던 ‘문학부 국제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간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국제대학원이 입주하기 때문에 ‘국제’라는 말이 붙은 게 아니라며 지난 5월 학칙개정으로 출범된 국제인문학부를 언급했다. 덧붙여 J관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문학부를 한 자리에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교수 연구실이 늘어난 것에 비해 대학원생에게는 공간이 충분히 배정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공간배분에 있어 공정성을 기해야 할 학교 측에 아쉬움을 표하며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다 같이 손해보고 들어오는 공간인 만큼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국제대학원 입주 논의가 원만하게 해결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국제대학원, 전문대학원으로서 당연한 최소한의 요구

그러나 국제대학원 원장인 김재천 교수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국제대학원이 기존 K관에서 활용한 공간의 절반 이상을 손해보고 들어가는데도 학교 측이 전문대학원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국제대학원도 문학부와 함께 J관에 입주할 때 예상되는 상승효과를 기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평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대학원이 공간배분의 논의과정에서 배제되고 전체 J관의 공간 정보에 대한 접근도 어려운 상황을 언급하며 조정자로서 학교 측의 역할수행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공간문제를 문의하면 총장도, 부총장도, 기회처장도, 심지어는 건설위원회에 참석했던 어느 상임이사도 논의 자체를 피하려 했다”며, 특히 이메일을 통한 문학부의 의사전달방식과 J관 6층의 일부 소형강의실들을 국제대학원에 배정한 내용을 담은 공문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학교 측에 의해 부정되는 상황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공적 영역에 대한 민주적 논의만이 공간배정을 이익다툼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이라며 서강이 힘을 모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학생들에게 교수들끼리 서로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면서도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숨기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입장 차를 조율해야할 학교, 원칙적인 입장만 되풀이해

이해당사자인 문학부와 국제대학원의 입장차를 조율할 책임이 있는 학교 측의 입장은 원칙적이고 당위적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국제대학원의 입주문제가 불거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J관은 물론 앞으로의 공간 배치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강의실과 교수의 연구공간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제대학원이 J관에 입주해야 K관의 공간 활용도 생산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며 서강 구성원 간의 화합을 희망했지만 막상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보았을 때 확실한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앞으로 학교 전체의 공간 활용계획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제대학원의 J관 입주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과정에 모든 주체가 참여하려 한다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준공식 당일 이종욱 총장은 “정하상관과 떼이야르관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건물로 학문 간 벽을 허무는 융·복합 학문연구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진 문학부의 전통과 경쟁력이 이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대한민국 최고의 국제인문학의 산실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하지만 학문 간 벽을 허무는 연구를 하기도 전에 구성원들 사이에 마음의 벽이 세워진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학교가 원칙적인 화합만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J관은 서강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의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학교 측의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제대학원은 왜 쌌던 짐을 다시 풀게 되었나

국제대학원 관계자는 올해 3월에야 기획처로부터 J관에 마련될 국제대학원 공간의 설계도면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국제대학원은 배정된 공간이 현재 K관에 있는 국제대학원의 규모를 수용하기에 크게 부족하다고 학교 측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학교 측은 8월에 임박해서야 뒤늦게 서둘러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이미 국제대학원 전체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해 일부는 K관에 잔류할 수밖에 없음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대학원의 일부 요구사항을 반영한 공문이 7월 말에서 8월 초에 기획처장과 총장의 승인까지 받았지만 기존 원안에 대한 수정을 반대하는 문학부의 반발로 학교 측은 앞서 승인한 수정안을 부정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 이 시기에 진행된 국제대학원과 학교 측의 의견조율 과정이 부당하다고 느낀 문학부는 지난 8월 22일,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학교 측과 국제대학원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문학부의 이러한 행동은 학교 측의 중개를 통한 조율 없이 다른 이해관계자인 국제대학원에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한 유례없는 상황이었기에 국제대학원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했다. 조정자로서 학교 측에 의견조율을 바랐던 국제대학원은 요구안이 좌초되는 상황에서 결국 이사 직전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