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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119호] 이종욱 총장의 ‘특별한 서강’에 대한 중간 평가

조성호 기자

특별한 서강을 만들기 위한 학자 출신 총장의 도전

2009년 6월, CEO이자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 출신의 손병두 전 총장은 퇴임을 앞두고 가진 한 인터뷰에서 임기 동안의 성과를 ‘기업 경영의 도입’으로 요약했다. 한편 손 전 총장으로부터 13대 총장직을 이어받은 이종욱 현 총장은 취임하기 얼마 전 『춘추』(효형출판)라는 저서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외세에 의존해 민족을 망하게 했다는 식으로 주류학계의 비판을 받는 김춘추에게 ‘민족’ 개념을 강요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단일 민족’을 앞세우는 역사가들을 비판하며 ‘민족’ 개념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그의 주장을 통해 서강에게 기업을 강요했던 손 전 총장과는 무언가 다른, 학교 운영에 있어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2009년 4월, 총장 후보자들의 소견발표회에서 서강을 새로운 대학 모델로 만들겠다고 주장했을 때부터 그러한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 6월, 4년 공식 임기를 시작하며 마련된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특별한 서강 프로젝트’와 ‘산학협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당시 언론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한 세대인 25년 뒤를 내다보며 자유로움, 수월성, 국제화, 자율성 등의 가치들을 담아낸 ‘서강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가 “잘 모르는 분야”라는 이유로 산업혁력팀(과거 대외협력팀)에 맡기겠다는 ‘산학협력’이었다. 어떤 언론은 이를 얄궂게도 <이종욱 서강대 총장 “돈 버는 대학 되겠다”>라는 표제로 정리했다. 물론 산학협력 모델과 같은 수익구조의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금 없는 대학’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몹시 설레는 말이었다. 그만큼 ‘특별한 서강’은 파격적인 비전이었다. 학계에서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학교 운영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는 생각은 결코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의 약속들은 임기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2009년 7월, 그는 교내 홈플러스 입점 계약 취소 의향을 삼성테스코 측에 전달했음을 밝혔다. 전임 총장이 뿌린 씨앗이었던 그 계획은, 삼성테스코가 신축 건물의 건축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대신 계약 기간 30년 동안 무상임대 형태로 홈플러스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지역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후에 이 총장은 구청의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교수초빙으로 인해 당장 불거질 공간문제가 계약해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은 ‘캠퍼스 상업화’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거센 상황에서 대형 유통업체의 대학 내 첫 진출을 좌절시킨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 2009년 7월 산학협력의 첫 결실인 에스 메디(S-Medi)의 창업과 정부지원의 인공광합성 연구센터 유치 등은 산학협력 모델의 현실화 가능성을 앞당겼다는 점에서 그의 출발을 가볍게 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학자의 위기일 뿐 인문학의 위기는 아니라며, 전인교육을 통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던 그가 경영과 인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정말로 잡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모아졌다. 이러한 이유로 학자이면서 동문인 그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임기 절반의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
전직 고위 관료의 정교수 임용, 산학협력 구축을 위한 특단의 조치인가 임용 특혜인가.

특별한 서강’을 만들려는 총장의 의욕은 산학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사정책상의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문제는, 논란이 늘 손 전 총장의 그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손 전 총장은 2008년 3월 출범한 국내 최초의 대학기업이자 기술지주회사·대학원·벤처금융회사가 결합된 산학클러스터인 ‘씨앗’(SIAT·서강미래기술연구소)의 초대원장에 장흥순(서강미래기술연구원 원장·터보테크 사장) 전 터보테크 사장을 임명했다. 그는 대표적인 벤처1세대로 각광받다가 분식회계로 2005년 12월 구속되고 2008년 1월 특별사면 된 바 있다. 또한 같은 시기, 비정년트랙 전임 연구교원이자 ‘씨앗’의 부원장으로 이철수 교수(기계공학과 교수 겸 산학협력 기술지주회사인 SGU홀딩스 CEO)를 임용하는 과정에서 교원인사규정을 어기고 정교수로 임명하려는 계약서가 작성됐다는 점이 교수협의회(교협)에 의해 지적됐다. 이 총장의 인사정책 논란은 바로 앞서 말한 ‘씨앗’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대표적 사례는, 2008년 7월 임용되어 각각 SIAT 산하 연구소들의 소장을 맡았던 전직 차관 출신인 오영호 교수(서강미래기술연구원·한국무역협회 부회장)와 반장식 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 원장)를 이 총장이 2009년 10월 정교수로 임명한 것이다. 이들이 서강에 임용될 때, 장흥순 원장은 “대학의 기술사업화를 촉진하는 기폭제”이자 “대학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모델”의 시작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1년 만에 정교수가 되자 곧장 교협이 반발했다. 2009년 9월, 교협은 총장의 ‘특별한 서강’이 학교규정에 어긋난 ‘특별한 승진’을 의미하는지 성토했다. 2009년 11월, 총장을 대신해 조긍호 전 교학부총장이 “이번의 결정은 두 분의 풍부한 국정 경험을 교육 및 관련 사업에 접목하여 특별한 서강을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적 결정”이라 답했지만 교협은 학교 측이 임용의 근거로 내세운 ‘총장내규’의 시행지침(상시특별초빙)이 상위규정인 ‘교원인사규정’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이 총장의 행보는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교협의 2009년 12월 성명에 따르면, 총장은 2010년 8월 24일 보직자 회의에서 “이유 불문하고 통과시켜 주십시오.”라고 했으며, 2009년 12월 9일 긴급교수회의에서는 반장식 교수를 자리에서 일으켜 500억 원의 연구비를 따오게 한 분이라는 말로 소개하고 인사를 시키면서 교수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하였다. 2009년 11월 27일, 이 총장 체제에서 최초로 자진사퇴했던 조장옥 교수(당시 경제학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는 <사퇴의 변>을 통해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인사’와 함께 ‘모욕적인 이 총장의 언사’를 사직의 이유로 들었다. ‘특별한 서강’으로 가는 길은 임용 특혜 시비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경영대 사태, 학교에 대한 명예 훼손인가 학내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인가.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인사정책에 관련 논란이 잠잠해진 지 오래지 않아 ‘특별한 서강’은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건의 발단은 어김없이 손 전 총장 재직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5월,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부터 5년간 8250억 원을 투입해 해외 석학을 유치하고 첨단 분야 학과를 신설하여 세계 수준의 대학 경쟁력을 목표로 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육성 사업(WCU 사업)’의 시행계획을 발표한다. 2009년 4월, 1차 사업을 통해 사업단 몇 곳을 운영했던 서강은 WCU 사업의 2차 사업에서 사업단 1곳이 또 다시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2010년 상반기부터 전 세계 경영전문대학원 중 처음으로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민재형 경영대학장·대학원장)에 신설되는 ‘서비스시스템경영공학과(SSME, 김용진 학과장)’는 5년간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다. 경영대로서는 손 전 총장 때인 2008년 7월 중소기업청과 맺은 ‘현장 맞춤형 컨설팅’ 인력양성을 위해 연간 5억 원의 지원을 받기로 한 협약과 2009년 3월 ‘컨설팅MBA’ 과정의 신설에 이은 호재였다.

그러나 서강은 WCU 사업에서 2010년 2월 사업단 1곳이 퇴출된 데 이어 그 해 12월에 또 다시 1곳이 탈락하고 만다. 한편, WCU 사업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업의 정당성과 함께 관련 대학의 윤리성이 도마에 올랐다. 2010년 12월 현재 서강대에서 운영되는 WCU 사업단은 총 5곳으로 2009년 지원액은 26억8천9백만 원이다(‘WCU 사업단 유형별 평가 결과’). ‘경영대 사태’는 정부의 부실한 대학지원사업과 사업을 주도하는 교수, 이를 맹신하면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실적에 목매는 대학, 무소불위의 교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경영대 사태’는 2010년 5월 경영대 교수 4명이 총장에게 같은 과 교수의 횡령 사실을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횡령 혐의를 받은 교수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컨설팅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 컨설팅MBA 과정을 신설해 학과장을 맡았던 교수였다(<나랏돈 가로채고 제자 성희롱까지?>, 시사저널, 2010년 9월 1일). 감사에 들어간 학교 측은 혐의 일부를 밝혀냈고 그 교수는 같은 해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런데, 같은 달에 경영대 정교수 중 16명이 <이사장님과 총장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일부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동료 교수들의 제자 학생들을 강압하여 스승의 행적을 조사하는 비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사직서는 반려되고, 오히려 제보 교수들에 대한 재단 감사가 시작됐는데 그 과정에서 제보 교수들이 모욕을 당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재단 감사가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것을 문제 삼으며 월권행위를 했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학교 측이 감사결과의 공개를 거부하자 학교 차원에서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고 판단한 제보 교수들은 2010년 7월 횡령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들은 학내 성명서를 통해 “학교 당국이 조용히 잘 처리하여 당사자가 횡령한 연구비를 반환하고 학교를 떠나는 정도로 사건이 해결되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교수들에게 심각한 인신공격과 명예 훼손 등을 운운하며 협박성 루머를 퍼뜨리는 등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앞서 16명의 경영대 교수 명의로 발송된 서한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이번 사건을 경영대 내부의 파벌 싸움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자신의 비리 때문에 사직서를 낸 것을 파벌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일로 인해 대학 간의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비리가 있든 말든 연구비만 많이 따오면 잘못은 덮어줘야 한다는 것인지, 비리를 제보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교수로서의 명성에 흠이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사태가 외부로 확산되자 학교 측은 경영대 학장과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에게 관리 책임을 물어 보직 해임했지만 이는 학교 측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우려를 낳았다. 감사과정 중 제보 교수들이 학생과 동료 교수들에게 폭행·폭언을 했다는 진술(앞서의 ‘16명의 경영대 교수 서신’)이 나오자 이사회는 횡령 교수와 제보 교수들 모두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지만 제보 교수들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2010년 11월, 결국 학교 측은 횡령 교수와 그를 검찰에 고발한 제보 교수 중 한 명을 파면하고 고발에 참여한 나머지 제보 교수 세 명은 해임했다. 제보 교수들을 중징계하면서 학교 측은 ‘대학의 명예훼손(해교행위)’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2010년 12월, 법원은 제보 교수들이 낸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1년 2월, 법원 결정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소청심사위)는 정직·감봉 등의 경징계 결정을 내렸고 학교 측은 이에 불복해 중징계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이에 제보 교수들 역시 맞소송을 냈다. 한편, 횡령 혐의로 약식기소 된 교수는 현재 정식 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1년 6월, 교협(박흥목 회장)은 <학교 당국의 교수단 억압에 대한 교수협의회의 입장>이라는 성명에서 “학교 당국이 내부고발 교수를 중징계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해당 교수들의 심적·물적 고통을 더하려는 악의적 의도”라고 비판했다. 6개월여 흐른 행정소송의 판결 결과는 2011년 12월 말에 나올 예정이다. 도덕성과 윤리성을 양보한 채 성장에만 매달리는 대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경영대 사태는 ‘특별한 서강’에 대한 의문과 함께 과연 대학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도약을 향한 여정, 박차를 가하다.

이 총장은 넉넉하지 못한 재정 문제를 산학협력을 통해 극복하려 했으나 이 과정은 서강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이 총장의 활발한 대외활동은 ‘두 마리 토끼’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특히, 개교 50주년이었던 지난 2010년은 이 총장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2010년 4월, 학교 측은 서강 비전선포의 밤 행사와 함께 이루어진 기금모금 캠페인에서 현장 모금한 27억8000여만 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103억8000여만 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기금 마련의 노력과 함께 총장이 주목한 것은 공간 확보였다. 2000년부터 논의된 ‘파주 캠퍼스’ 계획은, 2007년 2월에 학교 측이 건립계획을 발표하고 파주시와 양해각서까지 체결하면서 성사될 것처럼 보였으나 땅값 상승으로 인한 재원 마련에 부담을 느낀 이사회가 2008년 캠퍼스 부지 매입 안을 부결시키면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2010년 2월, 서강대는 남양주시에 2015년 입주를 목표로 제2캠퍼스를 조성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해당 시와 체결했다. ‘남양주 캠퍼스’ 계획은 같은 해 10월 초, 자연과학부와 공학부 등 이공계 단과대학을 이전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내의 반발을 샀으며 이에 대해 학교 측이 해명하면서 조율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2011년 11월, 교협은 성명을 통해 남양주 캠퍼스에 대한 정보공개를 위해 공청회를 요구했다.

이 총장의 공간 확보에 대한 열정은 남양주 캠퍼스 계획뿐만 아니라 당장 신촌 캠퍼스의 변화만 살펴봐도 실감할 수 있다. 2011년 9월 준공된 국제인문관(J관)과 산학관(TE)관은 서강의 공간 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건물의 준공식에서 이 총장은 “인문학부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를 이끌게 되길 바라고, 떼이야르관을 통해 학문과 산업을 융·복합시킨 선도대학으로서 서강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취임 때부터 강조한 ‘특별한 서강’과 ‘산학협력’, 즉 인문과 경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기반이 마련된 데 대한 만족처럼 보인다. 또한 J관 옆에 들어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2013년 1월을 목표로 공사 중인 인공광합성연구센터 전용 건물이다. 이와 함께 2011년 12월 내 준공을 목표로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시전용학습관인 ’토마스 모어관’도 있다. 게다가 2011년 2학기를 마치고 착공되어 2012년 1학기 시작 전에 개·보수가 완료될 예정인 노후한 X관의 변화도 기대되는 서강의 변화이다. 이와 같은 공간의 모든 재편은 이 총장 취임 이후 본격화된 것이다.

학내 구성원 및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 필요해

‘총장과의 대화’라는 소통 프로그램은 매 학기 꾸준히 지켜졌다. 그럼에도 이 총장의 소통 노력이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학내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소통 의지가 형식적인 프로그램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2010년 12월 실시된 ‘학교정상화를 위한 서강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설문조사’는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재직교수 341명 중 200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의 문항 중 교내의 여러 사안(교원인사위원회 구성, 재단감사 업무, 교무위원회 구성, 남양주 캠퍼스 이전문제, 경영대 비리고발 교수 징계 등)과 관련하여 총장이 발휘한 리더십에 대해 ‘잘못한다’는 응답이 81.0%였다. 이러한 결과를 총장이 심각하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11년 7월부터 40여 일 간 진행된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11월에 발표되었지만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강의 구성원들은 오직 언론보도에 의존해 대학들이 지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방식으로 등록금을 ‘편법 인상’ 해왔다는 사실에 분노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기획처 관계자는 감사결과가 감사원만의 감사방식에 따른 것으로 어떤 학교라도 그런 식이라면 수입과 지출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감사결과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연세대와 달리 서강대는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감사원만의 감사방식’이 무엇이고 왜 서강대는 대응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총장 임기 중 빈번했던 산학협력 차원의 교류에 비해 ‘사회와의 소통’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 중 두드러진 사례는 2010년 11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80여개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G20대응민중행동’의 ‘서울국제민중회의’ 교내 개최가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된 것이다. 이에 대해 관련 단체는 <이종욱 총장에게 보낸 공개 서한 전문>에서 “국제시민사회의 의사소통이 지구촌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바를 평가절하하고 불온한 것으로 치부하는 듯한 총장의 판단은 우리나라 시민사회와 학계의 격을 실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는 총장의 침묵으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2011년 9월에 별세한 이소선 여사(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의 분향소가 서강대 의기촌 앞마당에 설치된 것에 대해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통보한 사건 역시 소통의 측면에서 아쉬웠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분향소를 철거하러 온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학생들이 분향소를 자진 철거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은 많은 외부 인사들이 방문하는 국제인문관 준공식이 예정된 날이었다. ‘특별한 서강’을 세상에 뽐내기 위해서는 서강의 진짜 ‘특별함’은 감출 필요가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모든 문제가 총장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 중간평가를 목적하는 이 기사에서 하려는 말은 아니다. 개별 대학을 압도하는 ‘산학협력’의 거대한 흐름은 한국사회를 관류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산학협력중점교수’의 법적근거를 마련했을 만큼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임기 초, 이 총장이 내세웠던 ‘특별한 서강’이라는 이상이 ‘산학협력’이라는 방법론에 지나치게 매몰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두 마리의 토끼’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 총장은 역사학자로서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모든 학내 사안을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냉정 빠진 열정은 순전히 오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