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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22호] 2012 대선, 구조 결정론을 넘어서

2012 대선, 구조 결정론을 넘어서

김아영 기자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는 명제는 행위자 중심의 역사관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구조 결정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명제는 쉽게 무너지고 만다. 구조는 어떠한 사회적 현상 혹은 생애의 어떤 단계에서, 더 운이 나쁠 시에는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평생 구조의 결정을 받는 인생, 즉 행위자인 인간이 구조를 제약할 뿐 결정하지 못하는 인생이 득실대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구조 결정론은 비관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다.

그러나 이론은-현실을 왜곡시키지 않는 괜찮은 이론인 경우일지라도-단지 부분적 진실만을 말할 뿐이라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이 ‘청춘’의 가을날, 굳이 숙명론에 빠져 허둥댈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올해는 미국을 비롯한 한·중·일 동북아 3국 모두 정권 교체 여부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요한 해다. 이는 학습을 업으로 삼는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할 지도자를 엄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두고 미래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는가? 2012년 대한민국호가 올라 탈 가능성의 바다를 항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이야기에 다가설 필요가 있다.

 

 

 

#1. 2012년은 ‘글로벌 선택’의 해
 

2012년은 단연 글로벌 선거의 해이다. 선거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동반한다. ‘선거’는 가능성의 바다를 항해할 선장을 ‘택(擇)’하는 행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2년을 ‘글로벌 선택’의 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외 사정을 조망해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2011년 1월,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시초였던 SNS 혁명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를 앞당겼다. 그 해 10월 자본주의의 심장부라는 월스트리트에서는 1%의 기득권자들을 대상으로 99%의 국민이 분노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를 ‘월가 점령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월가의 분노는 미국 전역과 유럽으로 번져나갔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했던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위와 같은 시민 사회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2011년 튀니지에서 뉴욕으로 분노의 물결이 번질 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조용했다. 그러나 초고속 통신망,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등으로 대표되는 웹2.0 인프라와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 열기는 교집합을 이뤘다. SNS를 매개로 한 움직임이 나타날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그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패배하여 시장직을 내려놓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SNS를 도구로 시민후보인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당선시켰다. 박원순은 제1라운드인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박영선에게 승리하며 야권통합 후보가 되었고, 제2라운드에서는 집권 한나라당 후보인 나경원을 누르고 서울시장이 됐다. 이는 지난 4월 총선과 다가올 12월, 그 선택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다. 청춘콘서트의 주역인 안철수가 박근혜의 대항마가 되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2. 세대의 중요성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4대 구조, 즉 지역, 이념, 계층, 세대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다. 구조결정론자들에 따르면, 구조가 국민의 선택을 제약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조는 우리의 선택 이전에 이미 선거의 결과를 결정짓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올해 12월 19일 한국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한국의 대선을 결정하는 4대 구조가 우리 국민의 선택을 어떤 방식으로 제약하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 4대 구조가 항상 ‘균열의 조각들’로 맞물려 작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등장하는 지역주의, 보수와 진보 이념,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사회를 설명하는 계층 등은 모두 선거의 주요 결정요인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위의 세 가지 균열 구조를 모두 아우르는 ‘세대’라고 하겠다.  이 세대 구조의 작동은 이념과 중첩시켜 설명할 수 있다


역대 대선의 주요 결과를 살펴보면, 20~30대 젊은 층의 투표 참여율은 여야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해왔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은 선거에서는 진보개혁 성향의 후보자가,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을수록 보수성향의 후보자가 당선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사회적 이슈와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030 세대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비록 이들에게는 ‘자기개발에만 몰두하는 정치 무관심 세대’라는 오명이 따라 붙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세대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한 에너지가 있다. 과도한 대학등록금 문제와 22%에 달하는 청년실업 등 감당하기 힘든 난제와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선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선거 참여도를 보인 세대가 바로 청년세대이다. 정치권이 청년층의 투표 참여율에 촉각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3. 양극화와 시대정신


혹자는 한국 경제의 민주화가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언제부터 경제민주화가 문제였는지 기억조차 희미하기에 정치판에서 이용하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괜한 말장난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양극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경제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의식의 양극화를 포함한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되는, 즉 “있는 사람은 더 있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도 빼앗긴다.”라는 성경의 경구가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 양극화 담론은 그 실체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대안보다는 정치적 판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논쟁이 심화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수백만원짜리 고액과외를 하고 누군가는 정부 최저임금 4,580원을 간신히 버는 불평등 현상을 목격하는 순간, 주체의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가 양극화 담론을 첨삭·왜곡 혹은 가공하여 관여하는지의 여부를 초월하는 현실적 문제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는 위와 같은 배경이 등장하게 된 대표적 사례이다. 지난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한 해 동안 치르는 사회 갈등 비용은 무려 300조에 달한다. 갈등지수를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낮추면 1인당 GDP는 5천 달러가 증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갈등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정치 발전 차원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갈등이다. 문제는 정치 지도자와 정치권이 갈등 관리에 실패함에서 생겨난다. 국민들이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리더가 불필요한 종북주의 논란과 남남갈등 등 이런저런 갈등에 부채질하는 경우가 많았다.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은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일부 정치세력은 새로운 권력의 창출 수단으로 갈등을 이용해왔다.
이제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여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세력에 대해 단호한 심판이 필요하다. 갈등 치유가 국가 성장 동력의 하나임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의 리더십을 실현시킬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대안 찾기-통합의 리더십

 

그렇다면 대선을 앞 둔 이 시기의 진정한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차기 대통령이 안고 갈 역사적 과제’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양극화로 규정한다면, 우리에겐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 땅의 민초들이 겪고 있는 분노와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절박감. 이것이야말로 통합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는 지금 갈림길에 다가섰다. 극심한 양극화와 민생고에 시달리느냐, 민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로 전환하느냐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 논의의 처음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역사는 구조적·역사적 제약 하에서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역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구조’가 아닌 ‘사람’의 역할을 핵심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무엇을 기준으로 대선 후보자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이제 통합의 리더십을 실현시킬 수 있는 행위자가 누구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2012년 대선의 희망은 학습하는 바로 당신과 우리에게 달려있음을 명토 박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