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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23호] 笑

 

 

웃자고 사는 세상, 정색은 언행 총량의 2%면 족하다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그 신념 덕분인지 다행히 별일 없이 삽니다.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도 이야기 하지 않던가요. <별일 없이 산다>고.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사는 게 재밌다. 뭐 별다른 걱정도 없고 하루하루 즐겁다. 매일매일 아주그냥 신난다.” 사실 이 가사 속엔 ‘별 일 많음’에 대한 역설적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서강대학원신문> 콘셉트에 변화를 좀 주었습니다. 힘은 빼고 유연해지자는 것입니다. 물론 내용의 연성화를 얘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생각이 유연해야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수많은 별일들을 견딜 힘이 생긴다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돈 없어도 굶어 죽지는 말자, 기막혀 죽지도 말자, 자꾸 나이만 먹는다고 우울해 죽지도 말자, 논문 때문에 힘들어 죽지도 말자, 하루하루 신나게 재밌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나고 재밌게 살려면 ‘유머’라는 소스가 필요합니다. 16세기 말 영국에서 인간의 ‘체액(體液)’ 또는 ‘기질(氣質)’을 뜻하는 말로 시작된 유머는 ‘서로 다른 체액 사이의 불균형에서 생기는 특이한 기질’이나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전화됐습니다. 17세기에 이르러 그런 기질의 보유자들이 사람을 웃기는 ‘기질 연극(comedy of humours)’이란 것이 생겨났고, 오늘날 ‘웃음을 만들어내는’이란 유머의 뜻과 매우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유머와 웃음 모두 마음이라는 모체에서 생겨난 한 형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머와 함께 삼투압적 교류를 하는 웃음의 장점이야말로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웃음과 유머는 지능지수와 직결됩니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앨 앤더슨이 그의 연구에서 이야기했듯 웃음은 이해능력과 기억력, 주의력을 향상시켜 인지적 발달을 돕습니다. 인간 사이의 충돌을 막아주기도 하고, 사회적 모순에 화살을 쏘는 대신 해결을 위한 지혜를 줍니다. (과장입니다만) 웃다보니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게 되었다면 마음의 평안과 정신적 여유는 덤이겠지요.


그렇다면 한 번 웃어볼만 하겠습니다. 힘 빼고, 욕심 덜고, 마음 비우고 지면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재미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는 이현비 선생님이 눈에 띄실 겁니다. 재미에도 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에 마침 인연이 닿았습니다. 투표의 계절, 정치 이슈가 빠지면 서운할 터. 정치유머 관련 필진 두 분을 모셨습니다. 전 감사원장이자 민주 인사들의 변론을 도맡았던 한승헌 선생님과 1974년 TBC-TV ‘살짜기웃여예’ 집필로 개그작가 1세대를 여신 코미디평론가 김재화 선생님입니다. 한 번 잘못 뽑은 대통령으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몇 해나 갈 것인지는 상상 불가의 영역입니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정치 웃음과 유머에 대한 외곽선을 정리해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위한 숙고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독자들이 보시기에 가장 눈에 띄는 컨셉은 8090대중문화 섹션일 것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80, 90년대 대중문화에 첨벙 빠져들게 만들었던 추억의 대상들을 소환해봤습니다. 이 모든 게 한 데 어우러져 여러분의 삶에 휴식이 되고,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기획이 여러분이 생산하는 다양한 저작물에 통찰의 스파이크를 일으켜줄 수만 있다면 <서강대학원신문>은 앞으로도 재미있게 잘 놀고 잘 쉬는 법을 궁리해볼 참입니다.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웃음과 유머를 집대성하려 했던 노력을 어여삐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편집장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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