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 6. 12. 14:35

 

매체 비평지 미디어스소속인 청년 논객 한윤형. 1999안티조선운동의 원년멤버를 시작으로 다양한 진보매체에 글을 써온 그는 스스로를 삼류 기자라고 평한다. 어쩌다 청춘의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루저의 정서란 무엇인지,

일베현상을 해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청춘여행을 떠나본다.

   

청년 문제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며 문제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이어 붙이거나 구색을 차린다는 느낌이었지만 여러 소재와 청년 세대를 접합한 글을 쓰다보니 세대 담론이 실제로 정치적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어떤 직관을 갖게 되었다...<p6>

 

Q. 루저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A. 루저잉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외부에서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부터였어요. 잡지 <황해문화>에서 루저문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었거든요. 당시 기고했던 글의 제목이 루저는 세상 속에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것이었고, 이를 제 책의 챕터 제목에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이렇듯 잉여나 루저문화에 대한 글들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담론적 접근으로 풀어나가려 했고, 그렇기에 공적인 글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잉여루저문화라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Q. 루저문화를 세대론적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 사실 저도 루저문화가 반드시 세대론의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다만 루저문화라는 것이 지금의 청년세대와 가장 크게 결부된 문제임은 확실한 것 같아요. 특정 소재와 청년 세대를 접합한 글을 쓰다 보니 세대 담론이 시대의 문제를 반영하는, 즉 세대 문제에 대한 접근을 도와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루저라는 단어보다는 잉여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예요. ‘루저라는 정서는 기존의 세대 담론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테지만, ‘잉여는 최근에 한국사회에서만 나타난 독특한 단어니까요.

 

Q. 잉여라는 말이 오늘날 새로운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신지요. A. ,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전에는 잉여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이 쓴 적이 없거든요. 과거 잉여라는 단어는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측면, 잉여가치라는 표현으로 활용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경제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기를 어려워하는, 그런 문제적 상황을 일컬어 잉여인간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죠. 사람의 노력과 행동이 쓸데없는 잉여라고 표현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그들의 행동은 쓸데없다라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잉여력’, ‘잉여인간과 같은 단어를 양산해 낸 배경은 바로 신자유주의에 접어든 오늘날 한국 사회와 맞물린다고 봅니다. 이들은 결국 기존의 한국 사회에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이 세대만의 독특한 감성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위와 같은 단어들을 이 시대 한국 사회의 어떤 세태를 드러내기 위해 세대론적 관점으로 이야기 해온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세대론은 왜 잉여의 청춘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접근 방식으로 차용한 것일 뿐 루저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세대론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답이다라는 식으로 마치 무 자르듯이 뚜렷한 답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Q. 사실 루저문화라는 것에 나타나는 열패감, 루저의 감성은 어떻게 보면, 오늘날 청년세대 이전에도 계속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요?

A. 루저의 정서는 시대마다 당대의 특수한 사회적 배경을 드러내는 독특한 차이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상의 문학 시대에 나타나는 루저의 정서라는 것은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감을 다루는 것일 테고요. 영화 비트말죽거리 잔혹사를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영화에 나타난 주인공을 보고 루저로 인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잖아요. 과거 한국사회에서 루저라는 개념에 담긴 정서는 학벌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날 나타나는 루저의 정서는 모두가 학벌사회 안으로 편입된 가운데 등장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루저 개념과는 차이가 있어요.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좌절에 빠져드는 정서인 것이죠. 결국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루저의 정서가 과거와 다르게 나타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 새롭게 나타난 루저의 정서를 다룰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죠.

 

Q.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 루저의 정서는 학벌의 내부에서 시작한다는 말인가요?

A.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명문대를 선호하고, 명문대 출신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여전히 학벌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거든요. 제 책에 대한 리뷰에서도 비슷한 글을 봤는데요, “나는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다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전 세대보다 오늘날 루저의 정서가 나타나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것이에요. 루저의 정서를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저 문화의 시사점이 있다면 루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애매하면서도 색다른 새롭다는 정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루저는 새로운 것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친아나 심지어 어른들보다 명료하게 인지하는 주체다 <p159>

 

Q, 루저라는 문화적 정서를 단순히 저항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이룰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자조적인 성격으로 이해하는 논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A.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학한다는 것, 자기비판의 냉소를 보인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죠.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학할 여유도 없습니다. 더불어 루저의 정서는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할 때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나는 능력이 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사회가 그에 대한 보답을 주지 않을 때 박탈감이나 소외감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사실 사회의 규탄 이전에 이들 스스로가 자신들 처지에 대해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내면화 하고 있다. 요즘 보이는 루저 문화라는 것은 이 부끄러움을 그나마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서는 정치적인 각성과 자기 학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p150>

 

Q. 그렇다면, 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루저의 정서라는 것이 오히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한 욕망에서 오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분명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자조를 보인다는 것은,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룰 수 없는 데서 나타나는 감성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주류와 비주류의 간극, 속칭(웃음) ‘넘사벽’(그는 이 용어를 굳이 인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내자면 심연의 간극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이 심해진 것이죠. 사실 이 간극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가 꽤 많으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요.

 

Q. 넘사벽이요?(웃음)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A. ,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학벌 사회라는 것은 균질화된 엘리트들을 대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고용해줄 수 있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회가 그만큼의 인원을 포섭할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해서 어느 정도의 학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앞날에 희망이 없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예요. 학벌 사회의 승자임과 동시에 잉여 인간이 된 것이죠. 바로 이런 감정이 잉여라는 단어에 함축된 정서가 과거의 루저정서와는 차이가 있는 이유예요. 오히려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열패감을 자기비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멘토는 추상적인 단언이 아니라 멘토링이란 활동에서 나올 것이니, 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업그레이드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기를. <p144>

 

Q. 루저 문화라는 것은 요즘의 멘토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멘토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일단 제가 생각하기에는 멘토라는 말이 애초에 어원과는 다르게 소비됐다고 봐요. 멘토가 제대로 된 조언을 하려면 자신의 전문 영역 안에서만 조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령 글쟁이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겠죠(웃음). 물론 하지 말라고 조언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멘토 현상의 문제는 자신의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폭 넓은 범위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충고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에요. ‘힐링 문화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사실 저는 자기계발 담론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계발을 하려면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멘토링은 그 영역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개인에게만 희망을 가져라, 노력을 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것은 분명 멘토 현상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죠.

 

파편화된 취향의 문제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정치를 논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통합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 가능성은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교적 공통적인 조건에 놓인 20대의 삶의 문제를 제시하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20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p193>

 

Q.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청년세대의 삶을 서사화 하기 위해서는 웹툰이라는 컨텐츠를 비평하거나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요.

A. 세대의 특성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죠. 오늘날 청년 세대의 대표적인 특성은 인터넷과 대중문화, 취업난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청년 세대는 파편화된 취향을 보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파편화된 취향의 문제를 극복하고 통합을 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20대의 삶의 문제를 제시하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비평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웹툰이 이런 매체에 해당되는 것 같고요. 웹툰은 청년세대가 주축이 되어 활발하게 창작할 수 있고, 이를 향유하는 소비자도 대개 청년 세대이거나 혹은 그 아래 세대들이거든요. 그렇기에 자신들의 삶과 경험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죠.

 

Q. 가령 어떠한 웹툰이 있을까요?

A.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라는 웹툰이 있는데요, 저는 이 웹툰의 컨셉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봐요. 사실 이 웹툰의 근본적인 물음은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가 언제 들어왔느냐에서부터 시작돼요. 88만원 세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주인공 남기한은 어느 날 잠에 들었다가 90년대인 자신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게 되거든요. 그는 돌아간 과거에서 영어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면 엘리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90년대 한국사회는 아직 영어 조기교육이 일상화되지 않은 시기였으니까요. 경쟁지향적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력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립니다. 우리 사회가 백수와 백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생각해보세요. 그런 점에서 일찍이 영어 공부를 해두면 성공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남기한의 생각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보여주는 결이 됩니다. 그래서 이 웹툰은 현재 20대 후반, 30대에 접어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들 이후 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기한의 생각은 엘리트가 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공감할 수가 없어요. 이미 모두가 성공하기 위한 룰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영어교육을 받고, 학원을 다니면서 대비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웹툰 비평을 통해 또래세대들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끌어낼 수 있고, 기성세대들도 , 이 세대가 이런 경험을 겪어왔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Q. 책에 보면 인문 오덕이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이론을 다루는 학계의 연구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중요한 말씀인 같습니다.

A. 단지 저 혼자서 우스갯소리로 쓰는 말인데요. ‘인문 오덕을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비급 판타지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Q. 무공비급 판타지요(웃음)?

A. , 흔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판타지를 말해요.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무언가를 몰래 갈고 닦으면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요(웃음). 사실 저도 학부시절 수업에서 이론적 논쟁을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논쟁들이 결국에는 네가 그걸 잘 읽어봤느냐라는 지식의 계보 싸움으로 흐를 때가 많았거든요. 결국 네 계보는 별 거 아니다라는 식의 다툼을 하게 되고요. 이를테면 네 이론은 이런 게 문제다”, “네 이론적 근거는 별 거 아니다는 식의 계보 싸움이 되는 것이죠. 물론 이론적 논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다 면밀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좀 다른 게 필요해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기 위해 텍스트를 늘어놓으며 아집에 빠져들기보단, 이와 반대로 현실문제와 대면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Q. 그렇다면 지나치게 이론적인 풍토에 빠지지 않고, 현실 문제를 대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저는 대학원을 다니진 않았지만, 이론적 영역과 현실문제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으로 잡글을 많이 써보는 것이 감각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잡글은 완결된 형태의 글은 아니지만, 블로그나 여러 게시판에 부담 없이 줄줄 써내려갈 수 있는 글이죠. 무엇보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심사나 취미가 필요해요. 아무런 취미도 없이 이론적 텍스트만을 읽고 사회문화 연구를 한다는 것, 그런 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이제는 우리 모두가 문화의 수용자이자 생산자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보다 깊은 취미나 관심을 갖는 게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이런 과정에서 연구의 깊이나 논의의 보편성도 확장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일베현상에 대하여

Q. ‘일베도 루저문화의 정서가 나타나는 공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A. 여성혐오적 성향’, ‘진보성향에 대한 적대감’,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심리와 더불어 루저문화의 정서가 일베를 설명하는 중요 요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루저문화가 일베라는 공간 자체를 대표하는 특성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자신들을 할 짓 없는 키보드 워리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두고 정작 일베유저들은 그거 나 아니거든?’하며 스스로 명문대 학력인증을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Q. 그것도 굉장히 재밌는 현상이네요. 그런데 책에서 일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카하라 모토하키의 두 가지 내셔널리즘 유형을 언급하신 것을 봤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듣고 싶네요.

A. 먼저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고도성장 시기에 대중을 균질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를 내세운 내셔널리즘이라고 볼 수 있죠. 이는 우리가 이전부터 흔히 봐왔던 우익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반면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은 현실에서 집단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형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 문제가 되는 일본의 넷우익이 이런 유형의 내셔널리즘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두 내셔널리즘 간의 표현 양상도 차이가 있죠. ‘국가를 내세우던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이 진지한 게 특징이었다면, 요즘의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은 유희적인 놀이의 성격이 짙습니다. 사실 저도 개소문닷컴을 보다보면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웃음).

일베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놀이에서 사용되는 문맥이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민감한 차원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영국 EPL의 맨유 팬들과 리버풀 팬들이 서로의 지역을 비하하면서 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맥인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축구 경기를 놓고 일시적인 지역비하의 언어를 유희 코드로 사용하는 것이고, 경기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죠. 그런데 일베가 전라도 출신 사람들을 두고 특정한 은어를 사용하며 비하하는 것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이는 이전부터 정치적 논란거리였던 호남 차별과 같은 이슈로 자연스레 연결이 되고, 급기야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광범위한 사안으로 번지게 됩니다. 문제는 아마 일베유저들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잘 몰랐을 거라는 거죠.

 

Q. 일베 유저들이 단순히 유희하는 것이라고 보시나요?

A. 일베라는 공간에서 나타나는 행동 패턴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말 그대로 놀고 있는 것이죠. ‘일베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러한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 되면서 외부에 퍼지잖아요. 그런데 외부에서 화를 내면 뭘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나?’ 하면서 놀이를 멈추지 않거든요. 바로 이런 것이 일베의 패턴 중 하나라고 보고요. 두 번째는 일베 이용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스스로 사실 검증을 내세워 과격하게 행동하는 거예요. 이 두 가지 패턴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일베라는 공간이 출현하게 된 배경입니다. 디씨인사이드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유머코드들, 예를 들면 저질스럽고, 과격하고 선정적인 패러디가 들어있는 게시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생겨나는 사이트라는 것이죠. 일반 네티즌들이 느끼기에 과도한 표현을 일베에서 드러나잖아요. 아마도 일베에서 활동하는 당사자들은 외부에서 자신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두고, 취향에 대한 탄압이라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봐요.

 

Q. 일베를 파시즘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물론 일베라는 공간이 유럽과 일본의 넷우익에서 볼 수 있는 선진국형 극우파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렇지만 한편으로 일베를 파시즘의 전조로 본다면, 한국사회가 언제나 파시즘의 전조였던 것은 아닐까요. 과거 7-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사회도 국가가 주도하는 고도성장형 파시즘의 전조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잖아요. 무엇보다 일베라는 공간이 아직 정치적으로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잉여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 청년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청년 세대에게는 자기의식이 필요해요. 대체로 취업도 안 되고, 돈도 없고, 결혼하기도 어려운 자신의 처지만을 이야기할 뿐,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간 청년 세대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요, 현 세대는 남의 영역을 잘 모르는데다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386세대를 예로 들면, 당시에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가난한 집에서 자수성가 해 스스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렇다보니 소득수준이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면서 세대 내에서 공유하는 의식이 평등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다른 것 같아요. 지금 세대는 같은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도 평준화 되지 못하고, 격차가 존재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어떤 행동을 보이라는 것은 아니에요.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내가 처한 현실은 왜 그런 것일까?’라는 질문을 형성하고, ·외적으로 많은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실과 꿈을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탄과 자조에 머물게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이 왜 이러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스스로 생성해 내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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