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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6호]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

 

 

 

 

얼마 전 라이프치히에 다녀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플라잉 유니버시티(Flying University)’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려 다녀왔습니다. 나치 점령대나 현실사회주의 때 일종의 지하대학으로 폴란드 사람들이 만든 개념이죠. 당시 공개적으로 열릴수 없다 보니 누군가의 아파트로, 지하 술집으로 옮겨 다니던 것을 영어로 플라잉 유니버시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으로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비행대학'(The Flying University of Transnational Humanities)’이라고 부르는데, 기존 인문학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내셔널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취지입니다. 그 명칭은 정규적인 방식이 아니라 폴란드 지하 대학처럼 운영되어서이기도 하고, 실제로 참가자들이 각 국에서 날아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한 복합적인 이유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 약 12개 대학 박사 과정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피츠버그 대학교의 월드 히스토리 센터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읽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시야가 좀 더 넓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요. 저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저와 같은 혼란을 느끼더군요. 그건 분명 그동안 마치 당연하게, 고정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훈육과정에 의해 우리도 모르게 내면에 잠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듯 한데요. 선생님께서 내면화된 권력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당대비평에 특집으로 내던 것이었죠. 거기에 논쟁이 붙다 보니 이렇게 단행본까지 나오게 됐네요. 벌써 15년 된 이야깁니다. 박사 논문을 쓰고 나서 1990년대를 폴란드 역사와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남한에서의 사회 혁명이 먼저냐, 통일이 먼저냐, 민족문제가 중요하냐, 계급문제가 중요하냐 논쟁이 많았는데, 이 논의를 위한 이론적 토대가 너무나 약해 보이는 겁니다. 그걸 계기로 박사 논문을 맑스, 엥겔스로 파고 들어가 민족 문제가 무엇이냐 하는 걸 공부했지요. 폴란드는 유럽 사회주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민족 논쟁을 한 곳입니다. 18세기 말부터 100년 이상 3개국(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분할 점령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현실 사회주의의 잔재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사회주의는 과거 식으로 생각하면 좋은 헤게모니를 잡은 사람이 권력을 잡아 사회를 확 뜯어 고치면 사회를 근원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만큼 근원적인 혁명이 없는 겁니다. 부르주아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마찬가지고요. 당시 모스크바 노동자들은 단추 하나까지도 바꿨죠. 부르주아의 심볼이라 해서 패션까지도 바꿔버린 겁니다. 계급도 바뀌고, 법제도 바뀌었으니 그런 면에서는 근원적인 혁명이라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직접 가서 만나본 현실 사회주의는 별로 바뀐 게 없는 겁니다. 오히려 더욱 섹시스트(sexist)적인 사회이고, 프라하 같은 곳의 결혼 상담소에서는 아직 페미니즘에 오염되지 않은 미모의 여성이 다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있었죠. 서울에서 만일 이런 광고가 났다면 어떨까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모든 면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이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 사회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섹시즘(sexism)은 당시의 남한보다도 더 강했죠. 그런데 막상 취업 통계를 보면 여성 취업률이 꽤 높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남녀평등이 완벽히 구현된 듯 했어요. 그런데 집안에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맞벌이 부부인데도 집안일은 여전히 여성이 도맡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문제의식이 현실 사회주의와 자꾸 맞물리면서 혁명을 통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계속되다 무엇보다 사회의 결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사회의 결이 바뀐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를 읽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죠.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1989년 이후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고, 민노총, 전교조라는 이른바진보 진영이 나와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전대협이나 한총련은 학생 운동을 주도했고요. 학생 운동을 예로 들어 볼까요. 당시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군사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간부 수련회에 가면 김밥말이 같은 제식훈련을 하는데 이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겁니다. 진보적인 기자들은 이를 또 자랑스럽게 기사에 쓰고요. 이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세상이 바뀔까요? 소련 등지에서의 역사가 재현되는 건 아닐까요. 실제로 북한에서 더욱 끔찍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지 않나요?

한국 사회에서도 1980년대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지배될 때 우리가 권력을 가지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지금의 사유 방식, 세상에서의 실천 방식이 예전 앙시앙레짐의 독재체제 방식과 다를 것이 없는데 세상이 어떻게 바뀌겠는가하는 문제의식을 <우리 안의 파시즘>에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말씀 중에 당시 진보를 외치던 사람들에 대해 이른바진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진정한 진보의 모델을 제시해 주실 수 있나요?

 

모델을 찾아 볼 수는 있겠지만 모델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할 수도 있습니다. 모델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순간 그 모델 자체가 폭력이 될 수도 있죠. 이 모델이 가장 진보적인 모델인데, 이 모델과 일치하지 않으니 진보가 아니다라는 발상은 문제가 될 수 있단 겁니다. 멕시코의 사바티스타(Zapatista)와 마르코스의 예를 들면, 좋은 헤게모니가 권력을 잡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바티스타에 진입해 취재했던 프랑스 기자들의 결론은 사바티스타 역시 이전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어요.사실 맑스도 사회주의의 모델을 내세운 적은 없고 자본주의 비판만 했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사회주의가 청사진처럼 제시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들에 대해 눈을 기울이는 것이겠죠.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2001년 현대자동차 구내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한 영상 보고서 <··>이 민주노총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울산 인권영화제에서 검열시비로 인해 영화제 자체가 무산된 사건이 있었어요. 1997IMF 이후 한국에 노동시장유연성이 생겼는데, 문제는 노동시장이 경직되다 보니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해고가 자유로운 비정규직, 임시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 결과 부작용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노동강도는 비슷한데 급여 수준은 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 때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파업을 하는데 결국 회사 측과 타협한 것은 노동자 해고를 원칙적으로 받아 들이되, 그 숫자를 줄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수는 구내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수와 같았어요. 결국 식당 여성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그들을 노조가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여기에 여성노동자들이 노조에 대해 다시 파업을 했던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거지요.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은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같은 노동자인데도 남성노동자가 여성노동자에 대해 헤게모니를 쥐고 흔드는 꼴이고, 함께 파업을 했는데 남성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이 되고, 여성노동자는 비정규직이 된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지요.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내에서도 또 민노총 소속의 노동자는 이미 그 안에서 특권을 가집니다. 노동계급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안에서 젠더 간의 불평등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일부 기자들로부터 임지현은 노동자의 단결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노동자의 단결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노동자 계급 내에서의 불평등은 가려진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까지도 다루어야 하는데 여전히 민노총은 진보이고, 그 진보의 폭력성이나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측은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구조화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델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것의 문제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노동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려면 우선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투쟁이 가장 중요하니 노동자 계급 사이의 사소한 분열은 봉합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현재 사회에서는 오히려 자본가와 노동자의 차이보다 노동자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가 더 커졌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맑시즘의 논리로 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못 가진자로 나누는 구도로 보게 되면 이미 바뀌어 버린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되는 겁니다. 더욱 경계해야 할 건 진보의 이름으로 이런 것들이 구조화되는 거겠지요.

 

한국 사회에는 연고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가부장제 같은 것들이 타 문화권보다 강하게 나타난다고들 합니다. 한 편에서는 이런 부정적 특성이 역설적으로 한국사회를 유지시켜 준다고 보기도 하던데요. 많은 글에서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계시는데,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이런 주의를 떨치고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연고주의, 가족주의, 남성 중심의 섹시즘 등은 한국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난 존재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외적으로 볼 때 여성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여권이 신장된 사회라고 볼 수도 있어요. 연고주의, 가족주의, 섹시즘 등이 한국사회의 특성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서유럽(영미, 프랑스, 독일 등)이 모범적이고 정상적인 해방의 길을 걸었고, 그 외 국가들은 성숙하지 못한 길을 걸었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린 거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동문회 문화는 한국보다 더하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런 네트워킹 방식이 좀 더 정교하기 때문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해병대, -대학교면 무조건 뭉치자는 식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을 한국만의 특수성이라고 보기보다, 근대적인 사회가 낳는 특수성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예전에 이런 주제를 다룬 글을 쓸 때만 해도 서구의 근대성을 정상적으로, 그 외 국가의 근대성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사고방식의 잔재가 남아 있었어요. 이제와 당시의 글에 대해 자기비판을 해본다면 근대성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68혁명에는 많은 신화가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 일상의 결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나타내는 예가 페미니즘이 가속화된 계기입니다. 68에 참가한 학생들은 기존의 불평등을 모두 뒤집어 엎자고 했지만 결국 남학생은 운동에 앞장서고, 여학생은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는 거죠. 그 여학생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이 나타난 거예요. 굉장히 급진적인 맑시스트들 사이에서 그 안의 불평등을 인지한 거죠. 이런 여러 문제가 응축되어 68에서 터진 거라면,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68을 겪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반드시 68일 필요는 없지만 일상에서의 결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한국사회가 민주적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최근 몰두하고 계신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가 일상의 결을 바꿀 수 있을까요? 기존의 역사관과는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나요?

 

그동안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래, 좋다. 당신의 주장에 수긍하지만 대안은 무엇이냐였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대안을 제시한다기 보다 기존의 역사관을 새롭게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트랜스내셔널 개념을 제시하게 된 겁니다. 이건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역사를 보면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은 현대 자본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사실 아주 먼 고대부터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동으로 글로벌리제이션이 있어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요. 또 신라 금관은 시베리아에서 출토되는 스키타이 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한민족 또한 단일민족이 아닌 시베리아 쪽에서 넘어 온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석굴암은 간다라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았죠. 그런데 간다라 미술양식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간다라 지역 원정 결과물입니다. 그리스 헬레니즘의 조각 기법이 인도에 전해졌고, 거기서 만들어진 헬레니즘 기법으로 불상들을 조각하기 시작한 것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불상이 서양인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거죠. 국경 개념도 근대에 와서나 생긴 개념이죠. 전근대사회에는 국경개념이 지금과 달라 여권이 없었어요. 여권은 쟈코뱅의 근대적 발명품인거죠. 그렇다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전근대 사람들도 얽혀 살아왔던 겁니다. 얽혀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사가 만들어지니 오늘날의 국민국가의 경계선으로 딱 끊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사로만 한정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많은 것들을 간과하게 되지요.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는 미래를 위한 역사관이라기 보다 과거의 글로벌리제이션을 간과했던 역사 서술에 대한 지적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에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트랜스내셔널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로 한국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데, 그렇다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에 대해 한국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기존의 내셔널 패러다임으로 보면 중국이 자기 국토에 자기네 인민의 결정에 따라 나무를 베고 사막을 만들어도 우리는 사실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결과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죠. 한국 산림청에서는 중국과 협력해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에 불과하지만 이는 국민국가의 관점에서는 최선인 거죠. 체르노빌 때는 어땠나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었던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우크라이나이지만 벨라루스와 접경지역에 있었지요. 사건 이후 바람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원전이 있던 지역만 오염됐는데, 벨라루스는 국토의 3분의 1이 오염됩니다. 벨라루스의 오염된 지역 거주민들은 이주를 해야 했어요. 그런데 당시는 소련으로 엮여 국가 간 갈등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렇다면 현재 국토의 3분의 1이 황폐화된 벨라루스는 어디서 보상 받아야 할까요? 현재 동유럽에서는 만일 체코가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면 폴란드 의회나 우크라이나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과거라면 체코가 자기네 자본으로 국민의 동의 하에 핵발전소를 세우는데 다른 나라가 상관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체르노빌 사건이 있고 보니 이것이 체코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 모두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된 거죠. 그런데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후쿠시마 사건 이후 한국의 전문가들이 가니 일본 측에서는 이것이 국가의 안보 문제라며 원천봉쇄 합니다. 더 걱정인건 중국이 황해연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기존의 내셔널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그 어떤 개입도 할 수 없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은 중국의 계획에 대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핵발전 플랜트를 수출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더군요. 이렇게 얽혀 있는 사회에서 더욱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접근법으로 트랜스내셔널 개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 개념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위해 기존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요.

 

사실 내셔널리즘 자체도 우리사회에서 고유하게 발전해 온 개념이 아닌 유럽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국사라는 말이 한국어일까요? 그건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전세계 사학과에서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구분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에요. 근대 교육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도 ‘national history’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일본 최초의 국사책은 불어로 쓰였죠. 파리 엑스포에 출품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것들이 나중에 교육을 위해 동경제국대학에서 국사 교과서로 쓰고, 동양사를 만들어 냅니다. 국사와 동양사를 구분한 건 일본은 동양이 아니다, 일본은 너희 서양과 다르지 않은 대등한 국가이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만들어낸 동양의 이미지는 조선과 중국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그래서 일본에서 동양사의 대상은 조선과 중국이 되고, 국사의 대상은 일본이 됩니다. 일본에서 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구조가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 우리나라 역사도 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구분하게 되었어요. 기존의 국사 체계는 우리의 고유한 발명품이 아닌 일본의 가공식품을 수입한 것과 다름없는 것이겠지요. 일본에서 교육받은 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만든 국사는 결국 주어는 다르지만 문법은 같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틀을 깨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분명히 인지하고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비판을 받게 될 수도 있고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앞서 강조하신 사회적 맥락 읽기의 중요성을 실천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그에 대한 이유나 목적을 찾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연구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주장 역시 한국사회의 상식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앞으로 더 힘들 수 있겠지요. 그런 것들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연구자의 본분을 생각하면서 공부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동시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내 연구의 이유라고 봅니다.

사회의 맥락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분명 아닙니다.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신문읽기를 권장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 맥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권력 문제를 이야기 하려면 푸코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형제와 나의 관계, 또는 교수와 나의 관계에서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으려 하는 것부터 시작일 수 있겠지요. 반드시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고 예민하게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예전 같은 세상이라면 그람시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창공에 빛나는 별이 있고, 북극성을 쫓으면 우리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실현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별들은 모두 흩어져 있고, 북극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환상에 빠뜨릴 수 있겠지요.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공부할 때 정의를 정교하게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이런 사상이 어떤 맥락에서는 이렇게 재현되고, 또 다른 맥락에서는 저렇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네요.

 

 

▲ <우리 안의 파시즘>의 저자 임지현은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며, 학문과 국경의 경계와 틀을 넘어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폴란드의 바르샤뱌 대학과 크라쿠프 사범대학을 오가며 연구와 강의를 했다. 한국 사회의 본질주의적 역사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만들어진 역사로서의 민족주의와 국사의 해체를 주장해왔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든 이후 국사(national history)’의 대안으로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모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