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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6호] 집단 지성의 시대 지식과 권력 그리고 지식인

 

 

 

집단 지성의 시대 지식과 권력 그리고 지식인

 

 

 

홍태영 /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과 교수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고고학적 그리고 계보학적 방법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을 통해 분석한 푸코에 따르면, “권력이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 그리고 권력과 지식은 자기의 영역 속에 상대방을 직접 끌어들이고 있으며, 지식의 영역과 상관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고, 또한 권력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그 관계를 만들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감시와 처벌) 푸코는 권력의 생산과 지식의 생산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물론 권력의 기술과 지식 그리고 그 대상과 방법 등 권력과 지식 사이의 관련성을 자신의 지적 작업을 통해 그 역사 속에서 재구성하였다. 말과 사물에서는 에피스테메의 변화를 통해 서구의 역사를 서술하였고, 그의 후기에 이르러 정교화한 개념인 생명관리권력(bio-pouvoir)을 통해 지식에 바탕을 두어 삶을 관리하는 권력의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푸코는 결국 권력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지식과 권력의 결합의 실재들을 분석해 낸다. 푸코는 푸코는 권력/지식의 개념쌍을 통하여 근대 정치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지식/권력의 개념은 일정한 결합의 형태를 띠었고, 그것의 균열 속에서 지식인의 특정한 역할이 주어진다.

 

지식인의 탄생

 

지식인이라는 개념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특정한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레퓌스사건과 함께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그와 함께 되새겨야 할 사항은 지식인의 탄생은 엘리트의 생산과 분열이라는 과정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지식의 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엘리트의 과도한 생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엘리트들 간의 분열의 확대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장에서 멀어진 지식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개입을 통해 지식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프랑스 제3공화국의 엘리트 충원 과정에서 자의적타의적으로 권력의 장에서 배제된 집단이 자기 선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옹호하고 자신의 권력을 형성하면서 지식인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후 지식인에 대한 다양한 상과 역할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존재하였다. 만하임의 경우 지식인이란 다양한 관점들을 역동적으로 종합함으로써 최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 즉 종합의 최상의 담지자일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반면에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유기적으로 속한 계급의 관념과 갈망을 대변하는 당파주의적 개념을 제시하였다. 20세기 중반 서구의 근대적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사르트르는 만하임의 보편적 지식인과 그람시의 당파적 지식인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보편적 지식 및 기술의 추구와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당파적 이해관심 사이의 모순을 경험한다고 본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은 철저히 모순으로부터 출발하여 보편성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는 소외계급이 필요로 하는 계급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이 지식인에게 주어져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계몽적 지식인상을 보여주었다. 사르트르는 철학이 지식의 체계적 총체화로 인식된다는 의미에서 철학을 한 마지막 철학자이며, 대학이라는 장소에서 벗어나있던 마지막 철학자였다.

20세기 말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달, 인터넷의 확산,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의 발전 등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과 새로운 지식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보는 디지털화되면서 전달 및 접근의 측면에서 놀라운 효율성을 가진다. 또한 디지털화된 정보는 다른 정보요소들과 재조합되면서 하이퍼텍스트 형태를 띠게 된다. 정해진 시작과 끝이 없는 하이퍼텍스트는 마치 미로나 뿌리 줄기와 같이 얽혀 있어서 읽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복수의 텍스트 가능성이 열린다. 새로운 지식의 형태로서 하이퍼텍스트의 경우 지식의 생산자에 해당하는 저자의 권위는 거의 사라진다. 지식의 생산과 해석을 둘러싸고 중앙집중적인 권력이 다원적 권력으로 전환된다.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의 개방성, 다의성, 상호텍스트성, 탈중심화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데리다의 말처럼 텍스트를 분리된 단위로 독서한다거나, 기호 사용의 시스템과의 관계를 고려하기도 하며, 탄압적이고 억압적인 목소리에 대한 거부 등을 통해 능동적인 독자들이 형성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지성의 출현

 

인터넷의 발달은 지식의 소비에 있어서 민주화를 넘어서 지식생산과정에도 일반대중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지식생산의 민주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가상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새로운 단계의 지식생산 메카니즘으로서 집단지성이 출현한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사회에서 대중들의 대표적인 의견표출방식으로 등장한 촛불집회는 인터넷 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현상이다. ‘황우석사태를 가져왔던 인터넷 포퓰리즘과 인터넷 상에서의 다양한 논의들, 2002년 효순, 미선을 위한 촛불집회와 인터넷의 역할, 그리고 2008년 쇠고기 사태와 촛불집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 등은 인터넷이라는 사이버공간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인터넷이 단순히 대중을 동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들이 형성되고 논박, 소멸 혹은 확산되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이제 소셜 미디어 도구는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사회운동 과정에서 특정논객의 영향력이나 전통적 지식인들의 역할이 축소되고 훨씬 자발적이고 참여적인 집단지성이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를 이성적 군중시대가 오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개인들의 유연성과 확장성, 생존성을 강점으로 하는 네트워크에 자발적으로 접속하면서 일반인들은 엘리트집단으로부터 지식권력을 회수하기 시작하였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 새로운 소통수단을 통한 영리한 군중이 행하는 사회적 의사소통은 권력과 대항권력이 함께 진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본다. 1999년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 회의에 항의하는 벌떼작전, 2001년 필리핀에서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몰아낸 영리한 군중’, 2012년 중동지역에서 보여준 SNS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 등을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낙관적 전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시위의 경우 양적으로 다양한 지식이 생산되었지만 질 높은 지식이 생산되지 않았으며, 의견의 쏠림현상이나 집단적인 동조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높은 접속성을 통해 활발한 의견의 개진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숙의의 정도를 평가하는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 등에서 한계를 보여준, ‘디지털 대중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웹을 통한 집단지성의 탄생은 결국 민주주의의 확산, 불평등의 완화, 자유와 집단적 창의성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지며 또한 그 역으로 그러한 조건들 속에서 집단지성의 탄생 가능성이 확장된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과 확산, 디지털 정보처리 기술의 고도화 등에 따른 사이버 문화와 사이버 스페이스라고 불리는 사회적 공간의 형성 속에서 지식과 권력은 그 의미에 있어서 질적인 변화를 맞고 있으며, 그것의 매개항 역할을 하는 지식인 역시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지식인은 보편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전문적 지식인으로서의 특화된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 사르트르 이후 세대 지식인들은 대학이라는 틀 속에서 활동하였다. 푸코는 1968년 이후 이전의 보편적 지식인, 즉 보편성의 담지자 역할을 추구하는 고전적 지식인을 대체할 새로운 전문적 지식인을 제시하였다.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 능력 그리고 진리에 대한 관계를 정치적 투쟁의 장에서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정치적 의미로 이해한다고 푸코는 밝히고 있다.

 

보편적 지식인의 역할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직도 보편적 지식인의 역할의 유효성을 강조한다. 사이드는 지식인은 공동체의 열망, 보편적인 이상에 대해서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푸코가 말하는 대로 지식인이 전문가 혹은 특수지식인으로 머무르는 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지식인은 대중을 향해서 그리고 대중을 위해서 하나의 메시지, 관점, 태도, 철학이나 의견을 나타내거나 구현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적 존재라고 정의하고, 보편적 원칙에 기초하여 자신의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한다. 부르디외 역시 지식인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비판의 역할임을 강조하였고, 촘스키는 권력에 맞선 이성이라는 표현처럼 억압적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임을 강조하였다. 한국 사회의 경우, 특히 8-90년대 대학을 거치면서 학문을 한 지식인의 경우 보편적 지식인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양한 대안적 지식공동체들은 기존의 지식/권력 관계, 대중과 지식인 관계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다중과의 새로운 연대를 통한 삶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은 집단지성의 형성이 기존의 지식/권력의 관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지식인의 새로운 역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식 자체의 변화 그리고 그를 통한 지식/권력 관계의 변화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요구 등이 결합되어 있다. 그러한 가운데 지식인의 새로운 상을 고민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는 이중적 사고를 진행시킬 수 밖에 없다. 현대의 지식인은 근대 학문체계의 성립과 엘리트/지식인 대당 개념의 형성 속에서 주어진 역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국 사회는 서구 지식인이 갖는 문제의식에 덧붙여 식민지 경험이 주는 탈식민의 과제, 그리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과제들, 신자유주의가 가져오는 세계사적 과제 등이 중첩되어 나타나면서 보편적지식인의 과제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에 덧붙여 집단지성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다. 대중에 의한 지식/권력의 전유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의 전문적 역할과 지식/권력의 접합을 위한 계기적 역할이 그것이다. 지식생산 메카니즘에 대중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지식 내용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총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총 대신 무엇을 만드는 것이 우리 공동체에 더 나은 삶을 가져올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고, 또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 생산 메카니즘의 변화는 지식과 권력과의 관계 설정에서 대중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전문지식인의 역할이 요구되며, 그것은 동시에 공동체 삶의 윤리적 원칙의 확립과 윤리적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지식의 형성이라는 것과 맞물려 존재한다. 현재 자주 언급되는 기초학문의 위기 속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새로운 자리매김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학문적 표준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강요되고 있으며, 지식 공동체가 거기에 포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동안 한국사회에서 사회과학은 외래학문의 수입과 그 권위에의 의존이 강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적 지식과 지식인 상의 새로운 정립은 한국적 사회과학의 확립이라는 과제와 맞물려 있다. 지식의 정체성과 지식인의 정체성 형성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