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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7호] 포스트모던과 법(法), 그리고 정의(正義)에 대하여

 

 

포스트모던 사회는 가치다원주의 이념아래 수많은 권위들이 평등한 지평에서 논의되고 다양한 갈등과 담론들이 활발히 유통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도처의 포스트모던 이론에 영향을 받은 사회운동들은 현 사회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갈등을 공론화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 법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권리를 요구하는 주체들이 제도와 법의 바깥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정당성을 주장할 경우 그들의 문제화과정은 위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법은 이상한 방식으로 착종되어 더 이상 삶과 법이 구분되지 않는 형상을 보이고 있다. 폭력적인 법의 힘 앞에 모든 삶과 사회가 내맡겨진다. 이러한 문제는 법()이 곧 정의(正義)로 이해되는 데에서 비롯된다. 과연 법은 정의를 대표하고 보장하는 영역인가? 법과 정의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메울 수 없는 틈이 존재하지 않을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정의의 문제는 어떤 고민 위에서 출발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던과 법(), 그리고 정의(正義)에 대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가치다원주의와 수많은 권위들

 

 

이해수_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수많은 권위들이 저마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혼란스럽게 사회 저변에서 배회하고 있다.” 이는 포스트모던(postmodern) 사회에 대한 하나의 충실한 설명이 될 수 있다. 포스트모던체계는 혼란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사회를 진단하는 관점과 접근법 또한 복잡한 양상을 띤다. 포스트모던 이론은 근본적으로 근대적 계급, 정치 구조만으로는 현대사회의 구조와 갈등을 충실히 반영하고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우리 한국 사회 속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지적 담론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도록 한다. 본고는 포스트모던의 핵심 어휘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권위들에 대한 고민으로 글을 이어보도록 하겠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권위들은 사회 작동의 조건으로, 혹은 사회의 건강함을 증명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탈근대적 열린사회는 층위와 성격을 달리하는 다양한 갈등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여러 담론들이 소통되는 것이 특징이다. 오히려 특정한 담론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여 다른 모든 가치를 그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그 자체의 보수성으로 인해 질타 받는다. 가치다원주의라는 이념은 포스트모던이론의 핵심이다. 하지만 가치다원주의라는 핵심 특성 때문에, 수많은 권위들은 정당화되는 동시에 빈곤해진다. 가치다원주의는 그 긍정적인 이념, 즉 모든 사회의 권위들을 정당한 권위로 혹은 평등한 지평에 올려놓을 수 있게 해준다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특성 때문에 권위들의 역사성, 각 권위들의 권력적 관계, 현실적 조건 등을 탈각하는 작업이 동반된다. 바로 이 탈각을 거쳐야만 각 권위들은 가치다원주의라는 평등한 지평에 포함될 수 있다. 현실에서 탈각화를 동반한 평등화가 이루어지는 영역은 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자기모순과 법의 지배의 완성

 

수많은 권위들은 평등한 지평이라는 추상성으로 포섭되는 한에서, 그리고 본질적으로 법적 체계에 받아들여지는 한에서 정당화 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영향을 받았던 사회운동들(여성, 성소수자 등)을 살펴보자. 많은 운동들이 목표로 설정하고 그 운동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잣대는 법제화여부다. 각 운동의 목표는 법적으로 그들 부문의 권리를 인정, 보장받고 그것이 다른 계급적, 정치적 갈등과 마찬가지의 지평에서 제도화되어 논쟁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것이 성공을 거둘 경우,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소외됐던 갈등들이 공론화되어 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갈등은 법제도라는 국가론적인 틀 내부로 포섭되고, 국가는 그 제도 내부에서 그 갈등이 다루어지는 경우만이 정당하며, 이 외의 방식으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법 위반임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법제도의 궁극적인 보증력은 국가행정권의 집행 능력과 공무원들의 의지, 대통령의 관심 등 국가 관료적 영역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의식, 관점, 나아가 사회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을 던지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탈근대적 갈등들은 손쉽게 이런 관료적 영역에 의해 쉽게 통제·관리되는 영역이 되어, 그 문제틀이 문제화에서 권리와 보장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권리와 보장에는 기존의 권력화된 법제도의 영역에서 권리에게 요구하는 의무혹은 시민성의 영역이 따라오게 된다. 시민성을 지키는 한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시민적 권리는 언뜻 보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함의 하고 있다. , 해당 권리주체들이 이미 제도화된 것의 바깥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정당성을 주장할 경우, 이제는 단지 인정투쟁차원의 문제를 넘어서서, 법적 제도를 준수해야할 시민성에 반한 위반에 대해 정당한법적 처벌을 감당해야 하는 잠재적 처벌가능성 또한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화된 영역을 벗어난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나타나는 갈등은 법적 정당성의 이름으로 손쉽게 재단되고 관리될 수 있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론 자체가 다원주의에 따른 가치 판단에 의해 자기모순과 자기순환의 문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포스트모던 이론은 모든 가치들, 권위들이 평등한 지평에서 다루어져야한다는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다. 즉 이념으로서의 가치다원주의가 포스트모던이론의 전제가 된다. 하지만 주지하듯 포스트모던 이론은 어떤 이념이나 가치를 전제하거나 절대적인 위상에 두는 것을 거부하는 이론이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념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론이 성립하지 않고, 이념이 전제되면 이론 자체가 부정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가치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는 부분과 전체라는 관계를 갖고 있다. 가치다원주의도 하나의 가치, 권위로서 포스트모던 이론 내부의 한 부분이다. 이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 내부의 한 부분이 자신(전체)의 존재 조건이 되고, 전체의 존재는 이 부분을 정당화하는 이런 자기 순환적 형식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론이 자가당착에 빠진 상황에서, 이 원칙이 정당하게 현실에 적용되고 현실과 관계를 맺기 위한 연결고리로서 법이 동원 된다. 가치다원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실상 법적 체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임에도 법이 현실에 행사하는 힘을 차용하기 위해 법을 동원한다. 이에 따라 현실 사회에서 해당 영역의 문제화의 잠재력을 배제하면서 법의 내부로 그 영역을 포섭시키는 방식으로 법적 정당화가 확보된다.

이로써 포스트모던사회에서 모순적으로 법치주의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삶의 모든 영역이 법으로 포섭되어 법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법인 사회가 구축된다. 수많은 권위들이 그들의 정당성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법적 정당성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영역들은 그들 고유의 정당성을 요청하면 요청할수록 그들 영역은 법체계 속으로 포섭되면서 그들 고유의 문제화 능력은 소실된다. ,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수많은 이념들은 사실상 빈곤의 이념에 다름 아니며, 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진정한 부활이 아니라, 갈바니 전기 작용(발터 벤야민, 경험과 빈곤, 발터 벤야민 선집 5p.173)”에 다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하에서 수많은 이념들은 그것이 사회 속의 다원화된 모든 갈등들을 문제화, 정치화시키겠다고 하며 모든 갈등들에게 진정한 부활을 약속한다. 하지만 사실은 죽어있는 시체들에 경련만 일으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기만하는 갈바니 전기 작용에 불과한, 사이비 과학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주권, /권리, 국민/민족, 인민, 민주주의, 일반의지 같은 용어가 그 개념이 지시하던 것과 이제 더 이상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아감벤, 정치에 관한 노트, 목적 없는 수단p.120). 아감벤의 논의를 본고의 문제의식에 맞게 전유해보자.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 탈근대사회의 각 부문들을 대표하는 개념들은, 삶의 모든 영역이 법적 영역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원래 지시하던 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현실을 함축하게 된다. 법에 의해 오염된 현실이 그것이다. 현실은 권리와 의무관계에 포획되어 법적 정당성이라는 것에 오염된다. 또한 (카프카가 그의 소설에서 잘 보여주듯)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은 법적용이 법규범을 전제하지 않는 폭력적인 법의 고리에 포획되어 법적 판결의 영역으로 떠넘겨지게 된다.

 

포스트모던과 정의(正義)

 

포스트모더니즘이 법을 정당성의 원천으로 호출한 것은, 법이 현대사회에서 정의를 대표하고 보장한다고, 혹은 법과 정의가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사람들 간의 관계,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 사회의 각 부문들의 관계들이 법대로 수행되면 정의가 확보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법과 정의 사이에 본질적으로 벌어지는 엄청난 틈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사람들이 법의 질서를 정의의 영역과 혼동함으로써(발터 벤야민, 운명과 성격, 같은 책, p.70) 법의 질서가 이제껏 유지되어 왔다는 벤야민의 통찰 앞에서, 우리는 삶과 법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지경까지 법의 침투가 가속화된 현대의 우리사회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위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는 이름 아래, 법의 침투가 어떤 식으로 더욱 관철되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떤 것이 법의 영역으로 포섭될 때 그에 대한 법적 정당화가 법적 처벌의 정당화와 구별 되지 않음을 살펴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는 원리주의나 인종주의처럼 어떤 특정한 이념의 절대 우위로 다시 회귀하여 이런 상황을 외부로부터 타개한다거나, 법을 폐지, 혹은 다른 종류의 법으로 다시 재구축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정의는 법의 영역에서 사회의 각 부문을 떼어냄으로써 법적 정당성이라는 것에서 그것들을 해방시키고 원래의 맥락으로 돌려주는 데에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정의는 세계가 절대로 전유되거나 법 질서화 될 수 없는 선()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상태’(아감벤, 예외상태p.124)”를 의미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질 때 포스트모던 사회 정의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의 우리 삶에 대한 고민이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