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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8호]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지식과 경험의 순환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동시에 모색하는 협력교육의 실험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지식과 경험의 순환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동시에 모색하는 협력교육의 실험

 

심광현_한국예술종합학교 미학/문화연구 교수

 

현재 한국 대학들은 구조조정의 격랑 속에서 표류 중이다. 어떤 면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은 한국대학이 지난 20년 간 브레이크 없이 누적된 과잉생산 대학졸업자는 1990144만 명에서 2004340만 명까지 증가했다가 2012294만 명으로 주춤한 상태다 으로 치달은 결과 2017년이 되면 대학 정원과 해당 학령인구가 일치하게 되는 포화상태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인 면에서 보면 25~34세 사이 연령층의 58%가 고등교육을 이수하게 되어 OECD 국가 중 1(OECD 평균은 35%)를 기록, 고등교육의 보편화라는 성과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비용들을 개인들이 부담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OECD 평균보다 23%나 더 많은 (해당 연령기의 1/4이나 되는) 청년 인구가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는 얘기도 된다. 이런 낭비<서열화된 학력사회>가 요구해온 경쟁압력의 구조화에서 비롯된 것임은 물론이다.

한국대학은 국공립 대 사립대의 비율이 2: 8로 시장화되어 있기 때문에 누적된 과잉생산의 위기를 대공황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의 파괴적 메커니즘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공황은 과잉생산을 야기한 과잉경쟁의 해악을 일거에 해소하면서 다방면의 협력을 창조적으로 모색할 수 밖에 없는 기회를 전체 구성원들에게 강제한다는 점에서 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간 심화된 구조적 위기의 근본 원인이 <경쟁사회-경쟁교육>에 있다는 점이 확인될 경우 <협력사회-협력교육>이라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방향전환 하기 위한 노력이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열화를 위한 경쟁교육>을 넘어선 <공진화를 위한 협력교육>은 단지 청소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중년 세대는 자동기술화의 가속화에 따른 직업 군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능력 교육을, 노인 세대는 세컨드 라이프를 대비한 새로운 교육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근래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창의성><융복합교육>을 시대적 화두로 내걸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나 기업이 요구하는 창의성과 학문간 융복합은 경쟁을 통해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창의성과 융복합이기에 더 많은 자기 계발 경쟁을 강제하여 더 많은 탈락한 자들의 치유 수요를 창출해내는 <경쟁교육-자기계발-치유-창의성-경쟁사회>라는 악순환 고리를 오히려 완성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악순환고리에 들어가서 실제로 보상을 받는 자들의 숫자는 점점 줄고 있다. 사회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의 수요를 경쟁교육이라는 낡은 틀 속에 다시 가두고 있는 이런 퇴행적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단지 교육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맑스가 포이에르바하 테제 3번에서 강조했듯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며, 교육자 자신도 재교육되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해 볼 때,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교육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 새로운 교육이 협력교육임은 물론이다. 협력교육은 두 가지 차원에서의 협력을 요구한다. 하나는 다방면의 교육자들 간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경쟁교육이 고수해온 지식들 간의 분리를 극복하여 지식들 간의 연결과 순환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교수와 학생 간의 다차원적 협력을 통해서 서열화된 상대평가가 만들어낸 지식과 삶의 분리, 지식인과 대중의 분리를 극복하여 지식과 삶, 지식인과 대중 간의 쌍방향 소통과 순환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차원에서의 연결과 순환의 부재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양산해 왔다.

1) 우선 학문 들간의 연결 부재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흐름의 전체상을 학문적으로 조망할 길을 없게 만들며, 연구자들은 부분적 지식에만 매몰되어 다른 지식들 간의 연결고리를 학문적으로 제시할 수 없음은 물론 사회 전체의 대안적 흐름을 연구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기에 학생들 역시 백화점 식으로 나열된 수업을 들으면서 지식과 삶, 학문과 사회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게 되어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나아가 학문간 연결과 순환의 부재는 초중등 교육과정에서도 반복되기에 동기부여가 안 되는 주입식 지식교육의 과잉현상을 초래한다. 초중등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아무리 학생들의 신체적-정서적-인성적 발달에 걸맞은 통합교육을 실행하고자 해도, 교수들이 교양교육에서도 연결하지 못한 교과지식들을 교사들이 임의로 연결하여 압축할 수는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러는 사이에 청소년들은 이제 <공부 박스> 속에 갇히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리는, 희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2) 전문가들 사이의 소통 부재로 인한 사회 시스템의 전체상에 대한 이해 부재는 대중들에게도 사회 변화와 정치적 대안에 대한 무관심을 강화하는 등 큰 문제점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사회 체계의 거시적 흐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질수록 사회 전반의 민주화 역시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대중의 적극적인 정치적 관심과 참여가 없을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독점자본과 관료들의 전횡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전횡에 맞서기 위해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을 위시한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전개되어 왔지만 이런 운동들 간에도 연결과 순환이 부재하여 사회운동과 대중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대학 안에서나 대학 밖에서나 모든 지식과 경험들은 격리되어 연결이 부재하며, 교수와 학생, 지식인과 대중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는 결국 민주주의의 약화와 위기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학생들, 일반 시민들이 함께 모여 기존의 지식과 학문과 사회적 경험들을 함께 나누어 연결, 순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교육의 틀을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도 지난 해부터 이런 취지의 실험들이 대학 밖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인문학협동조합, 학습협동조합 등이 그것이다. 지면 관계 상 여기서는 지난해 말에 결성되어 현재 시범강좌를 시작하고 있는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이하 <지순협>)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조합이나 생산자조합으로 구분되는 일반적인 협동조합과는 다르게 <지순협>은 지식생산자(교수)와 지식소비자(학생)가 함께 평등한 조합원으로 참여하여, 서로의 역할을 교환할 수 있는 생산자소비자 복합형태의 협동조합이다. 이런 독특한 형태는 지식과 지식 간의 연결만이 아니라, 지식과 삶, 지식인과 대중, 교수와 학생 간의 <다차원적 협력교육>을 설립이념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 협동조합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에게 불균등한 형태로 <고립, 분산되어 있었던 학문적 지식들과 일상적 삶의 경험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원활하게 순환>하게 만드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조직하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하기에 <지식순환>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외려 고립 분산된 지식들의 홍수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바로 오늘의 상황에 꼭 맞는 표현이다. 타당성이 입증된 수많은 과학적 발견들, 중요한 철학적 통찰들, 감성과 상상력을 풍요롭게 확장시켜주는 예술적 실험들, 대안적인 사회제도의 모델들과 정치적 프로그램들은 분명히 여기 저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런 귀중한 발견들은 각자의 전문분과의 벽들에 가려져 흩어져 소통되지 못하고 있고, 각자는 모두 눈이 먼 채 코끼리의 다리를 더듬고 있는 상황이다. 연결되지 못할 새로운 지식의 생산보다 이미 만들어진 중요한 지식들의 연결과 순환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런 취지에 공감한다고 해도, 우선, 방대한 지식들과 경험들을 어떻게 연결, 순환할 수 있을지 난감할 수 있고, 또 그런 새로운 노력을 통해 어떤 성취가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지순협>은 이런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 노력에 동참하고 있는 필자 나름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의 지식순환을 통해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 나가려는 전망을 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연결망과 효과는 향후 공동의 협력교육의 경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결망은 연구자들에게는 4 분면으로 흩어져 있는 모든 분과학문적 지식들이 개별 주체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며, 또 학습자들에게는 이런 회로들을 이용하여 지식과 경험의 홍수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적인 항해지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학문과 지식은 오직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데, 오늘날 경쟁적 고등교육제도와 분과학문제도, 지적재산권제도 모두는 이런 사회적 지적 성과를 부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고, 그로 인해 다수가 사회적 지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다리와 벽들이 높아질수록 역으로 지식과 경험의 창발성이 줄어든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맞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지식생산의 사회화와 지적 경쟁 및 재산권 의 사유화 사이의 모순은 생산력과 사회화와 생산수단의 사유화의 모순이라는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21세기적 발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순협>이라는 새로운 교육적 실험은 이런 모순을 풀기 위한 생산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 실험은 대학 밖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대학 내에서도 기본 취지에 공감하기만 한다면, 상이한 전공 연구자들과 교수, 학생들 사이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열린 형태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대학의 바깥과 안에서 경쟁교육을 가로지르는 협력교육의 실험이 다차원적으로 활성화된다면 그런 실험을 통한 새로운 공유경험과 창의적 지혜들이 합쳐져서 경쟁사회를 넘어서 협력사회로 이르는 길들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