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4. 8. 6. 14:55

 

윌리엄 제임스의 저작에서 “Each”가 주는 의미와 영향에 대한 고찰

(A Pluralistic Universe The Will to Believe 를 중심으로)

 

박재한_종교학과 석사과정 수료

 

논문 이야기 1

 

석사 과정에 입학한 나에게 논문이란 것은 막연하고 커다란 산과 같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논문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학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 석사 과정의 24학점은 심적으로 논문을 쓰기에 충분하지 않은 시간처럼 보였다. 논문, 그 이름만 들어도 부담감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하지만 학부와 달리 대학원 연구실 의자와 책상이 개별적으로 주어진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업 이후에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장소, 이번 서유강론에 게재된 나의 논문도 이곳에서 완성하게 되었으니 대학원 연구실의 당위성이 저절로 입증된 셈이다.

 

내가 논문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서유강론에 논문을 제출하게 된 이유는 함께 대학원 연구실을 지키는 친구의 권유였다. 내 옆 자리에 앉아있는 박사 과정 중인 친구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친구인데 학교의 소식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에 눈이 밝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논문상에 응모하였던 것이다. 순간 내게도 이것이 나의 논문에 대한 부담감과 더 깊이 직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내가 쓴 글에 대해서 평가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논문상에 응모한 거의 모든 사람에게 비공개로 심사를 해주신 교수님들의 심사평을 전해준다고 하였기에 상금을 떠나서 내가 평가를 받음으로써 현재 나의 위치를 가늠하고 논문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란 기대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나의 주된 목표는 심사평을 받아보는 것이었다.

 

 

논문 이야기 2

 

    

 월리엄 제임스(1842-1910)

더 나아가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합리성과 절대주의의 차원에서는 소수의 종교 현상들이 중심 무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윌리엄 제임스는 페히너와 헤겔까지도 뛰어넘어 그 현상들의 순간적 경험까지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 소수의 현상 또한 하나의 우주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드디어 종교간 대화의 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공존이 가능한 세계, 그리고 그 공존의 조합까지도 또 다른 새로운 우주로 여길 수 있는 조화로운 세계! 제임스는 이렇게 홀로 미국인으로서 당시 옥스퍼드 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불어넣어주었다. 혹자는 제임스가 이성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임스는 이성과 합리성을 무시하지 않고 재해석하려했던 사람이다. 그에게 합리성은 따듯한 열정과 믿음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정치와 연합하여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하려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의 국가신도 부활과 식민지 때의 민족말살정책의 모습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현 시대는 종교적 배타성과 폭력성의 양상이 정치 현상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생명 정치 하에서 벌거벗은 주권을 가지고 오늘도 호모사케르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진정 나의 나됨이 타자로부터 기인할지도 모른다는 수수께끼 같은 모순적 질문들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살아갈 때 종교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또한 공존하는 연합됨의 즐거움을 향유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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