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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0호] '귀환하는 영웅처럼 당당하게'

 

귀환하는 영웅처럼 당당하게

 

강진옥_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무속의례는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현장이다. 인간은 소망을 충족하기 위해 신들을 청하고 신은 초대에 응해 굿청이라는 공간에 내려온다. 강림을 통해 이루어진 신과 인간 간의 소통 내용들은 무속적 신성관념과 신의 존재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속의 의례구조를 관찰하면, 신과 인간은 특별한 상황, 즉 제의의 시공간을 제외하고는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로 관념되고 있다. 신은 굿의 의례적 절차에 따라 초대를 받고 인간과 소통한다. 그 지점은 인간세계의 한 지점이자 신성공간인 굿청이다. 굿청의 공간성이 중요시되는 것은, 상시적인 의례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여타 종교와는 달리 무속에서는 일상적 생활공간을 의례공간으로 사용하므로 신성공간으로의 전환을 위한 공간의 성화과정(聖化過程)이 반드시 요청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정화, 공간의 성화

굿은 기원의 방식이고, 기원은 정성을 통해 그 효력이 뒷받침된다고 한다. 따라서 준비과정에서부터 전제되는 정성들이기에는 몸과 마음은 물론, 제물마련이나 제의에 필요한 도구 제작, 굿이 벌어질 집안팎 공간의 정화까지 포함된다. 이는 신성과의 소통을 위한 준비로서 일상적 공간을 제의적 공간으로 성화시켜가는 과정에 해당되는데, 그 중심에는 정성스러움을 근간으로 하는 제주(祭主) 자신의 몸과 마음의 성화과정이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의적 절차에 따라 굿청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신을 맞이하여 머무를 만한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의례적 절차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굿의 시작부분에서 행해지는 주당물림이나 부정굿은 공간의 성화를 실현하는 절차인데, 제주도굿에서는 초감제가 이에 해당된다. 초감제는 종합영신제(綜合迎神祭)로서 베포도업침날과국섬김집안연유닦음군문열림새ᄃᆞ림오리정젯ᄃᆞ리순으로 진행된다. 우주개벽과 일월성신의 발생, 국토의 형성, 국가의 발생 등 지리적역사적 사상(事象)의 발생을 노래해나갈 뿐 아니라(베포도업침) 굿하는 날짜와 장소에 대한 지리적 역사적 정보를 자세하게 제시하며(날과 국 섬김), 굿을 하는 사유를 알리고 강신을 청한다.(집안연유닦음) 이는 굿이 이루어지는 지금 여기의 근거를 역사적 지리적 배경 속에서 마련하여 제시하는 것이자 굿을 하는 본주의 근거를 역사적 차원에서부터 우주적 차원의 시공간으로 소급해가는 것이기도 하다. 제의적 시간 속에서 마련된 거룩한 역사를 계승한 지금 여기에 신성이 강림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특히 천지개벽과 우주창생의 역사를 재현하는 <베포도업침>은 공간의 질서화, 즉 제의공간의 성화라는 의미기능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거듭되는 성화과정은 일상성을 소거하고 신성공간으로의 전환을 위한 의례적 절차들로서, 그것에 바탕하여 청신의 과정이 이루어진다. 굿의 구조는 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굿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제주도굿의 군문열림은 이러한 관념을 잘 보여주는데, 심방[무당, 濟州語]은 군문(초군문이군문삼셋 도군문)을 열자는 사설을 노래하고는 격렬한 춤으로써 그 문이 열림을 표현한다. 군문, 즉 신궁문(神宮門)이 열리면 신들이 강림할 수 있게 되고 신계와 인간계는 서로 열려있는 공간으로서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 순간 우주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상을 마련하게 되므로 군문열림은 신성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출발지점인 셈이다.

이어지는 분부사룀은 정성이 지극하기로 군문이 고이 열려서 제신(諸神)이 즐거이 하강하며, 부모조상의 영혼들도 내려와 고마워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신령이 직접 말하듯 구슬프게 노래한다. 이 대목에서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신령의 사연에 공감한다. 이러한 영게울림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물고 현현한 신성과 인간의 소통이 심방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이어 신이 하강하는 길의 모든 사()를 쫓아내어 깨끗이 하는 새ᄃᆞ림이 행해진다. 새ᄃᆞ림은 부정을 물리치고 길을 정화하는 길닦음의 과정이고 새풀이는 제주의 몸에 있는 사기(邪氣)를 쫓아내는 의식이다. ‘새ᄃᆞ림의 제의적 재현은 제가집의 몸을 정화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신이 하강하는 길의 정화가 제주 몸의 액을 쫓는 일과 동일시되는 과정이다. 공간적 성화가 제주 신체의 정화로 표상되는 이 절차는 공간적 상상력이 인문적 상상력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오리정신청궤는 하늘에서 내려온 18천신들을 마을 입구에까지 가서 맞이하여 제장 안으로 모셔들이는 절차이다. ‘오리정(五里亭)’은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로서, 신궁문이 열려 하강한 신들을 나아가 맞아들인다는 환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심방은 본향신을 표상하는 감상기를 들고 춤을 추며 밖으로 나가 신을 맞아들이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이와같이 신이 굿청으로 내려오는 과정과 인간이 맞이하는 과정은 다양한 공간적 표상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이렇게 들어온 신들을 위계에 따라 좌정시키는데(젯ᄃᆞ리) 모든 신들이 의례적 절차에 따라 굿청으로 들어와 좌정했으므로, 굿청은 이제 지상에 펼쳐진 만신전(萬神殿)이다. 지상의 한 지점에 지나지 않던, 굿청이 펼쳐진 공간은 이제 신들의 이동으로 인해 신성공간으로 전환되면서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한다.

 

신인동락(神人同樂), 신과 놀다

신들이 위계에 따라 좌정함에 따라 굿청은 만신전을 이룬다. 이는 제의적 절차에 의해 구축된 신성공간이다. 이러한 제의공간에서 신계와 인간계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실현하므로 신과 인간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신놀림의 주내용인 신인동락(神人同樂)은 신성현시와 신성체험의 정점으로서 탈일상성을 표상한다. 그것의 실현은 굿청을 꾸며주는 구조물뿐만 아니라 굿의 현장에서 신격을 상징하는 무복(巫服) 착용, 신성과의 소통을 구체화하는 무구(巫具), 음악(巫樂), (巫舞), 놀이(演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의례적 절차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전환된 제의공간에는 일상성이 소거되어 있다. 제주의 몸과 주거공간의 정화는 일상적 행위를 금기의 영역에 가두면서 시작되는데, 이렇게 축성해간 제의의 시공간에서는 일상적 업무나 관계들도 모두 멈추어진다. 일상적 질서가 정지되어 있는 그 공간의 중심축은 심방을 매개로 하는 신과 본주의 관계에 있다.

신이 굿청에 강림하면 무당을 매개로 하여 신과 인간 간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신의 말(공수)이 전달되고, 신을 놀리어 즐겁게 하는데 다양한 노래와 놀이 등이 동원된다. 이때 굿청은 신이 머무는 신성공간이자 인간과 신이 함께 하면서 신명을 발현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신명의 현상은 신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현현한 신들이 신명을 발현하면 인간은 신과 동락하면서 신성을 체험한다. 제주도굿에서는 서우젯소리로, 동해안별신굿에서는 집단 무희로 신명을 확인하며, 배연신굿의 뒷풀이는 난장(亂場)’의 신명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성과의 소통과정에서 신명이 실현되는 현상은 우리 무속의 신성관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내포한다. 신명의 체험은, 무속의 의례구조가 정성들이기를 통해 일상생활공간을 제의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처럼,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하여금 초월을 경험하게 하는 사건인 것이다.

 

일상으로의 복귀

제의적 절차에 따라 신성과의 소통을 이루었으니 굿의 목적은 이루어진 셈이다. 굿에 참여한 모든 존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의의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특별한 절차를 밟아왔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특별한 의례가 필요하다. 청신의 대상은 존신(尊神)들이지만 굿을 하면 그들을 따라 수비영신들까지 따라온다고 한다. 이제 굿이 끝났으니 그들도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청신의례에서 신들을 청해 들였던 것처럼 절차에 따라 돌려보내어야 한다. 신과 인간은 일상적 공간에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차마다 해당신격을 배웅하는 절차가 있지만, 굿의 마지막에 행해지는 뒷전은 전체적인 마무리로서 수비영신들까지 풀어먹이고 돌려보내는 절차이다. 굿이 시작될 때 거듭거듭 빠짐없이 초청되었던 신들은 이제 남김없이 각자의 공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신계와 인간계는 이 세상/저 세상으로 구분되고 단절된다.

신화는 시원(始源)의 시간에 일어났다고 믿어지는 원형적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제의는 원형적 사건을 행위를 통해 재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제의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무속신화를 구송하는 것은 신의 근본을 풂으로써 신성의 존재근거를 지금 여기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신을 호명(呼名)하는 제의적 행위로서, 해당 신이 굿청에 현현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신화적 서사가 전개됨에 따라 신의 행적이 구체화되면서 신성의 현시가 이루어진다. 신화의 주인공이 공간이동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신성성을 확인해가는 과정은 제의의 공간에서 해당 신들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고 갈 수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굿의 맥락에서 행해지는 신화구송은 그 자체로서 신성과의 소통을 위한 방식이다.

무속신화는 신의 근본을 풀이하는 이야기이다. 무속신화 주인공이 신격으로 좌정하기까지의 내력들이 서사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 무속에서 신은 처음부터 신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행위를 통해 신으로 전환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련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존재전환을 경험한다. 공간이동은 존재전환에서 중요한 의미기능을 수행하는데, 주인공에게 부과된 과제는 이계공간 내부에 진입하여 그 세계의 질서를 체득하고 진수를 획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이 신으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무속신화는 생성되어가는 신성의 존재태를 재현하고 있다.

 

우주 중심으로서, 지금 여기

무속의례의 의미 실현에서 의례적 절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말할 나위 없이 크겠지만, 의례의 의미 실현 양상은 수용자의 삶의 현실과 관련하여 파악될 때 보다 의의가 있을 것이다. 신성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상의 생활공간을 신성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정성이 요청되므로 무속의 제의공간은 정성을 들여 재현해낸 신성공간이다. 그러므로 수용자에게 제의경험의 중심축은 정성들이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극한 정성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 힘은 다시 외부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성과의 만남은 일상의 무의미성을 의미화하는 사건이다. 신성과의 소통을 통해 확보된 공간성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다. ‘지금 여기는 신성현시가 이루어진 곳이고, ‘는 신성체험을 통해 존재의 의의를 확인한 존재이다.

심방은 중요제차마다 해당신격의 내력을 풀이하는 본풀이를 구송한다. 신성성을 획득하게 된 내력을 풀이하는 무속신화의 구송은 신에 대한 찬가이자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위대한 신들의 행적을 서술한 본풀이에서 그러했듯이, 그것이 구송되는 지금 여기서도 그러한 신성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신들의 공간이동을 통한 공간체험의 현존성은 참여자에게도 의미화된다. 신성과의 소통은 제의가 실현되는 공간자체를 신명으로 충만하게 하는 일이며, 제의적 공간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 충만된 신명을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가 된다. 제차에 따라 신들이 돌아간 이후에도 신성으로 충만된 공간의 의미는 보존된다. 굿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신성체험을 일상의 삶에서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주기적인 의례는 이러한 신성현시의 체험을 지속시키려는 노력들이다.

천지개벽에서부터 역사적 시간을 거쳐 자신의 현존에 이르는 제의적 경험은 참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성을 우주적 차원에서 발견하게 한다. 초감제 서두에서 구송되는 <베포도업침><천지왕본풀이>는 천지개벽과 우주창생, 이승법과 저승법 마련 등을 통해 공간적 질서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초감제에서 구송된 사건은 신성한 역사이자 우주창생의 원형적 사건을 재현한다. 제의적 공간에서 신성과의 소통을 경험한 수용자는 신성체험을 통해 자기자신을 정립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굿의 주최자인 본주(제가집을 지칭하는 제주어)는 세계의 창생과 인문의 역사가 펼쳐지는 그 공간에서 엄연한 주체로 존재하는 자기자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문이 열려 신들이 강림하면 굿청은 지상에 펼쳐진 만신전을 실현하면서 우주의 중심으로 전환된다. 우주는 굿의 주인공인 내 집’, 우리 마을을 중심축으로 존재한다. 세계의 중심축으로서 나는 만신을 매개로 신성과 소통하면서 신명을 확인한다. 내 집에 펼쳐진 만신전, 그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 자신이 세계의 중심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자기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사건이다.

제의적 시공간에서 이루어진 공간적 변화는 신성현시의 사건이면서 굿에 참여한 사람의 내적 공간에서 일어난 인식의 전환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근거를 우주적 차원과 역사적 계보 속에서 확인하는 일, 그것은 근원적인 자기와 만나는 사건이고, 자신을 확인하고 자긍심을 갖게 하는 거룩한 경험이다. 신성현시는 강렬한 체험이다. 큰굿에 초대된 신들은 절차에 따라 돌려보냈지만, 만신전이 벌어졌던 공간이나 신성을 체험한 본주는 카오스 영역에 있다. 상징적 죽음을 거치고 복귀를 앞둔 입사자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기 전에, 신성현시의 체험을 내면화하는 근신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심방이 당부한 기간을 채운 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귀환하는 영웅처럼 당당하게.

 

참고문헌 :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