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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1호]여성주의 경제학: 휴머니즘을 위한 경제학과 젠더의 조우

여성주의 경제학: 휴머니즘을 위한 경제학과 젠더의 조우

 

홍태희_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성 편향적인 경제학

사회과학인 경제학이 사회 절반의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기존의 경제학이 여성의 경제행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의 공간 속에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학의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 사실 경제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는 유일한 인문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경제적 문제를 물어보면 겨우 차별 문제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으로 가서 물어보라는 대응을 한다.

 

경제학의 녹록잖은 사정은 이러하다. 근대 경제학이 태동한 스코틀랜드에는 당시 뉴턴 같은 물리학자들이 나와 자연과학의 법칙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경제학도 물리학 같은 엄밀한 학문을 만들려고 했고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만들었다. 이를 입증하려면 일단 셀 수 있는 영역, 실증할 수 있는 영역을 집중하여야 했다. 자연히 돈의 단위로 인간의 행위를 셀 수 있는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의 해명에 두었고, 계량화시키기 어려웠던 ‘집에서의 경제 활동’에는 관심을 접었다. 게다가 여성학자의 전무한 상황이라 남성연구자들은 자연히 자신의 경험에 집중했다. 이처럼 남성연구자에 의해서 남성적인 활동영역에 대한 경제학 연구가 주를 이루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경제학은 반쪽짜리 과학이 되었다.

 

이는 근대 경제학의 적통인 신고전파 경제학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아담 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파 경제학의 대통을 이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장 기구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가치론(한계생산력설)과 가치측정기준(효율성), 가치 결정 메커니즘을 마련하고 과학으로서의 정합성을 확보하려 했다. 사람들 사이에 상충된 이해관계는 가격을 통해 조정하면서 된다. 그런데 이 세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개인이 아니라 초역사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의존, 종속, 억압, 착취, 관심 등 일상적인 인간 사이의 관계는 배제한 채 현실을 해석했다. 가계는 소비, 기업은 생산하는 기능만을 탑재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의 저임금은 생산성 차이의 결과이다. 여성의 변수로 포함해 분석해도 성별 간의 역학관계는 배제한 채 접근함으로 현실 해명에 한계가 있다. 불평등의 문제는 성별 사이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러므로 신고전파가 경제학 연구대상에 여성 관련 부분을 추가했다고 해도 여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제도학파 경제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도학파 경제학은 배분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곳이 신고전파의 시장만이 아니라 제도와 권력이라고 파악하면서 관습, 규범, 가치, 전통으로 형성된 한 사회의 문화적인 환경을 주시한다. 또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전체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한다. 여성 문제의 원인도 남성우위의 문화적․제도적 여건의 결과로 본다. 그러나 대안은 여전히 신고전파의 방법을 의존한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를 Homo Reciprocan(상호적 인간, 주변 눈치를 보는 인간)으로 바꾸었지만, 제도의 성립배경으로 거래비용의 절약을 내세운다. 그러나 거래비용의 절약이 어떻게 생기고, 누구에게 귀착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제도의 변화를 위한 대안도 없다.

 

이러한 한계는 맑스 경제학에서도 확인된다. 근대의 경제적 배경인 자본주의는 효율을 가져왔지만, 형평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맑스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불평등으로 인한 경제적 갈등을 해명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맑스 경제학은 시장 노동에 참가한 근대인(남성)이 어떻게 착취되는가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라서 성별 간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일단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맑스 경제학은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과학임을 ‘입증’하려는 욕심에 잘 계산되지 않는 재생산 영역은 분석에서 잘라내어 버렸다. 이런 연유로 맑스 경제학도 ‘성 몰 인지적’인 분야로 치부된다. 물론 여성 문제에 대한 해명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여서 맑스 경제학은 담기에는 너무 작은 그릇이다.

 

이 와중에 1차와 2차의 여성해방운동을 거치며 양성평등은 점차 시대의 당위가 되었다. 경제학도 이를 계속 백안시할 수 없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맨 밑바닥에 여성들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기존의 경제학을 보완하며 여성 문제를 해명하려고 했다. 신고전파 경제학 내에서도 여성 노동 시장에 대한 분석이 활발해지고, 신 가계 경제학으로 가계에 대한 분석이 시도했다. 제도학파의 전통을 가지고도 경제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구조주의적인 접근이 시도되었다. 국가나 국제기구와 여성문제에 대한 접근이 제3 세계 여성 관련해서 있었다. 또한, 신제도학파 경제학의 입장에서 제도주의적 게임이론으로 가계 내 자원배분에 대한 분석이 시도되었다. 아울러 맑스 경제학과 페미니즘을 연결한 맑스주의 페미니즘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등장하여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아래서 이중 착취당하는 여성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경제학의 문은 충분히 열리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양성평등에 대한 시대의 요구는 더 거세졌고, 한편에서는 여성학이 분과과학으로 터를 잡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성 개념 젠더가 개발되어 시몬 보부아르의 제2의 성 개념 너머로 지평을 넓혔다. 또한, 모든 사회조직과 사회관계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성별의 서열적 관계인 성별관계를 분석의 기본 틀로 하는 시도들이 나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군의 경제학자들을 이 분야를 아예 경제학의 한 분야로 발전시킬 시도를 했고, 1992년 국제여성주의 경제학회의 탄생과 더불어 결실을 본다. 여성주의 경제학은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양성 사이의 경제적 긴장을 담론화시키는 경제학 분야이다. 따라서 운명적으로 주어진 성(sex)과 성(sex)의 사회적 역할인 젠더(gender)와 젠더 사이의 관계인 ‘성별관계(gender-relations)’가 경제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며, 기존의 경제학의 분석대상, 분석모형, 연구방법, 연구결과, 연구주체 등을 검토한다. 아울러 연구영역을 생산영역뿐 아니라 재생산영역 그리고 재생산 영역과 생산영역의 관계에까지 확장한다. 이를 통해 학문적으로는 경제학의 성 편향을 바로 잡고, 현실적으로는 경제 현상 속의 성차별을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연구자에 따라 여성주의 경제학, 여성 경제학, 성별 경제학, 젠더 경제학, 젠더와 경제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혹자는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불리기를 꺼리지만, 여성의 경제 문제에 관심을 둔 경제학 연구는 포괄적으로 여성주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온전한 경제학을 위한 노력

여성주의 경제학이 분과분야로 자리를 잡은 후 이 분야의 발전은 눈부셨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남성 경제학자 일색이던 경제학계에 여성학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2014년 현재에는 미국의 경우 전체 경제학자의 34%가 여성이다. 경제학과에 여학생이 낯설지 않게 되었으며, 연구의 질도 향상되었고, 단지 여성차별뿐 아니라 여성성과 남성성에 담긴 편견을 해체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나라마다 여성의 경제 관련 교과목이 생겼으며 현실 속에서 성공적으로 시장 노동에 안착하는 여성들도 늘었다. 또한, 나라마다 여성차별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었고 성인지적인 통계도 개발되었다. 2009년에는 여성 경제학자 오스트롬(E. Ostrom)이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2014년 현재 앨런(J. Yellen)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여성학자들은 자신들의 선배들을 가로막던 유리 천장과 유리벽을 깨고 약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경제학계에서만이 아니다. 전사회적인 영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여성권이 가시적인 영역에서 어느 정도 확보되자 여성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여성을 제2의 성이 아니라 인류 보편으로 만들자는 주장과 여성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여성주의가 이미 필요 없는 시대라는 여성주의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찬찬히 보자면 여성은 여전히 소득과 부의 불평등 속에 있고, 차별적인 상황 속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여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2014년 현재 세상에는 여전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급적 고리는 물론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적 고리도 존재한다. 흑인 청소년이라서 백인 경찰의 총 맞을 가능성이 21배 높다는 어떤 나라처럼 여성이라서 남성 임금의 70%밖에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의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유례없는 재생산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2014년 세계포럼 성별격차 지수 146개국 중에 117위, 출산율 꼴찌에서 세 번째, 높은 자살률과 이혼율. 등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아기 키우고 돈 벌면서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여성이 살기 어려운데 남성만 잘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이 대로 가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재생산이 불가능하다. 선배들이 물려준 잣대가 맞지 않아 문제를 풀지 못하면 새로운 잣대를 만들면 된다. 왜 경제학에 젠더가 중요한가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젠더의 균형을 잡아 세상의 균형을 잡고 이를 통해 모두 잘 살기 위해서다. 따라서 경제학과 젠더가 만나는 일은 ‘반쪽짜리 경제학’을 ‘온전한 지식체계’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이며, 야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근대로 가는 길이고, 결국 휴머니즘을 완성하기 위한 길이다.

 

 

참고문헌

퍼버, 마리안 (Marianne A. Ferber) ․ 줄리 넬슨(Julie Nelson) (편), 『남성들의 경제학을 넘어서-페미니스트이론과 경제학-』, 김애실 외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7.

홍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