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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2호] 대학원생이여, 기꺼이 비동일자가 되어라!


대학원생이여, 기꺼이 비동일자가 되어라!




김기성_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이 글은 한국 대학원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대학원생들을 향해 있다.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종의 연대감으로부터 비롯된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그 마음을 애써 누르며 나의 생각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원생은 1949년 “국립서울대”(그 당시 정식명칭)에서 배출된 석사 90명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과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을 목표로 내세웠던 “두뇌한국21(BrainKorea21)” 프로젝트가 1999년 출범했다. 같은 해 “사이버 코리아21(CyberKorea21)” 정보화정책 또한 추진됐다. 

     이때부터 한국 사회는,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 1919-2011)이 1970년대에 서양 산업사회의 ‘탈산업사회’로의 진입을 선언했던 것처럼, BK21과 CK21이라는 쌍두마차가 이끄는 ‘지식정보사회’로의 이행을 본격화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삶의 모든 영역들의 구조변동을 야기했던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두 해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일상의 이데올로기로 대체되었던 것도 이 즈음일 것이다.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지나, “창조경제를 주도할 석박사급 최고급 창의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는 3단계 BK21플러스 사업이 2013년에 시작됐다. 노골적으로 ‘경제’라는 플래카드가 전면에 배치된 것이 눈에 띌 뿐, 전반적으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이 사업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두 해가 지났다. 1단계 BK21 사업이 출범한 지 올해로 16년차이고, 최초의 석사가 배출된 지 66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번쯤 돌아볼 때가 된 것도 같다. 반성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 그러니까 1단계 BK21이 시작된 지 고작 두 해가 지난 2001년에 살아있는 세포를 지닌 대학원생들이 바로 그 목소리의 진원지였다. 

     IMF의 모든 차관을 조기상환했던 이듬해, 대학원 사회가 처한 위기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찾고자 모 대학 대학원생들이 <모색>이라는 무크지를 창간했다. 그들로부터 “대학원생들에게 미래는 있는가?”라는 자조 섞인 물음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별일 없이 여러 해가 지나 “경쟁적 인력 양성 체제 구축”과 “경쟁적 연구 분위기 조성”을 중점 추진목표로 삼았던 2단계 BK21 사업(2006-2012)도 종료되었다. 하지만 사정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멀티태스킹이 낳은 인재(人災)

     1883년 유길준(1856-1914)의 책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번역어 “경쟁(競爭, competition)”이라는 발동기가 최첨단 진화된 메커니즘 속에서 기력이 소진된 대학원생들에게 “노예담론”이나 “한국 대학원은 썩었다”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피곤하다는 눈치다. 그것은 그저 어두운 현실만 반복할 뿐, 그로부터 벗어날 어떠한 출구도 알려주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병철이 진단했던 현대인의 신경증적 질환들, 즉 탈진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스마트한 현대인의 삶이 그렇겠지만, 누구 못지않게 스마트한 대학원생으로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그러는 사이 성과사회의 긍정성 과잉 하에서 ‘좀비’제도가 되어버린 대학원이 “도찐개찐” 취급되면서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점차 사라져갔다. 대학원생의 현실은 사적인 문제로 취급되었고, 모든 일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석박사급 최고급 창의인재”의 정체는 “멀티태스킹”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인재(人災)로 현상한다. 한병철에 따르면,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 멀티태스킹인 것이다. 먹이를 먹는 동물은 이와 동시에 다른 과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먹는 중에 도리어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새끼들도 감시하고, 또 짝짓기 상대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수렵자유구역에 사는 동물은 주의를 다양한 활동에 분배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까닭에 깊은 사색에 잠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먹이를 먹을 때도, 짝짓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한병철, <피로사회>, 30-31쪽)


배제된 지식의 소비자 ‘대학원생’, 정녕 그들은 누구인가?  

     전체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BK21 사업이 양적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대학원 사회의 비합리적 관행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대학원생의 현실은 오히려 질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는 사실 또한 직시해야한다. 

1965년 이래 대학원과 대학원생의 숫자는 10년 단위로 두 배 이상 꾸준히 증가했고, BK21 사업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사업의 양적 성과로 활성화된 대학원 버블효과는 다수의 대학원생을 지식의 생산자이기보다는 지식의 소비자로 전락시켰고, 그로 인해 그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배제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화려한 대학원 버블효과는 대학원생에게 연구의 출발부터 창조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지식, 오로지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지식을 기획하고 생산하면서 또한 판매하는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판매성의 아프리오리 하에서, 혹은 성과의 강요 하에서 대학원생이 연구자로서의 자기유지에 몰입하면 할수록 의도하지 않게 고삐 풀린 재벌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자기유지에 더욱더 완벽하게 봉사할 뿐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원생 스스로가 진리 탐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배제한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배제의 메커니즘은 매끄럽게 완성될 것이다. 이미 이 메커니즘이 도래하기라도 한 듯 그로부터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목소리도 들린다.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최악의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현명하다.

     대학원생에게 최악의 사태가 뭘까? 목표했던 학위를 받지 못하는 상황일까, 아니면 교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일까? 아니, 그보다 더 최악의 사태는 부득불 대학원생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 마디로 말해서 대학원생 파산 상황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대학원생 파산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 파산, 결국엔 대한민국 교육 파산으로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학원생 파산을 머릿속에 그려 볼라치면, 파산된 기업 이미지만 떠오르면서 ‘대학원생’은 빈칸으로 남던가, 그러다가 도대체 ‘대학원생’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대학원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어쩌면 우리에겐 애초부터 ‘대학원생’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s, ca. 569-510 B.C.)가 “필로포스(φιλόσοφος, 철학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 레온이 그 기이한 이름에 놀란 나머지, 필로포스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물었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한국 대학원은 썩었다”고 말한다면, “대학원생들에게 미래는 있는가?”를 묻는다면, ‘대학원생’ 개념 또한 묻고 따지면서 정교하게 손질해야 한다. 어떤 것에 관한 개념이 없다는 것은 그에 관한 공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무기 없이 싸움터에 나서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학문(學問)하는 사람의 무기는 경험적 사태의 질을 놓치지 않는 개념이고, 이처럼 살아 있는 개념들이 서로 정합적인 연관관계를 이루면서 현재의 삶을 재현하고 더 나은 삶을 지시하는 이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개념화 작업에 비해, 우리는 실천적 차원에서 ‘대학원생’이 아닌 것, ‘대학원생’답지 못한 것에 대해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다. 즉 ‘대학원생’은 누군가의 노예도 아니고, 지적 사기꾼도 아니며, 파렴치한 장사꾼도 아니다. 하지만 앎이 곧바로 삶일 수 없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부정하는 경험을 통해서 앎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확인한다. 마찬가지로 개념 또한 실천을 통해 경험적 사태에 적합하게 수정되고 보완됨으로써 현실성을 획득한다. 

     부정의 실천은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의 가장 우선시되는 ‘탁월함’(arete)이다. 그것은 또한 대학원생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무기를 예리하게 갈고 닦는 정비(整備) 활동이다. 거꾸로 개념과 실천, 양자 사이의 일치와 불일치의 변증법적 운동을 거치면서 대학원생이 처한 형세가 독해해 낼 수 있는 텍스트로 선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재구성하는 작업이 구체화된다면, 우리의 실천은 더욱더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정의 실천은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테오도르 W. 아도르노(Th. W. Adorno, 1903-1969)가 주장했던 것처럼, “작은 것 속에 뚫고 들어가는 것, 작은 것 속에 한낱 존재하는 것의 척도를 폭파시키는” 비판, 즉 지배적 현실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바로 그 안에서 소외된 현실을 재구성하는 해석이기도 하다. 

     여기서 ‘작은 것’은 작은 것 그 자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의 부분, 즉 전체의 본질법칙이 그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한 부분을 가리킨다. 대학원 사회가 전체라면, 그 사회의 본질법칙이 그 가장 내적인 것 속에서 이식되어 있는 개인으로서의 대학원생이 바로 그 한 부분이다. 따라서 전체의 변화는 부분의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비동일자로서의 ‘나’를 찾아서

     우리는 대학원 사회의 부정적인 것을 끊임없이 부정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그 부정적인 것이 요구하는 것에 자동인형처럼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자기를 멈추어야 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긴 여정 끝에 귀향한 후 지난 날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자기희생을 통한 자기유지의 폭력성을 체념하듯,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감염된 자기 속에 한낱 존재하는 것의 맹목적 척도를 단념해야 한다. 그것이 배제의 메커니즘을 폭파시키는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총체적으로 잘못된 것 속에서 올바른 것을 간절히 원한다면, 썩은 대학원의 본질법칙이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만일 그것이 발견된다면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최소한 썩은 대학원의 부정성을 상징적으로 넘어서면서 공론화하고, 함께 힘을 합쳐 그것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자기혐오적인, 자기증오적인, 자기파괴적인 싸움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내 안의 타자의 목소리, 합리화된 대학원의 비합리성과 동일하지 않은 ‘자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 목소리에 응답하면서 함께 사는 삶의 본질법칙을 발견하고, 동시에 새롭게 창안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대학원생이야말로 사람을 닮은 “창조경제를 주도할 석박사급 최고급 창의인재(創意人才)”일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전체 밖에서가 아닌, 바로 그 안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비동일자로서의 ‘나’를 만나야 한다. 이러한 만남의 능력이 회복될 때, 대학원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침묵하고 있는 또 다른 비동일자와의 친화성 또한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동일성 없는 비동일자는 가짜다. 비동일자로서의 동일성, 즉 잘못된 사회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실천을 통해, 고통의 경험을 통해 단련되는 동일성을 소유한 비동일자가 진짜다. 대학원생이 진짜 비동일자가 되는 순간, ‘대학원생’은 육화(肉化)할 것이다. 

     ‘대학원생’이 육화할 때, 그로 인해 그/그녀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깨어날 때 대학원은 부활할 것이다. 작금의 현실에 근거해서 부활한 대학원을 앞서 그려본다면, 일단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불변적 구조와 지식산업의 맹목적 메커니즘이 ‘지양’된 세계일 것이다. 결국 대학원이 부활한다면, 한국 사회가 거듭나는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대학원생이여, 기꺼이 비동일자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