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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3호] 함께 만드는 도시


함께 만드는 도시


인터뷰 및 편집_채다희, 황민아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건축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비전문가로서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하면 미술이나 영상 등은 떠오르지만 건축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건축가이며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두 분야를 어떻게 아우르며 활동하고 있는지 소개해달라. 


하태석(이하 하)> 아시는 대로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다. 하지만 건축은 도시 안에서 건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그림, 드로잉, 모형 등으로만 남기도 하고 전시를 통해 공개되기도 한다.   

201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를 할 때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누군가에 의해 탑-다운 방식으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건축물로 구현하면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것이 우리가 도시를 점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좋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대로 바텀-업 방식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며 도시를 만든다면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다이어그램으로 그리거나 모형으로 만드는 대신 실제로 스마트폰 어플에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입력하면 집이 나오고, 그것이 화면 안의 도시에 바로 반영되어 업데이트되도록 만들었다. 즉, 도면이나 그림이 아니라 관객이 참여하면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시스템이다. 어플과 디지털 프로젝션 미디어 룸, 변화하는 영상과 음악을 이용해 전시를 했는데, 이것을 예술계에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라고 칭했다. 그 이후로 미디어 아트 전시회에 초대를 받으면서 미디어 아티스트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서강> 작품을 하면서 도시 계획이나 건축뿐만 아니라 음악을 활용한 점이 재미있다. 말씀하신 것처럼 관객이 입력한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도시가 구현되고 영상과 음악도 변한다면 고정된 전시가 아니라 관객에 따라 변화하는 전시가 될 것 같다.


> 그렇다. 참여를 기반으로 해서 형식적으로 인터렉티브한 미디어 영상을 만든 것이다.  그 이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의뢰를 받아서 미디어 작업을 하기도 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의뢰를 받은 케이스인데, 그때 했던 작업도 예술적 형식으로 표현했지만 내용은 건축이다. 

 


 <떠도는 기하: 콜렉티브뮤지움> 

2013년 11월 12일부터 2014년 3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프로덕션 SCALe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작품. 완성된 건축은 형태를 위한 결정들이 축적되면서 드러나는데 <떠도는 기하: 콜렉티브 뮤지움>은 이 결정들에 사용자를 참여시켜 건축적 결과물들을 공유한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보통 건축이나 도시를 생각하면 누군가 설계를 하고, 여러 사람이 지은 후 그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터렉티브한 작업이 실제 생활에 적용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 인터렉티브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지어진 대상과 대상을 사용하는 사용자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중간단계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건물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 사무실도 가운데가 육각형인데, 벽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이것을 어플로 조정하는데 여섯 면이 다 올라가면 큰 회의실이 되고, 다시 벽을 내리면 집중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사무실> 

건축사무소 SCALe의 내부 모습. 어플을 통해 제어되는 사무실 벽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사무실 내부 벽이 모두 제거되면 육각형 모양의 회의실 공간이 만들어진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젊은 건축가 포럼 코리아’의 위원장을 맡고 계시는데, ‘젊은 건축가’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혹은 젋은 건축가로서 ‘기성 건축가’와 달리 추구하는 점은 무엇인가? 


> 보통 ‘젊은 건축가’는 주로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건축가를 말한다. ‘젊다’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으로는 20대 혹은 30대 초반까지이지만, 건축가로서 건물 하나를 지으려고 하면 마흔 전후가 되어야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50-60년대생 선배들은 우리나라 개발 붐 등을 겪은 세대이기에 혜택과 기회가 많았다. 젊었을 때 사무실을 차려서 30대 초반에 설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건축가들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미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살고, 작은 집을 짓지도 않아서 큰 설계 사무소만 살아남는 시대에 건축계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최근 조그만 집들을 짓기도 하면서 젊은 건축가들이 많아졌다. 

또한 기성 건축가들이 논했던 건축 담론들은 거시적이고 크다. 그들이 모더니즘, 한국 사회, 건축의 본질처럼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것을 강조했다면 최근 젊은 건축가들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 스펙타클하고 철학적 깊이가 있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면 동네 커뮤니티가 활성화 될지,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 등과 관련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실제로 그런 의뢰가 제법 들어오기도 하고 본인들도 그런 일을 즐겨 한다.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에 접근하는 방식도 기성 건축가와 다르고, 개개인의 스타일이나 관심사가 다양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서강> 기성 건축가들은 국가가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큰 범위의 도시를 지어야만 했다면, 최근 젊은 건축가들은 이미 세워진 도시 안에서 어떻게 다양한 건물을 구현하느냐 이렇게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 그렇다. 얼마 전에 <어반 메니페스토>라는 전시를 하면서 젊은 건축가들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일상성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 외적인 일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건축은 ‘건물을 짓는 거야’라고 했다면 요즘에는 건물 안에 둘 가구도 디자인하기도 하고 제품이나 미디어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사실 디자인의 프로페션의 원조가 건축가이다. 공간, 건물이 큰 디자인이고 그것이 모인 도시가 가장 큰 디자인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처럼 보여도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강> 아카이브와 포럼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 전시나 역사를 구현하는 형식의 전시 등 건축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건축가라고 하면 설계 현장에 있거나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건축가님께서 전시회 현장 등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이유나 그 활동을 어떻게 전개하고 있는지 소개해달라. 


> 그동안 건축가들이 자기 영역 안에서만 갇혀 다른 크리에이터들, 예술가, 디자이너들과의 소통이 없었다. 이것은 건축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을 넘어서서 다른 분야와 연결하는 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2007년부터인가 이러한 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런 기획자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훌륭한 기획자들이 많이 생겼다. 여러 분야가 함께 소통하며 자극을 주고받고, 콜라보레이션도 해서 더 좋은 작업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그런 기획들을 주로 했다. ‘젊은 건축가 포럼 코리아’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3년 전에 ‘젊은 건축가 포럼 코리아’을 결성할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젊은 건축가들의 역할이 미미했지만 우리 사회에 훌륭하고 젊은 건축가들이 많고, 그들의 작업을 같이 공유하고 알리자하는 취지로 컨퍼런스 파티 등을 시작했다. 형식에 구애받기보다는 기획의도가 여러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전시뿐만 아니라 컨퍼런스, 토크나 파티 등 여러 방식으로 표출되도록 진행하고 있다.


서강> 미디어 아트 <시간여행: 정동 1900(이하 ‘시간여행’)>의 경우 외국인 선교사의 구한말 생활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미디어 아트 작업은 매우 생소한 작업일 것 같다. 시간적인 것을 공간에 푸는 작업, 역사적인 내용을 공간에 옮기는 작업이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이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 건축가나 작가로서 제 작품을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시 디자인을 의뢰 받아서 한 것은 ‘시간여행’이 처음이었다. 건축가는 공간을 다루는 사람인데, 뉴미디어에는 시간적 개념이 들어있다. 그래서 공간을 어떻게 시간적으로 풀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공간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시간여행’을 작업했다. 백 년 전의 공간을 컨셉슈얼하게 구현하여 사람들이 도시를 거닐면 그에 따라 공간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바닥에 지도가 있는데 지도 위에서 다른 위치에 갈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화면을 보여준다. 내가 서 있는 위치의 100년 전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여행: 정동 1900>

<시간여행: 정동1900>은 1890년~1910년 당시 정동의 모습을 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의 시각으로 재현한다. 전시장내의 축소된 정동을 거닐면 당시의 거리 모습이 전면에 펼쳐진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위 전시가 일반적인 건축물 전시하고 어떻게 다른 것인가? 


> 보통 건축 전시는 도면, 렌더링, CG, 컨셉을 설명한 다이어그램, 모형 등을 전시한다. 건축은 삼차원이고 크기 때문에 복잡하다.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텐데, 가뜩이나 복잡한 것을 도면 등으로 전시하니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도면을 읽을 수 있으니까 도면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전문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형을 만드는 데, 아시다시피 모형은 작다. 300분의 1, 500분의 1, 1000분의 1로 축소하고 위에서 모형을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건축은 공간감이 중요하다. 공간 안에 있어야 건축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지 위에서 본다고 해서 그 건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상상을 돕기 위해 그 공간에 들어 있는 것처럼 CG로 투시도를 그린다. 하지만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데, 분절되어있고 투시도간의 관계가 설정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그것이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악보만 전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들은 평면을 보면 공간을 이해하지만, 건축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관객이 컨셉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전달하기 위해서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는 것이다.   


서강> 그렇다면 건축물 전시는 비전문가에게 공개가 안 되는가? 


> 공개는 되는데 이해와 소통이 잘 안되니까 비전문가들의 호응이 별로 없다. 건축가들만 모여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서강>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전시가 대표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와 협업을 하신 작업인 것 같다. ‘사랑당: 푸른 빛의 전설’ 작업을 통해 이 전시에 참여한 것인가? 


> 그렇다. 제가 총 감독을 맡았고, 전시 중에 ‘사랑당: 푸른 빛의 전설’에 작가로도 참여했다. 이 전시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끼리 협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래서 각각의 팀에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가 한 명씩 포함되어 팀을 이루었다. 재미있었다. 저희 팀에는 해양 바이오 과학자가 계셨는데, 그 분이 연구하시는 발광성질을 가진 미세조류를 건축 작업에 도입을 했다. 밤에 흔들면 빛을 발하는 생물 발광 미세조류를 이용하여 지역의 풍습을 담은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서강> 마을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실 이 전설은 제가 쓴 것이다. (웃음) 이 작업이 재미있었던 것이 팀원들과 ‘전설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전설을 만들고 그것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아마 마을 사람들이 ‘어? 우리 마을에 이런 전설이 있어?’ 라고 했을 것이다. 당이라는 것은 제주도 민속 신앙인데, 작은 돌담을 쌓고 바다 앞에서 구복을 한다. 하나의 당에는 하나의 구복을 한다고 하더라. 이 당에서는 아이를 낳게 해주는 구복만 할 수 있고 저 당에서는 피부병을 고쳐주는 당이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당을 만들자‘고 해서 ’사랑당‘을 만들게 되었다. 




 <사랑당: 푸른빛의 전설>

2013년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가 팀을 이루고 협업을 통해 자연과 미디어를 주제로 하는 공공예술 작품을 제주도 마을에 설치하고 공유하는 융복합 공공예술 프로젝트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에서 하태석, 권병준, 김대희가 제작한 지속가능한 조명장치. 바람이 불면 사랑당 건축물에 달린 캡슐을 흔들리고, 그 안의 미세조류들이 빛을 발한다. (편집자주) 사진 제공_ SCALe


서강> 건축 작업은 협동 작업이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과들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데  진정한 의미의 협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건축은 전통적으로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예술가는 생각하는 사람, 그리는 사람, 물감 사는 사람이 다 같은데 건축 분야에서는 생각하는 사람(건축가), 벽돌 사는 사람(건축주), 짓는 사람(시공자)이 다 다르다. 건축가가 전체적으로 컨셉이나 공간을 생각을 하면 구조는 구조 기술사가, 전기 설비는 전기 설비 회사가 하고 기계 설비는 기계 설계회사가 하고 조경 디자인은 조경 설계사가 하고 심지어 인테리어를 별도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협업하는 구도이다. 건축은 다른 분야보다 더 협업을 하기 때문에 협업을 잘하는 직종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업은 단순히 같이 일을 한다고 해서 협업의 질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협업을 하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영역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공간 안에 있더라도 하나의 공간으로 융합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협업이 아니다. 따라서 초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협업을 할 때 시너지 효과도 발생하고 더 좋은 결과가 난다고 생각한다. 


서강> 협동 작업을 할 때 의견 충돌이나 윤리적인 문제 등을 마주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어떤 분야에서건 협업을 할 때 가져야 할 소양과 자세를 조언해 달라. 


> 협동 작업을 할 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상대방과 상대방의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축가가 말하는 ‘커뮤니티’와 사회학자가 말하는 그 뜻은 다르다. 같은 단어라도 분야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분야간에 협동,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제가 음악가와 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음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분들의 깊이만큼은 모르지만, 기본적인 것은 알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다른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 협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 가장 좋고, 한 사람이라도 이해해서 함께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말만 하다가 부딪히게 될 것이다. 또한 협업을 할 때에는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 역할이 중복되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역할, 규칙 등에 대해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를 해야 한다.


서강> 건축가로서 도시의 미래에 관심이 많으실 것 같다. 개인적으로 꿈꾸는 미래의 도시나 건축은 어떠한 것인가? 


> 저는 사람, 사용자, 거주자가 주체가 되는 건축 혹은 도시를 꿈꾼다. 건축이나 도시가 먼저가 되서 사람이 들어가서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려면 건축이 적응 가능성, 유연성, 상호작용 등을 갖추어야 한다. 나만의 자동차를 갖는 것이 상류층의 전유물인 것처럼 건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본인에게 맞춤화된 집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건축이면 좋겠다. 사람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고 거주자가 중심이 되는 건축,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가 제가 꿈꾸는 건축과 도시이다. 


서강> 마지막으로 더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 건축은 우리한테 사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하루의 90% 정도를 건축 안에서 살고 있고 알게 모르게 건축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본인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건축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처칠은 “사람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다시 건축에 의해서 형성된다. 학교 건물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짓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성적이 더 올라갈 수도 있고, 수업시간에 덜 졸수도 있다. 업무시설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주거와 건축을 디자인해야 한다. 저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데에는 주거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마저 답답함과 소외감을 느끼고, 사회와의 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양재동에서 7년 정도 일하다가 이태원으로 사무실로 옮겼다. 양재동에서 일할 때는 외부에 비가 오는지 해가 떴는지 몰랐다. 그런데 사무실을 옮긴 이후 해가 지는 것도 보고 석양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해가 좋을 때는 옥상에 올라와서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그것이 굉장히 즐겁다. 그게 건축의 힘이다. 누구나 건축물 안에 사는 만큼 거주자가 스스로 “우리 집은 왜 더 좋을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건축가와 공유하면 더 좋고 행복한 공간에서 살 수 있다. 사람들은 건축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금 사는 바로 여기가 건축이다. 계속해서 보다 나은 공간을 꿈꾸면 언젠가는 자신이 그 공간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