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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4호] 화폐에 대한 철학적 성찰 - 맑스(K. Marx)의 화폐론을 중심으로 -

화폐에 대한 철학적 성찰

- 맑스(K. Marx)의 화폐론을 중심으로 -


김 현 _ 전남대학교 철학과 강사


화폐에 대한 고전적 통념으로부터 맑스의 화폐론으로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화폐의 기원 및 목적에 관한 가장 친숙한 설명은 교환의 당사자들이 물물교환경제(자연 경제)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화폐를 도입하기로 합의 혹은 계약을 맺었다는 이론이다. 화폐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의 산물이자,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으로만 이해하는 사고방식 속에서 화폐는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상징이거나 기호에 불과하다. ‘계약론적 화폐이론’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로크(J. Locke)와 같은 사회철학자 뿐만 아니라 스미스(A. Smith)나 밀(J. S. Mill)과 같은 고전경제학자들에 의해서도 광범위한 지지와 동의를 얻고 있다. 화폐의 발생과 기원을 해명하려는 다양한 성찰들은 각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화폐를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 간주하고, 화폐의 발생과 기원을 사람들의 합의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화폐에 대한 고전적 담론들이 주장하듯이 화폐가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고,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에 입각한 합의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합의의 산물로서의 화폐를 합의를 통해 폐지하거나 대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화폐에 대한 무한한 축적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맑스(K.Marx)의『자본』제1편 제2장“교환과정”은 화폐의 도입과 기원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교환과정’에 등장하는‘상품소유자’및 이들의‘숙고에 앞선 행위’개념은 계약론적 화폐이론의 맹점을 파악하기 위한 준거점일 뿐만 아니라, 화폐를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만 이해하는 이론적 입장이 오히려‘화폐물신’(Warenfetischismus)의 전형임을 폭로한다.


경제적 관계의 인격화로서 상품소유자

서로 다른 두 개의 상품이 교환되려면 상품소유자들의 교환 의지와 교환 행위가 개입되어야 한다. 상품의 교환은 상품소유자들의 자유로운 의지와 행위가 전제될 때에만 현실화 될 수 있다. 통념상 상품소유자들은 상품의 교환을 수행하는 자발적 행위주체로서 간주된다. 그런데 교환과정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상품소유자 개념은 우리의 일반적 통념을 비켜나간다. 맑스에 의하면 자발적인 행위주체로서 상품소유자란‘경제적 관계들의 인격화’혹은 경제적 관계의 담지자에 불과하다.

상품소유자들이 그들의 물건을 교환하려면‘양쪽 모두가 교환을 원한다는 하나의 의지행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서로를 물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소유한 상품의 소유자들로서, 즉 사적 소유자로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은 상품소유자들의 자유로운 교환의지가 관철된 물적 존재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맑스는 상품 소유자들이 자유로운 교환의지를 상품에 각인시키고 서로를 사적 소유자로 인정하는 의지관계란‘경제적 관계의 반영일 뿐이며, 이 의지관계의 내용도 경제적 관계 자체에 따라 주어진다’고 한다. 상품소유자들 상호간의사적소유자로서의 인정과 정립, 이에 따른 자발적인 교환의지는 상품소유자들을 자유로운 주체들로 현상하게 하지만 그들의 자발적인 의지 행위란 이미 전제되어 있는 특정한 경제적 관계의 관철이자 반영일 뿐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는 경제적 무대에서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등장인물일 뿐이다.

맑스에 의하면 우리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품소유자 뿐만 아니라, 모든 제반 경제적 범주들 및 이 범주들을 통해 고찰되는 경제적 관계들은 결코 ‘자연사적인것도 아니고, 또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에 공통되는 사회적 관계도 아니다. 이들은 선행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며, 많은 경제적 변혁의 산물이자, 일련의 낡은 사회구성체들이 몰락하면서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상품의 소유자로서 교환을 위해 마주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상품에 대한 사적 소유자로 규정하는 물적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각 개인들을 배타적인 사적 소유자로 인도하는 물적 조건이란, “생산의 모든 고정된 인격적(역사적) 예속의 해체와 아울러 생산자들의 전면적인 상호의존”이라는 선행적 조건을 통해서 마련된다. 이런 관점에서 맑스는 고전경제학자들이‘역사 이전에 위치지운 것, 역사에 선행하도록 한 것은 오히려 역사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규정한다. 물질적인 생산이 특정한 경제적 관계 속에서의 생산이듯이, 교환 역시 특정한 사회적 관계 아래에서의 교환이다. 교환을 주도하는 내재적인 법칙이 상품소유자들에게 의식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법칙을 통해 주어진 내용을 그들의 의지와 행위의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맑스는 상품소유자들의 서로를 위한 현존은 상품교환을 강제하는 물적 토대들의 반영이자 상품들 상호간의 관계에 불과할 뿐이라고 본다. 이 물적 토대가 교환의 일반화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상품소유자들이란 곧 교환과정의 법칙을 수행하고 관철시키는 의식적 담지자일 뿐이다. 상품소유자들이 교환과정의 법칙을 관철시키는 의식적 담지자일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으로서의 화폐의 도입이 교환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근거할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

모든 상품은 그 구체적인 물적 형태 그대로 사용가치의 담지자이지만,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평균적으로 지출된 인간 노동량의 체화된 형태라는 점에서 가치의 담지자다. 상품은 곧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체다. 그런데 어떤 상품도 그 자신의 물적 형태 그대로 사용가치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가치를 표현할 수는 없다. 어떤 하나의 상품에 얼마만큼의 노동량이 지출되었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른 상품과 관계를 통해 가치량이 비교되어야만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상품의 가치는 오직 다른 상품의 몸체를 통해, 즉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를 통해서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상품은 상품소유자 자신에게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갖지 않는다. 상품소유자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물건은 단지 유용성을 지닌 물적 존재일 뿐 상품일 수 없다. 어떤 물적 존재가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상품 생산자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용성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상품은 애초부터 교환과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갖는다. 모든 상품은 오직 교환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교환과 무관한 어떤 물적 존재가 사용가치를 가질 수는 있지만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상품이 상품소유자들에게 갖는 이 독특한 특성 때문에 상품들은 “그것들의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상품들이 서로 교환된다는 것을 말하며, 그 교환은 이들 상품간의 관계를 가치로 맺어주고 가치로 실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들은 서로 교환됨으로써 타인에게 인도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사용가치를 현실화시킨다. 상품의 사용가치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상품들이 교환의 출발상황 속에서 서로 가치로서 관계해야만 한다. 맑스는 상품의 사용가치와 가치의 이 상호 제약적 관계를“상품은 사용가치로 실현되려면, 먼저 가치로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서술한다.

다른 한편 상품이 가치로서 실현되고, 다른 상품과의 가치관계 속에 정립되기 위해서 상품은 그것이 생산자 자신의 직접적인 필요를 떠나서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곧 상품 생산을 위해 수행된 개별적 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모든 상품은 개별 노동자의 일정한 노동력이 지출된 산물이고, 이 산물이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이 사회적인 노동으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품을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로서 정립하는 것, 그리고 이 정립을 통해 동시에 한 상품과 다른 상품간의 가치관계를 형성하는 것, 마지막으로 개별적으로 수행된 사적 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의 전환하는 이 과정은“상품들이 가치로서 실현되기 전에 사용가치로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한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상품이 사용가치로서 실현되려면 가치로서 실현되어야 하며, 가치로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로서 정립되어야 한다는 사용가치와 가치간의 상호제약적 관계는 상품교환을 위해 마주선 상품소유자들을 순환과 모순 속으로 던져 넣는다. 상품의 사용가치가 가치를 전제하면서 동시에 상품의 가치가 사용가치를 전제하는 상품의 독특한 특성이 상품소유자들로 하여금 교환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상품소유자 A의 상품은 다른 상품소유자 B의 상품을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등가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역으로 상품소유자 B에게 상품소유자 A의 상품 또한 자신의 상품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등가물로 간주된다. 따라서 각각의 상품소유자들은 자신의 상품에 대해 다른 상품을 특수한 등가물로 간주함과 동시에 곧바로 자신의 상품이 다른 상품에 대한 일반적 등가물로 전환되어 버리는 상황에 직면한다. 교환의 출발 상황에 선 각각의 상품소유자들 각각의 상품이 서로 서로에게 특수한 등가물이자 동시에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이 상황 속에서는 어떤 상품도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일반적 등가물의 지위를 점할 수가 없고 그 때문에 실제로는 어떤 상품도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교환을 위해 시장에 나온 상품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상품으로서 관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물적 현존의 형태 그대로 사용가치로서만 관계시킬 수 있을 뿐이다. 즉 교환은 불가능하다.

맑스는 교환이 불가능한 이 상황을 두고서“우리의 상품 소유자들은 파우스트처럼 낭패스러운 고민에 빠진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기에 앞서 벌써 행동을 해버렸다”고 적는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상호 순환적 상황, 모든 상품이 서로에게 일반적인 등가물로 간주됨으로써 그 어떤 상품도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순환적 상황은 교환의 출발선상에 있는 상품소유자들의 숙고에 앞선 행위를 통해서 단번에 해결되어 버린다. 그들은 상품의 가치와 사용가치가 상호 제약적으로 맞물려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떤 하나의 상품을 보편적 등가물로 정하자라는 ‘합의’나 ‘약속’을 하기 이전에, 교환 행위를 미리 수행해버림으로써 이 순환을 종결짓는다는 것이다. 또한 숙고를 동반한‘합

의’나‘약속’이전에, 숙고에 앞선 행위를 통해 특정한 하나의 상품이 상품들의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함과 동시에 교환을 현실화하는 일반적인 등가물이 등장한다. 이 배제된 상품에는 이제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 표식이 부여된다.

상품소유자들의 숙고에 앞선 행위는 모든 상품들이 일반적 등가물로서 다른 상품들과 관계함으로써 결국 그 어떤 상품도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없었던 순환적 구조를 해소하고 상품 교환을 현실화하는 화폐의 도입으로 마무리된다. 교환과정에 대한 맑스의 서술을 따르자면 화폐는 상품교환을 현실화하는 수단으로서, 그 태생적 뿌리를 숙고 없는 상품소유자들의 ‘무의식적 행위’에 두고 있는 셈이다. 교환을 강제하는 법칙이 미리 주어져 있지 않다면 상품소유자들은 교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행위하지 않을 것이다. 화폐란 맑스에 의하면 교환의 출발상황이라는 논리적 가정 아래 상품소유자들의 합의나 약속에 의한 의식적 산물인 것이 아니라, 교환경제의 내적 논리에 따른 필연적이고 자생적인 역사적 산물인 셈이다.


계약론적 화폐론: 화폐물신의 현상형태

계약론적 화폐론은 화폐의 본성을 상품생산사회의 내재적 논리를 통해 통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품생산 사회에 선행하는 자연경제에 근거하여 해명하고 있으며, 더욱이 자연경제의 불편함과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구성원들의 의지와 숙고에 의한 계약에서 찾는다. 계약론적 화폐론에서 계약이 화폐의 도입을 위한 수단이라면 화폐는 이 계약의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으로서의 화폐는 수단으로서의 계약에 선행해야만 한다. 화폐의 발생을 교환 당사자들의 합의에서 찾고 있는 계약론적 화폐이론은 맑스의 관점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계약론적 화폐이론은 화폐 없는 자연경제를 화폐경제 앞에 논리적으로 선행하게 한 후 자연경제 경제에 화폐경제의 장점을 투영하는 순환적 오류를 안고 있다. 자연경제가 갖는 불편함이 구성원들에게 의식될 수 있으려면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화폐를 매개로 하는 상품경제가 미리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발생에 대한 이런 식의 논리적 구조에서 자연경제는 화폐경제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화폐경제가 자연경제에 논리적으로 선행함으로써 화폐경제를 통해 화폐경제를 근거 짓는 논리적 순환에 빠지게 된다.

둘째, 계약론적 화폐론에서는 목적으로서의 화폐와 수단으로서의 계약을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라 규정하고 있지만, 맑스에 의하면 교환경제 내에서는 이 관계가 전도되어 나타난다. 교환의 출발상황에서 사적 소유자들이 숙고하기 이전에 먼저 행위를 해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주어져 있는 목적을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한 채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목적이 행위에 앞서고 행위를 통해 목적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행위가 목적에 앞서고 목적이 행위를 통해 사후적으로 정당화되는 논리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교환경제 내에서 교환의 수단이자 교환이라는 목적을 위한 매개로서 화폐란 처음부터 명료하게 교환행위의 모든 당사자들에게 의식된 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적 없는, 혹은 무의식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후적으로만 정당화된다. 상품소유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행하는 ‘사회적인 행위’를 통해 특정한 상품을 상품 세계로부터 배제하여 보편적인 등가물로 만들고, 이것을 통해 그들이 교환과정의 출발상황에서 직면한 순환상황을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고찰을 토대로 맑스는 상품소유자들의 사회적 행위가 생산물이 교환을 통해 상품으로 전환되어야하는 상품생산 사회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묻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상품의 성질에서 비롯되는 법칙이 상품소유자들의 타고난 본능”을 통해 관철된다는 맑스의 표현은, 왜 노동생산물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화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상품생산사회의 구성원들이 묻지 않은 채 자본주의적 교환법칙을 직접적으로 주어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이 법칙을 의식하지 못한 채 교환을 현실화하는 숙고에 앞선 행위는 물신적 행위이자 물신적 의식의 현실화다. 이 물신적 의식의 현실화에 입각한 실천적 운동의 전형이 19세기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대체화폐 운동이다. 노동화폐론 혹은 대체화폐론 비판 19세기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중 일부(대표적으로 로버트 오웬)는 자본주의 교환경제체제의 폐단이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통용되고 있는 화폐를 대신하여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한 시간전표를 대체화폐로 사용한다면, 누구나 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 받게 됨으로써 노동착취 또한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맑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노동화폐라는 것은 극장의 입장권이 화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화폐가 아니”라고 한다. ‘노동화폐라는 천박한 유토피아적 발상’은 화폐가 직접적으로 노동시간 그 자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에 불과하다.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기는 하지만, 오직 다른 상품들의 가치만을 표현할 뿐 그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는 없다. 화폐는 “다른 모든 상품의 관계가 반사되어 하나의 상품에 고정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화폐가 그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품을 가치표현의 등가물로 삼아야 한다. 이 때문에 맑스에 의하면 화폐는 다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할 뿐, 결코 그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지 못한다. 10시간의 노동시간을 기입하는 노동화폐가 그 자체로 10시간에 해당하는 가치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화폐로 기능하는 이 노동화폐 자체의 가치가 다른 상품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며, 좀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생산물에서 상품과 화폐로의 필연적 변화 원인에 대한 통찰을 결여한 소산이다. 마찬가지로 숙고 없는 행위자로서의 상품소유자들의 분석

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맑스는 노동생산물이 왜 상품이 되는지, 그리고 왜 상품이 상품과 화폐상품으로 이중화되는지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파악하지 못하면 화폐상품의 가치를 ‘가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에 빠지거나, 혹은 화폐를 단순한 표지(Zeichen)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화폐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 가상적인 것이거나 혹은 단순한 표지에 불과한 것이라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거나 폐지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화폐의 논리적 근원이 상품의 이중적 속성에, 화폐의 역사적 기원이 교환의 자연발생적인 확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이 교환경제에서 화폐의 도입이 상품소유자들의 숙고 없는 행위 개념을 통해 매개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화폐는 항상 단순히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에 불과한 기호로만 비칠 뿐이어서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 표지에 불과하다는 그릇된 결론으로 인도될 수 밖에 없다. 대체화폐로서의 노동화폐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의 화폐를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상적인 것 혹은 기호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관점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화폐의 도입을 통해 자본주의 교환경제의 폐단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유용하게 보이는 이유는 화폐형태가 완성된 후에 갖게 되는 필연적 가상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품세계 구성원들의 공동사업을 통해 ‘보편적 등가형태가 어떤 특수한 상품의 현물형태에 부여되거나 화폐 형태로 응결되고 나면, 다른 상품들이 모두 각자의 가치를어떤 한 상품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비로소 화폐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그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들이 그 상품으로 각자의 가치를 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교환경제에서 화폐상품에 들러붙게 되는 필연적 속성으로서,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상품이 상품과 화폐상품으로 이중화되는 과정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화폐상품 안에서 모두 소멸해버리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대체화폐라는 발상은 최종적 결과물 속에서 구체적 매개연관을 간파하지 못하는 물신적 의식의 표본인 셈이다.교환가치의 토대를 유지한 채 화폐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단히 혁명적인 시도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맑스의 관점에서 이는 상품생산사회의 결과물에 대한 공격에만 그칠 뿐 근본적인 원인의 척결에 이르지 못한다. 자본주의 교환경제의 폐단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로잡기 위해서는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상품을 상품과 화폐상품으로 이중화하는 교환경제의 법칙 자체를 근절해야만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체화폐의 도입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의 수정과 개혁이란,“ 당나귀를 때리고자 하면서 자루를 때리는 것”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어 있는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발본적 반대의 목소리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방망이질에 토해 낸 자루 속 먼지만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