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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6호] 성 노동자들이 처한, 여전한 곤경

성 노동자들이 처한, 여전한 곤경



김경미 _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8월 성 노동자의 인 권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성매매의 비범죄화를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3월 헌법재판소는 자발적으로 성을 판 자도 처벌하는 성매매특별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자발적으로 성을 파는 것, 즉 성적 서비스를 파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성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성적 서비스를 파는 한범죄자가된다.자발적으로성적서비스를파는것이 왜 문제가 될까? 성적 서비스를 파는 이 일, 매춘은 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매춘’이라는 단어 정의

매춘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일컫는다. 이 일은 몸을 통해 성적 서비스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서비스 노동이며, 신체화된 노동이고, 성 노동이다. 그러나 매춘은 성적 서비스와 화폐를 교환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하되고 경멸당해 왔을 뿐만 아니라 사회악으로 여겨진다. 한국어사전은 매춘을 매음(賣淫)과 같은 말이며,“돈을 받고 몸을 팖”(네이버 국어사전) 이라 고 정의하거나,“돈이나 기타 대가를 받고 성적 대상이 되어 줌”(다음 한국어사전)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사회악을 설명하는 자 리에서는“사회가 지닌 모순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해악”이라고 정의하고 그 예로 빈곤이나 범죄, 도박, 매춘을 들고있어 매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다. 성적 서비스를 통해 생계를 유 지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계속 존재해 왔으나, 이들을 명명한 것을 보면 언어폭력에 가까운 언어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언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일부러 예를 들지 않는다. 이러한 이름붙이기는 낙인을 통한 타자화, 억압의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매춘은 흔히 남자가 사고 여자가 파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은 가부장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라고 설명된다. 물론 여성이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의 담론은 매춘인들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별)전환인들을 비가시화한다.


타자로 재현되어 온 매춘

근대 이전에는 매춘 제도가 없었다. 유녀(遊女), 사당패 등의 매춘이 있었지만, 이는 제도화되지 않은 매춘이었다. 매춘이 제도화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들어오기 시작되면서부터였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은 부산, 원산, 인천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유곽을 설치했다. 1916년에는‘유곽업 창기 취체 규칙’을 만들어 매춘을 공식화하고 창기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었다. 이른바 공창제도의 시작이었다. 공창제도는 1947년 미 군정이 들어 서면서 폐지되었지만, 미군기지 주변에는‘기지촌’이라는 특수 공간이 형성되어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이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부터 전국에 104개‘특정 지역’을 설치, 운영하면서 동시에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어 매춘여성들을 처벌하였다. 한국의 이러한 역사적 특성은 국가, 군대와 매춘의 직접적 관계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국가는 매춘을 노동으로 인정하기보다는 도덕적 이유나 인신매매된 여성들의 보호라는 명목 하에 직접적으로 매 춘을 통제하고 범죄로 취급한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매춘을 범죄화하고 있으며, 매춘인에게 도덕적 낙인을 가하고 있다. 매춘인은 일탈적 존재로 격하되거나 피해자 로 환원되어왔다. 이러한 격하 뒤에는 매춘인을 타자로 재현해 온 역사가 존재한다. 유교적 도덕관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시대 의 문인들은 유녀나 사당패를 보호할 필요가 없는, 도덕적으로 추한 존재로 재현했다. 조선후기의 문인 이옥(1760~1816)이 사당패를 묘사하면서 생명이 있는 유(類)들 가운데 가장 추하다고 한 것은 그 한 예이다. 성을 거래한다는 것만으로 매춘인들은 늘 공동체의 위협이 되는 타자, 혹은 애매모호한 존재로 묘사되어 왔다.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현대도시 공간에서도 매춘인들은 도덕적으로 타자화되어 배제되거나 추방되어 왔다. 법뿐만 아니라 공간 배치를 통해서도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와 시민이 함께 매춘 공간을 도시에서 점점 주변화하고 소외시킴으로써 매춘을 공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집창촌 재개발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집창촌은 도시환경 개선을 위해 철거되거나 재개발 대상이다. 매춘은 시민 의성규범을 어지럽히고,시민의 공적영역을 침범하고그 경계를 교란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시민권이 특정한 성규범 즉 이성애 핵가족 중심의 성 규범과 결부되어 실현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매춘은 기본적으로 생계유지와 연관된 노동이었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저서『캘리번과 마녀』에 의하면, 유럽의 여성들은 14세기에는 동일노동에 대해 남성 임금의 절반을 받았으나, 16세기 중반에는 남성 임금의 3분의 1밖에 받지 못했다. 그 결과 농업에서건 공업에서건 임노동으로 먹고 살 수 없었는데, 이 시기에 매춘이 크게 확산했다고 한다. 마리아 달라 꼬스따에 의하면, 서구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시기에 와서 여성은 생존을 위해 결혼과 매춘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했으며 매춘은 집 밖에서 몇 가지 일을 발견했던 여성들에게도 낮은 가족수입이나 여성에게 지급되는 낮은 임금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되었다. 근대 이전 한국사회에서도 다른 경제적 자원이 없는 여성들에게 매춘은 생계유지의 수단이었다. 오늘날 매춘은 여전히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의 하나지만 대규모 국제 성 산업과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매춘이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이 아니었던 적은 없 었다. 포르뚜나띠 역시 매춘노동을 가사노동과 함께 여성 노동의 하나로, 생산적 노동의 주요 영역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매춘인에게는 역사적으로 도덕적인 낙인이 가해졌으며 생활공간 에서 배제당하고는 했다. 이러한 낙인과 타자화의 역사를 깨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노동의 하나로 존재해 온 매춘을 노동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매춘이 역사적으로 주로 여성의 노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매춘을 노동의 하나로 보고 그것이 생산한 가치를 따지는 일은 여성의 역사, 그중에서 가장 주변화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매춘을 성 노동으로 재개념화하는 일은 현재 성 노동자의 삶을 위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쓰는데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매춘을 신체를 사용하는 다른 노동이나 비물질 상품을 생산하는 서비스 노동과의 비교를 통해‘노동’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노동으로서의 매춘

매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 문제 삼는 것 중의 하나는 가장 친밀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적인 것이 상품으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춘이 몸이나 서비스를 상품화하는 유일한 경우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신체를 써서 돈을 벌고 있으며, 대학교수, 공장노동자, 변호사, 오페라 가수, 매춘인, 의사, 의원 등 누구나 신체 중의 일부를 사용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일은 사회적인 낙인이 있지만 어떤 일은 그렇지 않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결과가 계급 편견이나 인종이나 젠더의 고정관념에 기반해 있다고 본다. 성적인 혹은 생산적인 능력의 사용과 관련해 돈을 벌거나 계약을 맺는 것은 진정으로 나쁘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춘이 다른 형태의 신체적인 서비스와 많은 특징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동과 분리되고 비난받는 것은 낙인 때문이다.

또한 매춘은 신체화된 노동이면서 비물질적 서비스 상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감정노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사람들이 개인의 기분을 다스려 얼굴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 보이는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고 판매된다. 따라서 교환 가치를 갖는다. 매춘을 포함한 성노동 역시 돌봄과 감정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정노동과 연접해 있는 노동이라 할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의 서비스, 연기, 심리치료, 마사지, 어린이 돌봄과 같이 성 노동은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노동인 것이다.

매춘이 다른 노동과 다르다고 여겨지는 결정적인 부분은 신체화된 노동이자 성애화된 노동이라는 점, 그리고 이 과정에 욕망, 쾌락 등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매춘은 인간의 욕망을 직접 충족시켜주는 서비스 노동이며, 쾌락을 생산하는 노동이라 할 수 있다. 고정갑희는 매춘을 비물질적인 것을 생산하는 노동, 쾌 감, 쾌락, 그것도 성적 쾌감이나 쾌락을 생산하는 노동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쾌락을 생산하는 매춘노동은 임금을 받고 판매되기 때문에 교환가치를 가진다. 이때 교환되는 성적 서비스는 상품이다. 조립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과는 다른 비물질 상품이다. 따라서 매춘노동은 생산노동이라 할 수 있다. 성 노동을 성별/성애노동으 로 나누고 매춘노동을 성애노동에 포함시키는 성 노동 체계는 매춘을 다른 노동과 고립된 노동이 아니라 연관된 노동이며, 동일한 성 노동 체계 속에 놓인 노동으로 보게 해준다.


성 노동자로 인정될 그 날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성 노동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모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이다. 성 노동은 성적 서비스를 교환하고 쾌락을 생산하는 일이며, 이 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다. 이렇게 성적 서비스를 교환하는 일이 노동으로 인정될 때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노동 운동의 주체로서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또 이에 관한 논쟁은 인권이나 여성의 권리, 노동권에 관한 주류적 논쟁에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성노동자라는 이름은 성 산업현장에서 성서비스를 제공해서 소득을 창출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회적, 계급적 위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생존권으로서의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도 성 노동자라는 이름은 이 일을 하는 당사자들에게‘윤리적으로 타락한 일 ’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한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다른 존재의의를 부여하게 해준다. 물론 노동이라는 명명만으로 성 노동자의 노동 조건이나 삶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이라는 명명은 성 노동자 당 사자는 물론 당사자 외의 사람들이 매춘에 대해 다른 사유를 시작하게 해 주며, 신체를 사용하는 다른 노동과의 연속 선상에서 매춘을 보게 해줌으로써 매춘에 대한 편견을 해체한다. 성 산업의 착취구조가 존재한다면 그 구조와 싸우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를 근절하고 범죄화하기보다는 성 노동으로 재개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성 노동으로의 재개념화가 필요한 것이다.

매춘 현장의 비인권적 행위나 불법적 요소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매춘을 비범죄화하고, 성 노동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흔히 매춘을 이야기하면 인신매매, 성 착취를 이야기 한다.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주성노동의 현장에 이러한 요소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성 노동을 근절하는 전제가 될 수는 없다. 현재 한국은 매춘을 성매매로 규정하고 성특법을 통해 성 노동을 범죄로 규정한다. 성노동을 범죄로 규정하는 한 성노동자의 인권, 노동권은 확보되기 어렵다. 그동안 단속이란 이름 아래에 얼마나 많은 성 노동자들이 피해를 겪었던가. 법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성 노동에 관한 관심과 이론화가 필요하며, 관심의 초점을 남성 구매자나 업주들이 아니라 성노동 당사자에게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오명과 낙인이 덧씌워진 매춘을 재개념화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오랜 역사동안 매춘노동을 해온 여성들, 그리고 지금도 공격적인 세계화의 진행 한 켠에서 빈곤으로 인해 국가 경계를 넘어 매춘노동을 하는 성 노동자들을 그들이 처한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