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6.08 12:19

놀이로 생각해보는 대안적 삷과 교육

 

 

한기철1) _ 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 간사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행복한가?”,“ 자신이 살고자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더불어 행복한 삶과 세상을 꿈꾸는가?”스스로 이와 같이 물어보곤 해요. 이 질문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요. 난 이 문제를‘놀이하는 인간, 놀이하는 삶’의 부재에서 찾습니다. 동시에 이에 대한 대안이 될 열쇠 하나를‘놀이’에서 발견해요. 네덜란드 문화사학자인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인간의 존재적 특성을‘놀이하는 인간’으로 보고‘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지칭했어요. 그리고 언어∙정치∙법률∙경제∙스포츠∙예술∙과학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놀이정신과 놀이의 요소가 발견이 되며 동시에 놀이의 요소들이 삶을 형성한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놀이는 교육이나 문화를 뛰어 넘어‘삶’이라는 관점을 던져준 것이지요. 난‘온전한 인간, 건강한 공동체, 더불어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대안이 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에서 놀이를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여기서는 내가 오랜 시간 담당하고 있는‘메아리학교’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해요.

 


메아리학교


메아리학교는 1992년 설립된 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에서 놀토 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2003년도에 세워진 놀이로 하는 주말 자연학교입니다. 메아리학교는‘온전한 인간, 행복한 삶, 건강한 공동체’교육을 위해‘사람과 자연, 공동체’가 있는 놀이를 돌려주는 학교라고 할 수 있어요. 격주 토요일마다 아침 9시에 만나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노는 학교에요. 메아리학교에는 다음 다섯 가지가 있어요.

 


첫째, 놀이하는 사람:‘ 나’


놀이는 특정 규칙을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유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강요당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놀이도 아니고 즐거움도 사라지지요. 요즘 놀 줄 아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드물어요. 놀아본 경험도 없거니와 내가 나로서 살아보질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 내가 있는 삶을 꿈꾸기도 어려운 법이에요. 메아리학교에서는 시간이 갈수록“선생님, 놀아줘요.” 하는 어린이들이 없어요. 점점“이거 하자.”,“ 저거 하자.” 며 서로 놀이를 초대하는 주체가 되지요. 놀이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가 노는 것이에요. 대신 누가 놀아줄 수 없는 노릇이지요.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우리는 어린이들 대신 놀려주려고 하지 않아요. 지도자들도 억지로 놀려주지 않고 지도자 스스로 놀지요. 독립된 인격체로 한 사람을 존중하고 세우는 길은 내가 노는 길밖에 없어요. 우리가 어린이들을 기다리면서‘놀이하는 사람’으로 초대하고 세우는 이유예요.


 

둘째, 놀동무: ‘사람과 공동체’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존재입니다. 마르틴 부버는‘나는 너를 통해 진정한 나에 이른다.’ 고 했어요.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만남과 사귐이 있는 관계를 통해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 청소년 세대는‘만남은 있으나 사귐은 없는 세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나기는 하지만 의미있는 인격적인 사귐이 없기 때문이에요. 당연해요. 여전히 무한경쟁과 입시 위주, 지식중심의 교육에 내몰린 현실 속에서 어떻게‘진정한 동무’,‘ 참된 관계’,‘ 건강한 공동체’ 를 기대할 수 있겠어요. 오히려 곁에 있는 너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반응하고, 무책임하게 되는 비인간화를 부추기
고 있어요. 이에 메아리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놀 동무’를 돌려주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은 혼자 클 수 없거든요. 그리고 다른 이로부터 수용과 지지, 신뢰와 사랑을 받는 공동체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기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메아리학교에서는 안 하는 게 있어요. 놀이를 하면서 절대로 1등과 꼴등을 나누며 경쟁시키지 않아요. 그리고 비교평가를 통해 보상을 주지 않아요. 얼마 전에 메아
리학교에서 재밌는 일을 목격했어요. 그날은 공교롭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3(3학년), 4(4학년), 5(5, 6학년)모둠 어린이들이 각 모둠별로 자기들만의 비밀 세계인‘요새 짓기’를 했어요. 등수를 나누지 않고, 비교평가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일반 세상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어요. 정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샘플도 없이 자유롭게 자기들만의 요새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누구를 탓하는 법도 없어요. 자기들만의 생각과 표현이 담긴 창의적인 자기다움을 찾아가요. 너를 이겨야 할 이유가 없으니 서로 잘 만나요. 무거운 돌을 나르는 동생 곁으로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톱질하는 법도 알려주기도 해요. 누가 시키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나
누고 섬기며 협력해요. 서로가 서로를 수용하고 인정하고, 편안해하며 신뢰가 쌓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비교와 평가, 등수를 나누는 경쟁이 없는 놀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지혜를 키우고 서로 행복한 세계로 초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셋째, 놀터:‘ 자연’


메아리학교에는‘어린이들 손에 흙과 생명을’이라는 표어가 있습니다. 놀 터인 자연을 돌려주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흙을 만져보며 놀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동네 놀이터며 학교 운동장 곳곳을 인공물들이 흙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잖아요. 자연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을 만나는 자리이자 우리가 소중한 생명임을 일깨우는 터입니다. 메아리학교 어린이들은 일 년 동안 계절을 따라 변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나고 비밀의 숲이며 계곡, 꿈틀 밭, 마당 등 곳곳을 누비며 마음껏 놀지요. 메아리학교에서는 0.5 평도 되지 않는 자기 밭에서 농작물을 기르는 노작 활동을 합니다. 우리는‘꼬마농사꾼 활동’이라고 부르지요. 한 번은 한 학기를 마칠 즈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다른 어린이들은 꾸준히 자기 밭을 열심히 돌봐서 기쁨으로 수확물을 거두었지요. 그런데 집안에 사정이 있어 씨앗만 뿌리고 중간에 결
석을 한 친구가 있었어요. 저는 그 친구가 자신의 빈 마른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땅아, 미안해. 잘 돌봐주지 못해서.”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는 또 다른 생명을 만나고 그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어요. 만약 지도자가 그 친구를 대신하여 밭을 돌봐주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일이기도 했지요. 어린이들에게서 놀 터인 자연을 빼앗는 것은 생명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거예요. 마땅히 놀 터인 자연을 돌려주어야 할 일이지요.

 

 

 

넷째, 놀틈:‘ 누림 그리고 여유와 쉼’

삶은 배우기 이전에 는 것이듯, 놀이는 배우는 게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배우는 데 익숙하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누리는 법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유행은‘교육’이라는 데 동의하실 거예요. 문화나 예술, 놀이를 보세요. 사실 이것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누리도록 하는 윤활유입니다. 하지만 왜곡된 교육으로 인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메아리학교에서는 하루 온종일을 실컷 놀고 또 놀아요. 스스로 놀이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요즘 어린이들은 놀 틈이 없어요. 숙제하랴, 학원에 가랴 때론 부모님보다 늦게 집에 돌아올 만큼 바쁜 일상을 살아갑니다. 어떤 친구들은 메아리학교에 숨을 쉬러 온다고 말하곤 합니다. 또 어떤 친구들은“선생님, 전 메아리학교 덕분에 2주를 살아가요.”라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바쁜 일상에 놀이는 살아가는‘숨’이 되어주고 재충전을 돕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 뭐하고 놀아야 할지 망설이고 당황하는 어린이들이 많다는 사실을요.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시간을 경영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메아리학교가 긴 쉬는 시간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예요. 메아리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며 다른 사람과 함께 즐겨요. 주저함이 없어요. 스스로 선택했으니 그 시간에 대한 책임 또한 스스로 지지요.

 

다섯 째, 놀 거리


메아리학교에는 핸드폰, 전자기기가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어린이들이“선생님, 핸드폰이랑 게임기가 없어도 재밌어요.”라며 온 몸으로 노는 놀이의 즐거움을 깨닫거든요. 메아리학교는 어린이들에게 놀이주머니를 선물해주고 싶어요. 어릴 적 우리들은 언제라도 놀이를 꺼내 쓸 수 있는 놀이주머니가 하나씩은 있었잖아요. 덕분에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었고, 언제라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었어요. 실컷 놀면서 몸과 마음에 튼튼한 근육을 키워요. 가끔“앞으로 다음 세대를 만나게 될 지도자는 어떤 놀이의 경험을 갖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 오기도 해요. 20-30년 전 나의 어린 시절 골목에서, 산과 들, 계곡에서 온 몸을 쓰며 놀았던 경험과 달리 앞으로 지도자가 될 세대들은 놀이라고 할 때 인터넷, 스마트 폰, VR과 같은 기기를 통한 게임을 떠올리는 게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게임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병에 듭니다. 그리고 가상공간화된 놀 거리들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또한 돈이 없으면 놀 수조차 없게 상품화된 놀이들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놀이라 고 할 수 없지요. 점점 놀이가 아닌 것들이 놀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건강한 놀 거리를 돌려주어야 해요.

 


놀이하는 인간, 놀이하는 삶으로


어린이들의 놀이세계를 함께 일구어 가면서‘온전한 인간, 건강한 공동체, 더불어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열쇠가‘놀이’에 있으며 이를 위해‘놀이하는 인간, 놀이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확인해 갑니다. 동시에 진정한 놀이가 무엇인지, ‘놀이하는 인간, 놀이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묻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일상에 놀이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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