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6.08 11:45

죄의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니체와 키에르케고어의 죄 개념


윤유석 _ 철학과 석사과정

 

 

죄, 신앙과 비신앙의 갈림길에서
“죄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이 이건 죄다, 죄다 하니까 그게 죄가 된 거 아닌가요?”고등학생 시절 읽은 이문열의 소설『사람의 아들』에서 내 마음을 찌른 구절들 중 하나이다. 소설 속 인물인 아하스페르츠는 바로 이 의문에 빠져 자신의 유대교 신앙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한다. 한때 그는
신에 대한 경건한 믿음이 인간을 현실의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로마의 압제 하에서 핍박받던 그의 동포 이스라엘 민중에게 신앙은 아무런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였다. 오히려 신앙은‘죄’라는 잣대를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린 채 병들고 나약한 삶만을 끊임없이 장려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소설에서 아하스페르츠는 결국‘신의 아들’인 예수에게 대립된‘사람의 아들’을 자처하고서, 신을 비판하는 자로 등장하여 활약한다. 그는 재림의 날까지 이땅을 배회하며 예수와 싸우기를 결심하게 된다. 나는 내가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려 할 때마다 아하스페르츠가 품었던‘죄’에 대한 물음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의문은 그리스도교가 약속한 구원이 과연 인간에게 실질적인 삶의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너무나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듯 하였다. 만일‘죄’가 현실이라면, 우리에게는‘죄’로부터의 구원이 요청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그리스도교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호소할 수 있는 삶의 진실이 된다. 반면‘죄’가 허구라면, 우리에게는‘죄’로부터의 구원이 불필요해지고 만다. 이 경우 그리스도교는 단지 존재하지 않는‘죄’를 내세워 인간을 속박하는 억압적 기제가 된다. 어떠한 관점에서‘죄’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도, 그렇지 않을수도있다.‘ 죄’의 문제는 신앙과 비신앙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다.


‘죄 문제’가 지닌 철학적 함의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F. Nietzsche)와 쇠얀 키에르케고어(S. Kierkegaard)가 이 갈림길의 양쪽을 각각 대변하고 있는 철학자로서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둘은 모두 헤겔 이후 서양사상의 흐름을 쇄신하여 현대철학을 위한 새로운 사유를 개창한 인물들로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옥죄어 창조적인 삶을 가로막는 약한 자들의 종교라고 비판하였던 반면, 키에르케고어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이끌어 절망으로부터 구원하는 실존의 가능성이라고 강조하였다. 둘의 입장에서 나타나는 대립적인 면모는 많은 학자들에게 오랫동안 흥미로운 비교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브란데스(G. Brandes)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연구의 흐름은, 칼 뢰비트(K. Lowith), 칼 야스퍼스(K. Jaspers), 질 들뢰즈(G.Deleuze) 등 현대철학의 중요한 사상가들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니체와 키에르케고어의‘죄’개념을 중심으로 진행된 비교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죄’ 라는 문제는 둘 모두에게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철학적 주제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되었다. 내가 보기에, 두 철학자가 제시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과 옹호는 모두‘죄’의
문제에 대한 고민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리스도교가‘죄’라는 족쇄로 동시대인들을 속박한다고 비난하였지만, 키에르케고어는 동시대인들이‘죄’를 잊어버린 채 그리스도교를 싸구려 신앙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하였던 것이다. 나는 둘의 대립적인 입장을‘죄’개념을 통해 살필 경우 독창적인 연구를 제시할 수 있을뿐더러, 내 평소의 고민 또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논문을 통해 그리스도교에서 제시된‘죄의 문제’가 지닌 철학적 함의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한편으로, 나는 죄의 문제에 대한 니체의 부정적 관점, 곧 죄의 문제는 인간의 생을 억압하고, 타자에 대해 폭력을 유발하며, 주어진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든다는 관점을 살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키에르케고어의 긍정적 관점, 곧 죄의 문제는 인간이 자기를 극복하도록 하고, 타자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도록 하며, 주어진 체제를 개혁하는 힘을 지닌다는 관점을 살폈다. 이 비교를 통해 나는 니체의 입장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키에르케고어의 입장을 보다 옹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죄’에 대한 신화적, 교의학적 해명이 아닌, 철학적 해명을 제안함으로써 오래된 종교적 고민이 인간의 실존에 관한 통찰을 안고 있다는 점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허구, 그 이상의 의미
‘죄’의 문제에 대한 연구는 내가 니체와 키에르케고어를 비교함으로써 제시한 내용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논문을 제출한 이후에도 나는‘죄’에 대한 사유를 어떻게 보다 확장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생철학’혹은‘실존철학’의 관점에
서 논의를 보다 치밀하고 세부적으로 전개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루돌프 불트만(R. Bultman), 폴 틸리히(P. Tillich) 등의‘실존주의 신학’이나, 칼 야스퍼스(K. Jaspers), 가브리엘 마르셸(G. Marcel) 등의‘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탐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정
신분석학’혹은‘분석심리학’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프로이트(S. Freud)가 다룬‘양심’,‘ 불안’, '죄책감’에 대한 연구나, 융(C. Jung)이 논의한‘그림자’에 대한 연구를 참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다 사회적인 차원으로 문제를 풀어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한나 아렌트(H. Arendt), 미셸 푸코(M. Foucaul), 피에 르 부르디외(P. Bourdieu), 르네 지라르(R. Girard) 등이 집단, 권력, 폭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탐구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죄’의 문제가 신화적, 교의학적 허구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믿는다. 상징, 신
화, 종교, 신앙, 이야기 등은 모두 인간의 현실을 드러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폴 리쾨르(P. Ricoeur)가 지적하는 것처럼, “상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에 대해 고민하며 제시한‘죄’의 문제는 단순한 거짓으로 치부되기에는 우리의 생각을 너무나 많이 자극하고 있다. 비록‘죄’란 철학적 고찰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수수께끼처럼 우리에게 떠오른 상징적인 개념이지만, 이 개념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 반성적으로 살펴보도록 사유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상징으로부터 떠올려진 생각들 속에는 풍부한 철학적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 생각들에 진지하게 응답함으로써그리스도교 신앙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갱신시킬 수 있으며, 철학을 위한 마르지 않는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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