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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9호] 한국 사회의 갈 길을 묻다 -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인터뷰

 

 

처음 학부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원생이 되기까지. 내가 목도한 청년들의 삶은 해마다 무언가 하나씩 ‘더’ 포기할 것을 강요받는 ‘N포 세대’의 모습이었다. 캠퍼스 곳곳에 붙는‘시국선언문’이 늘어나다, 급기야 ‘고장’나버린 대의정치를 대면하게 된 지금. ‘공생’의 가치 회복을 외치는 한 학자를 만나 한국사회의 가능성과 대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재의 시∙공간이 매우 중요한 지점임을 역설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가 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아래의 대목을 통해 갈음하고자 한다.

우리가 매주 토요일 따뜻한 모자와 장갑을 준비하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권력을 잘못 위탁하여 좀비와 흡혈귀처럼 될 것을 우려해서이며, 더불어 하는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기 위함이다. 급하게 가다 망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천천히 가는 것을 연습한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거쳐 봄이 올 때까지.1)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양계영

 

 

Ⅰ. 현 사회의 문제점 - 혼용무도(昏庸無道)2)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선생님께서는 은퇴까지 40여년을 강단에서 교편을 잡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청년세대의 변화를 직접 목도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청년세대가 시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조한혜정(이하 조한)> (저는) 유학에서 돌아와 이른바‘386세대’인 79년부터 가르쳐왔는데요. 당시 대학은 사회를 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데모를 안 하면 병신 취급을 당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나름 공공에 대한 분명한 사회의식이 있었죠. 또한 성장과정에서 동네도 있었고, 친척들 속에서도 살았고, 친구들도 많아서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때로 작당하면서 조직하는 훈련도 되어 있었죠. 그래서 학습하고‘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였어요. 이른바 하면 된다는‘hot한’세대였죠. 90년대 학번에 들어오면 경제가 좋아졌고, TV도 컬러로 보면서 자랐고 대중음악과 PC통신 등으로 개별적 문화를 즐기는‘개인’이 생기기 시작해요. 이들을‘신세대’라 불렀어요. 그 세대나 80년대 끝물의‘개별화’된 세대에서, 서태지가 나왔고 인터넷의 대중화 물결을 타고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탈의 창업자들도 나왔고요. 이들은 굉장히 개별화되어 있고 독보적이고자 한 문화의 시대인들이고‘선배들은 어떻게 한다더라’이런 개념이 별로 없어요. 자기만 있으면 되는 거고, 독창적일수록 좋은 거고, 튀고 싶고. 그래서 대부분 자기표현을 한다든가, 문화적인 것, 고상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어 했어요. 윗세대가 정치적으로 그랬다면 이 세대는 문화적으로 기성세대를 거스르고 싶어 한 욕망의 세대라 할 수 있죠. 그 세대가 잘 성장하면 한국사회가 제대로 성숙해질 것이라 믿었는데, 1997년 IMF 금융위기를 심하게 겪으면서‘겁에 질린’사회는 오히려 개발독재 세대와 비슷한 생존경쟁의 세대를 형성한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서 나 혼자, 내 가족만이라도 살아남자는‘(신)자유주의자’들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른바 개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신자유주의 세대의 출현인 것이죠. 생존이 힘들 거라는 공포 속에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필독서로‘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그 중에는 자기계발서를 중독자처럼 읽으면서 공부 했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지금 대학원생들의 세대가 여기에 속하나? 2000년경부터 ‘세계화’에서 대학이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고, 대학가서도 모두를 한 줄로 세우는 학점이 중요해지지요. ‘도태하면 죽는다’식의 승자독식, 초 경쟁 시대가 열린 거죠. 대학이라는 게 긴 시간성 안에서 길고 넉넉하게 보고 그 시공간에서 여유 있게 사유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곳인데, 스펙 쌓느라고 정신이 없고 살벌한 곳이 되죠. 이른바 더치페이 문화도 생기고요. 2000년대 중반부터 오찬호 씨의 저서 제목처럼‘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식으로, “나는 너무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안 한 애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에 들어오는 것은 부당하다”이런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이들도 생겨나죠. 엄마들이“놀러 다니지 마라. 몰려다니지 마라.”라면서 키웠다는데 사실 몰려다니는 것이‘사회’인 거거든요. 그렇게 해서 사회성이 전혀 없지만, 학교에서는 온순하고 고액과외 받으며, 엄마 시키는 대로 한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대학 입시도 잘 하고. 인사도 잘 하고, 놀랄 정도로 고분고분한 세대가 나오는데, 그래서 우리가‘cool’한 세대에서, ‘warm’한 세대로 (바뀌었다고 부르죠). 따뜻한 세대라기보다 눈치를 아주 많이 보고 기성세대와도 마찰을 빚지 않는 미지근한 세대랄까.대략 이런 이념형으로 세대분화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이 양상이 또 좀 변하고 있어요, <노오력의 배신> 책에서도 썼지만‘스펙세대’가“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몸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 불안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랄까. 그런 것들이 광화문 집회와도 연결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광화문 시민 집회 시∙공간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공부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중요한 일들을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책 <노오력의 배신> 표지. (창비 제공)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조한혜정 선생은 “‘헬조선’사태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으로, 이 연구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또한 저자는 책에서“헬조선 담론은 망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고발이며, 이총체적 파국 상황을 해방적 파국으로 바꾸어내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자치적 삶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강>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은‘헬조선’담론, 수저계급론 등 부정적인 정서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이 유달리 괴롭다고 하고, 분노와 혐오가 많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한> 우리를‘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망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디가 먼저 망하냐. 사실은 세계 전체가, 인류 진화상으로 거의지구자체가, 망할 가능성이 높아졌잖아요. 기후변화도 모른 척 하고 있고. 그런데‘왜 한국이 유독 더 그러냐’고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가 신민지 근대성으로부터 시작했고, 굉장히 압축적으로 경제성장을 한 나라(라는 것이죠). 거기에‘기형성’이 있어요. 또 한편으로 기형성은‘불균형’일 텐데. 사람을 도구적으로 보는. 사람은 도구적인 존재이면서도, 존재 자체로 소통하는 존재인데. 소통하고 만나는 부분이 계속 무시되었던 거죠. 입시교육, 집, 가족까지도. 엄마와 아이가 눈 마주치면서 노는 것을 안 하잖아요. “너 공부했냐?”그런 식으로. 그것과 입시교육이 함께 가면서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 온 거죠. 그러면서도 계속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과‘입시 공화국’과‘보험 공화국’으로 산다고 이야기 했는데. 아파트로 돈 벌고,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고. 아파트가 계속 돈을 벌게 하는 식의, 토목, 토건 국가적인 발전을, 토건적 경제발전을 이명박 정부 끝까지 다 말아먹은 형편이고. 그러면서 ‘돌봄’이라든가, ‘상생’이라든가, ‘소통’이라는 영역은 싹 무시된 거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정신없이 굴러온 거예요. 그때는 국가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386 세대’3) 민주운동을 한 사람들조차도, 자식들을 일류대에 넣거나, 외국에 보내거나 이런 것에 몰입을 했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온당성과 제대로 가는 발전에 대해서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예요. 다 주식투자하고 펀드 하고, 어쨌든 돈만 제대로 벌고, 아이들 입시만 제대로 하고 나면, 보험만 들어놓으면 모든 게 다 보장된다, 이렇게 착각을 했던 거고. 그런 게 ‘세월호’나‘가습기 사건’을 겪으면서‘보험 들어봤자 그냥 죽을 것 같다’는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 거죠). “우리가 전혀 보호받지 못 하는구나.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구나.”현실을 직시하는 흐름이 생긴 거라고 생각을 해요.


Ⅱ. 문제에 대한 해결 - 종신불퇴(終身􂸝退)4)


서강> 한 인터뷰에서“인간 삶의 핵심은 협동과 관계 맺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현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관계의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조한> 학교부터 바뀌어야 되는 거죠. 학교부터 의논하고, 입시교육이 안 바뀌면 안 돼요. 그중에서도‘내신 성적’보지 말라고 해야죠. 내신 때문에 다 학교에 붙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가족과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은 협동을 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학교는 입시제도에 걸려 있고, 부모들은 입시제도에서 일류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일류대에 온 친구들은 일류대에 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지만 대기업이나 이런 곳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죽어라 목매달고 있고. 또 대기업에 간 사람들은 가보니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 순환의 고리가‘겁에 질려서’계속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입시교육을 전폭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학교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들한테는‘바우쳐’를 줘야 해요. 그러면 그런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서 (대안의) 학교를 만드는 거예요. 그게 실제로 일정하게 산업화하고 난 단계에서‘대안학교’가 생긴 역사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안학교를 못 하게 하죠. 혁신 학교와 같은 조그마한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사교육 시장과 학교가 이상한 형태로 결탁을 하고 있고. 선행학습과 내신 성적을 가지고 가는 한은 이게 안 바뀔 거예요. 그러면 학교를 일정하게 붕괴∙해체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대안학교 쪽으로 영역이 열렸었어야 했는데, 우리나라가 지난 20년 간 그런 것들을 했었어야 됐는데, 기회를 놓친 거죠.

서강> 질문의 논의를‘청년 세대’로 좁혀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노오력의 배신> 책에서 말씀하신‘청년 스스로 삶을 꾸려갈 시간, 자원, 삶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조한> 제가 제시하는 것은 청년 자체가 스스로 너무 두려움에 가득 찬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겁에 질린 주체’가 변화되는 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니까“내가 굶어죽지는 않을 거야”라든가. 겁에 질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이런 게 필요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5) 이런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냥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바뀌기는 힘들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은 사회적으로 청년부터‘시민배당을’주자. 저는‘기본소득’을 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같은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다 빨려 먹혀버린 사회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일했으니까 (사회가 보상해야죠). 그런 시민배당에 대한 논의가‘피터반스’6)라고 미국에서도 나오는데. 중산층이 이렇게 몰락한 사회에서는 답이 없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은“정말 가난한 사람한테 주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결국“너무 가난하고 불쌍하고 앞이 캄캄한 사람이니까 돈 준다”이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이 땅에 물과 공기와 자연을 가진 우리 모두의 권리이고, 어쨌든 태어나면 ‘1’을줘야하는 거지,‘ 0’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런 논리로 피터반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문제는 (이제) 청년들이 풀어야 하는 거잖아요. 청년들이 기후변화 문제도 풀어야하고, 청년 배당을 어떻게 계산할까도 경제학적으로 풀고. 20∙30∙40대가 새로운 논리와 계산법, 인터넷과 글로벌 정보를 통해서 해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일단은 다 줘서, 그들 중 1%만 일을 하면 되거든요? 이건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중 1%가 계산을 하고, 10%가 농사를 짓고, 10%가 음악을 만들고, 그러면서 자살도 안 하고, 서로서로 돕다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그거 외의 대안은 없는 거죠. 이것도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처럼 공약 걸고 할 텐데. 그러면 안 돼요. 이런 것일수록 시민사회에서 제대로 실험해야죠.

서강> 선생님께서는“‘권력자가 문제’라고 백날 이야기해봐야… 시민이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건과 집회를 보면서‘시민의식은 높은데, 정치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많이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조한> 권력자라는 게, 검사도 시민이자 권력자잖아요. 그러니까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검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모두가 전문가로서의 권력, 시민으로서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국민국가’라는 차원의 시스템은 일정하게 붕괴를 한 거잖아요. 우리가 정치권만 보면 계속 자기네 정권만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국민 국가 시스템을 일정하게 낙후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동안은 (그 시스템을) 가지고 가야하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 시민들도 똑똑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해요. 그래서‘기본소득’을 주든지 해서 그들이 시민이자, 전문가로서 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일단 (시민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 군대 같은 것도 사회에 대한 경험을 전혀 못 하게 했으니까. 6개월 마음대로 여행을 갔다 오라고 500만 원을 주든지. 저는 당연히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시 제도를 바꾸세요”라고 100번 이야기해도 안 하면 “그럼 돈 내놓으세요. 우리를 바보 같이 만든 것에 대해 배상 하세요”라고 청년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죠. 청년들이 그걸로 다 광화문에 나간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니까 시민들이 지혜롭다는 것은 서로 모여야 해요. 문제는 대학원 팀 모임을 해도 잘 모이지도 않잖아요(웃음). 모여서‘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보면 그게 얼마나 재미있고, 자기가 훌륭해지는지를 아는데,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잘 못하는 거죠).


 

Ⅲ. 공생적 삶을 위한 제안 - 공존공영(共存共榮)7)


 

서강> 한 학회의 키노트 스피치에서 선생님께서는 “투표가 정치적 의사결정이 아닌, 사회적 자기표현 행위가 된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대의’가 되지 않는 세상일 터인데, ‘누군가를 대신하여 무언가를 의논한다’는‘대의’가 가능한 것일까요? 그런 ‘대의’가 불가능하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할까요?


조한> 지금 ‘박근혜 퇴진’이런 것도 다들 잔머리 굴리고 있는 거잖아요. 권력 장기 집권 하려고. 계속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죠). 모여서 지속적으로 책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책을 꼭 읽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괜찮은 텍스트를 같이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고, 그 사람들이 (함께) 시위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동료가 있는 사람 이외에는, 사실 다 겁에 질려서 살 수가 없거든요. 이들은 같이 공부하면서 나가고, 같이 밥 먹고, 애도 같이 키우고. 그런 튼튼한 집단이 있을 때 (가능하죠). 얼마나 신뢰도가 높으냐, 신뢰지수, 소통지수 이런 게 바로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너무 개별화되어 있으니까 그럴 힘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서강> 결국 모여야 이야기도 듣고, 바뀌고, 이렇게 되는 건가요?

조한> 그런 거죠. 그런데 다 손해 보기 싫고, 그간에 만난 적이 없어서 그게 쉽지가 않아요. ‘우동사’8)라고 청년들이 모여서 70만원으로 살아요. 그 친구들은 같이 사는 게 너무 재밌으니까, 돈 쓸 일도 없고.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게, 커피 값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랬더니 그 중 한 명이 또 커피 가는 기계를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70만원이면 너무 재미있게 살고, 애기도 같이 키우고. 밥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밥하면 되는 거고, 청소 좋아하는 사람은 청소하고. 보통은 시장적으로“너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큼 이렇게 해”계산하며 살잖아요? 그런 걸 전혀 안하고 살다 보니까 삶이 완전히 달라져요.

 

서강> 방금 해주신 말씀이랑 연결이 될 것 같은데, 요즘 같이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정말‘연대’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받았거든요.

조한> 개개인이 중시되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개개인이 자기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연대는 내가 이렇게 접속을 했다가 싫으면 안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확실하게 있어야 되고,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되고, 협상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그야말로 개인의 욕구가 중심이 되는 게 ‘우동사’고.‘ 후기 근대적인 공동체’인 거죠. 옛날식의 공동체랑은 전혀 (달라요). 그래서‘공동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이건 차라리‘사회’라든가. ‘마을’인거죠. 공동체라는 말은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우동사’도 그렇고 별로 공동체가 아니에요. 각자 살아요. 각자‘모여서’사는거죠. 어떤 학생이 자기는 (그 말이) 싫다고. 5명이 있는 집에 사는데, 2명씩 살거든요 한 방에. 자기는 누가 기분이 안 좋으면 (그 사람을 위해) 감정노동을 해야 되니까. 싫다는 거예요. ‘우동사’에서는 5명이기 때문에 카톡으로“요새 누가 무슨 문제로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야근을 한다든가, 여유가 없다, 누가 혹시 시간이 되냐?”그럼 누군가“내가 볼 수 있다”고 이렇게 share를 하는 거죠. 그래서 공동체가 아니고, 개별적으로 지혜롭게 의논하면서, 여기서 핵심은‘매주 의논하는 자리’죠. 누가“화장실에 머리카락을 안 치운다, 나는 그걸 해야 하는데 내 친구는 안 한다”든가 그러면 계속 토론을 하면서, 그게 정말 걸리는 사람이 버리고 그런 식으로 회의를 하는 거죠.


서강>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자공공>과도 연결해서 설명이 가능할까요?


조한> 그렇죠. 자기가 있어야 자기를 돕잖아요. 자기를 도우려고 보니까 같이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더불어서 같이 살다 보면 나라가 생기는 거죠. public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그게 국가일수도 있고. ‘국민국가’는 인류의 긴 역사에 길어봤자 5세기? 500년밖에 안 되는 건데. 마치 국가를 가장 영원했던 것처럼 생각하게 한 그 이데올로기는 뭐냐? 그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거잖아요? 국민국가 시대가 이제 저무는 거죠. 한국의 경우에는 식민지 때문에 더욱 더 열정적으로 나라를 원했고. 나라를 위해서 죽겠다고 생각했던 거고요.

책 <자공공> 표지. (또하나의문화 제공)
‘자공공’(自共公)은“스스로 돕고 서로를 도우면서 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 가는”것을 뜻한다. 조한혜정 선생은 이 책에서 돈으로만 연결되고, 서로를 미워하는 적대적인 세상과의 결별을 주장하고, 그 대안으로‘창의적 공공 지대’∙‘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제안하고 있다.

 

서강> 문화인류학자로서, 선생님께서는‘다양성, 공존’을 말씀해오셨습니다. 왜‘다양성’이 중요한가요?

조한> 인류도 진화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사회도 진화를 하는 거고. 진화의 핵심은‘다양성’이에요. 환경은 항상 바뀌는데, 바뀌었을 때 어떤 다른 게 선택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게 없다. 그러면 그 시스템은 죽는 거죠. 한국의 이 획일성과 입시교육이라는 게 적응력 없는 사회이자, 변화된 상황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못 갖게 한 부분인 거예요. 사회가 계속 가려면 그‘가능성’이 계속해서 생겨야 되는 거죠. 그래서 다양성은 정말 중요해요. 그게 하나의 하위문화subculture를 만드는 거죠. 그래서 사회 환경이 바뀌면 옛날의 mainstream이 더 이상 작동을 안 하게 됐을 때, 메인이 아닌 쪽에서‘이렇게 가면 되는 구나’라는 시도를 하고, 그게 (새로운)main이 되는 거예요.

서강> 나중에 메인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개체들은 지금은 다 마이너인 거잖아요. 물론 이게 존중이 되어야 다 같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고 다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듯한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한> 80년대 90년대는 홍대 쪽에 인디∙언더문화가 굉장히 활발했죠. 그게 행복하고 건강한 거예요. 그냥 내버려둘 수 있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버려 두질 않잖아요.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내버려둬야만 사회가 잘 가는데, 자기와 다른 걸 못 봐서 죽이고 싶다. 이거는 파시스트사회, 적응력이 전혀 없는 사회죠. 그 증오와 미움은 어디서 나오느냐? 자기가 열심히 살면 남 이사 뭘 하든 그게 뭐가 관련이 있겠어요?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걸 희생하고 공부를 했는데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미운 거죠.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겁에 질려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망한 거죠. 그래서 “‘천천히’, ‘겁에 질리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모여서 같이 놀고, 즐기고, 서로를 고마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서강>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과 연결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한 칼럼에서, 그런 문제적인 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변해야 한다”9)고 하셨는데 어떻게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고, 그 길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조한> 이게 굉장히 근본적인 전환이거든요? 천천히, 어중간하게 하면 안 되죠. ‘천천히’라고 이야기한 것은, 광화문에 나갔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빨리 끝장을 내자. 대통령을 몰아내자.”그런 것으로 (지금의 문제
들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대통령이 하야를 하든, 쫓겨나든 하나의 사건일 뿐이고. 그 뒤에서 (누군가) 정치적으로 훈련이 안 되었음에도, 대통령을 만든 세력들이 있는 거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다 알아가야 하니까,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일종의‘숨을 쉬자’는 거죠. 지금까지는 숨을 안 쉬고 달려왔기 때문에. 서로 듣고, 지금까지는 안 들으면서 왔잖아요. 결론 내리고, 토론 하면“너 결론이 뭔지 빨리 말해”“논지가 뭐야?”그런데 때로는 논지를 이야기 안 하고, 돌아가면서 모두 다 이야기를 하면 가장 좋은 답이 이미 나와 있어요. 급하게 빨리 논지를 이야기하니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없고. 결론도 이상한 걸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도 다 신경질이 나서‘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혼자 앉아서 영화보고, 검색하고. 사실 그런 게 백번 낫잖아요. 사실 (그런 시간이) 전혀 아까운 시간이 아닌데, 대부분은 시간 아까우니까“빨리 컨펌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합시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도구적인 지식을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하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잖아요? 의논을 하면서 가야하는데, 그걸 생략한 이 토건국가의 모습에서 탈피를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즐겁게’가자는 것은 오래 가려면 분노와, 이상한 소문“애를 낳았다”느니 이런 가십들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거죠. 우리끼리 즐겁게 토론하면서 시대를 읽어가면서 가자는 거죠.

서강> 선생님께서는 페미니스트로서도‘성장’보다‘돌봄’에 강조점을 두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회가 돌봄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요?

조한> 이 ‘성장, 돌봄’은 좋은 질문인데요. 끊임없이 경제가 성장하고, 내가 성장한다는 것은 근대 신화죠. 지금은 그 근대가 몰락한지 꽤 오래 된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 거냐? 내가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좀비가 되지 않고 살 곳은, 나를 자살하지 않게 만드는‘주변의 사람들’뿐이라는 거죠. 내‘비빌 언덕’이 어디냐? 성장이 아니고 지속가능성. 나를 돌봐주는, 그리고 내가 돌보는, 그 관계망. 그게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거거든요. 결국에 인간사회에 비빌 언덕이 있느냐, 그게 핵심이죠. 그런‘환대, 비빌 언덕’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광화문에 나가는 거고요.

서강> 요즘 저희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화두입니다. 노동현장에서, 집회현장에서, 연구공간에서 과연 올바르게 사는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선생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조한> 환대의 공간을 찾고, 청년들이 그걸 만들어야 되는 거죠. 우리 <또 하나의 문화>에서는 모임 하면서 텃밭 가꾸는 팀이 있고, 여성들 게스트하우스 하는 친구가 있고. 이렇게 느슨하게, 여차하면 공기 좋은데 가서 집단 이주를 할 수도 있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런 소모임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식의 모임들을 기웃거리다가 (참여하거나), 청년들이 원하는 것들도 만들기도 하고, ‘우동사’같은 데에도 기웃거리고. 그래서 저는 학생들한테“너희가 계속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려야 한다. 좋은 데를 만나면 거기 계속 붙어 있어라”고 하죠. 우리가‘곁불을 쬔다’고 하는데 일정하게 곁불을 쬐고, 남의 신세를 지고 그래야 하는 건데. 지금은 신세를 지면 안 되고, 돈도 그때 딱 계산해야 되고 이러니까. 친구도 못 만들고, 곁불도 못 쬐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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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조한혜정,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한겨레, 2016.11.22. (편집자주).
주2)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덮인 것과 같이 온통 어둡고 혼란스럽다. (편집자주).
주3) [386세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 ‘386’이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386컴퓨터에서 딴 것으로,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출처: 두산백과) (편집자주).
주4) 옳고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된다면 몸이 꺾이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편집자주).

주5)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저, 제현주 역, 동녘, 2016.09. (편집자주).
주6)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 (기본소득으로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다)>, 피터 반스 저, 하승수 편, 위대선 역, 갈마바람, 2016.07. (편집자주).
주7) 함께 살고 함께 번영함. 함께 잘 살아감. (편집자주).
주8)‘ 우동사’는‘우리동네사람들’의 줄임말로 2011년 여섯 명의 청년들이 실험한 주거실험 공동체이다. 현재 인원이 늘어, 인천 검암동에서 30여명의 친구들이‘우동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다. (출처: 웹진 <지지봄봄> 19호,‘ 일상이 예술’인 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 김진선) (편집자주).
주9) 조한혜정,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한겨레, 2016.11.22.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