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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0호] 어느 대학원생의 고백

 

어느 대학원생의 고백

 

 

강보름 _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현재 내 상황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 가난한 대학원생.

어려운 집안형편에 대학도 아등바등 겨우 마쳤으면서 마음의 소리를 좇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했고, 돈 안 되는 인문학 중에서도 으뜸인 현대 문학을 전공한다. 이에 더해 연극으로 먹고 살고 싶다는 풍운의 꿈까지 안고 있다.

논문 학기임에도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는 불우한 신세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우스운 이유겠지만, 한 줄의 문장에 담긴 인생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들 때문이다.

26살이 되어 다시 읽은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속 문장들이다.

 

인텔리... 인텔리 중에도 아무런 기술 없이 대학 졸업 증서 한 장을 또는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텔리...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가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부르주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 상태가 되어 더 수요가 아니 되니 그들은 결국 꾐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99퍼센트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문학과지성사, 47

 

, 풍자의 쾌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답답해진다. 80여 년이 지나도 똑같다. 채만식이 1934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단편소설 속 시대상은 2017년의 상황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만치 꼭 닮아 있다.

매 주 토요일마다 뜨거워지는 광화문 광장을 바라보며 나는 도리어 자괴감을 느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잉여인간인 가난한 대학원생은 광장에 나갈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회를 위한 어떠한 생산적 노동에 기여함도 없으면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것은 자기 분열적 모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상에 홀로 서는 것이 두려워 소속감을 필요로 했던 내게, 대학원은 좋은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광장으로 가기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어쩌면 핑계 대기에 급급한 이 상황이, 예비연구자는커녕 제대로 된 비경제활동인구[각주:1] 몫도 해내지 못하는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드는 듯하다.

광장이냐, 연구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렇게 고민만 하는 사이 광장에는 다시 봄이 찾아 왔다. 더욱 더 커진 부채감을 안고, 나라는 한 인간의 쓸모를 고민하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논문을 붙들고 있다.

  1. 만 15세가 넘은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곧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거나, 전혀 일할 능력이 없어 노동공급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