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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0호]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_윤이나(책『미쓰윤의 알바일지』저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윤이나 _ 책『미쓰윤의 알바일지』저자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음악상을 수상한 아티스트 이랑이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온갖 논란이 펼쳐졌지만, 나는 그 논란들 보다는 이랑의 친구가 했다는 말이 계속 생각났다. , 명예, 재미중에 두 가지 이상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나도 그 기준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 없다. 명예? 역시 없다. 재미는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있는 편이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도 되나?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역시 이랑이 시상식 전에 SNS에 남긴 말을 곱씹게 되었다. “잡지 인터뷰나 촬영도 겉으로는 멋들어져보이나, 페이가 없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것은 정말 문제이다. 나는 잡지에 잘 나온 사진들만 남기고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도무지 남일 같지 않은 이랑의 수입만큼이나,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나는 첫 책을 냈다. 책 제목은 <미쓰윤의 알바일지>. 제목 덕분에천 개의 아르바이트를 거쳐야 정규직 된다는 얘기 아니냐등의 사소한 오해도 있었다. 물론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에 다녔던 20대 초반과 프리랜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이후의 생활, 그리고 호주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담은 책이다. 이 모든 일들을 정규직이 아닌 상태라는 의미로 알바라고 지칭한 것인데, 아르바이트 경험을 에세이로 쓴 책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책을 내자마자 꽤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었다. 대체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는 터라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는 경험은 낯설었지만 의외로 즐겁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일만 아니라면 그랬다. 일간 신문의 사진 기자들은 이를 보이며 활짝 웃는 표정을 정말 좋아한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덕분에 “14년 알바 인생, 비참한 적 한 순간도 없었다같은 헤드라인 아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진들이 커다랗게 실렸다. 그래서 이랑이 남긴 말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나는 신문에 억지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들만 남기고 굶어 죽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 이게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곤 하는데, 프리랜서는 직업군이 아니라 일의 형태다. 나의 경우 몇몇 기사에서는 비정규직이라고 호명되었지만, 사실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비정규직이나 계약직과는 거리가 멀다. 프리랜서란 이름 안의자유를 선택한 대신 불안을 같이 끌어안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의 자유는 출퇴근의 자유 정도일 뿐, 제대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보통의 직장인들에 비해 어렵다. 아주 단순한 예로, 나는 지금 이 글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세 시에 쓰고 있다. 주말이라니, 프리랜서에게 그런 건 없다고 봐도 좋다. 오히려 글을 청탁한 쪽이 월요일 오전에 작업물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말에 더 바빠지곤 한다.

그렇게 바쁘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느냐면, 당연히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취재를 포함하기도 하는 신문, 잡지의 원고 청탁을 받아 칼럼, 기사, 에세이 등을 쓰고 받는 원고료에, 아주 가끔 TV나 라디오에 출연할 때 받는 출연료 정도가 더해진 게 기본 수입이다. 여기에 비정기적인 단기 프로젝트가 들어온다. 영화제나 영화 잡지, 방송 쪽의 기획과 원고쓰기를 하며 작가, 기자, 편집장 등의 이름으로 일정 기간 동안 맡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현재는 비정기 페미니즘 굿즈 제작 프로젝트인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를 친구와 함께 꾸려가고 있고, 또 다른 지인들과 독립출판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얼마큼의 수익을 보장하느냐에 따라 한 달 수입이 결정되는데, 안타깝게도 수입이 보장되지 않거나, 얼마의 수입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팅과 회의는 필수적이다. 그러니까 11년 차 프리랜서인 윤이나는 남들이 보기에 자유롭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깜짝 놀랄 만큼 들쑥날쑥한 수입 속에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나는 경매에 부칠 트로피도 없단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의미가 있는 일이 돈과 명예, 재미를 두 개 이상 충족시키는 일이라면 크게 봤을 때 나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맞다. 심지어 재미 면에서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을 잘게 쪼개어 보고, 그 일들 사이의 연관성을 보면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나타난다. 책을 내는 일은 내게 아주 약간의 인세를 주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눈에 보이는 한 권의 책으로 묶이는 일은 내게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책을 낸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일들은 뚜렷하게 분리가 되지 않는다. 내 일의 어떤 부분은 돈이 되고, 어떤 부분은 명예가 되며, 또 어떤 부분은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 일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에게 다음 기회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내게는 그게 트로피고, 또 그 트로피를 팔아 서울 살이 한 달 월세를 내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실은 나는, 오늘도 누군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는 일들을 내가 찾은 재미와 의미 때문에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나중에 돈이 되면 물론 좋겠지만 당장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 언제든 나의 선택으로 시작하고 또 끝낼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일, 만약 언제고 내가 트렁크 안에 내 삶을 구겨 넣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때 털어낼 수 있는 일들을.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불안이 동반된다면, 나는 기꺼이 끌어안고 가겠다는 쪽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일의 형식을 택한 사람들에게도 사회적인 안전망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면 한다는 것. 이 안전망은 사회 보험의 확대일 수도 있고, 기본 소득일 수도 있다. 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무조건 안정적인 고용 형태를 원하지 않는다. 4대 보험과 정규직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일자리를 보장해 주어야겠지만, 불안을 견디면서 일하고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이런 나, 우리에게도 사람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는 테두리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 다른 이들이 뭐라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의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택하려고 할 때, 주저하다 포기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이렇게 살 수도 있겠네하면 그걸로 됐다고 대답했다.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이런 사례가 쌓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수록 타인의 삶의 방식에 세상의 기준을 가져다 대며 의미가 있고 없고를 말하는 무례한 일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뭐 하러 가방 끈이 길어야 하냐는 말도, 왜 때맞춰 취업하고 결혼하지 않느냐는 말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야기하다보니 왠지 모르게 유토피아처럼 느껴지지만,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런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모두들 각자의 의미를 찾아가기를. 그리고 사실 의미가 없으면 뭐 또 어떤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군가 왜 남들처럼 살지 않고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쏟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줄 생각이다. 한 명 정도는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겠어요? 돈을 많이 벌면 물론 좋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애써 번다 한 들 떼돈도 아니잖아요. 내가 어떤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라 해도 정리해고의 위험에서, 불투명한 미래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요? 심지어 사장도 아니잖아요. 국민연금 직원에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유의미한 소득은 아니네요라는 말을 듣는 개인사업자지만, 저는 무려 사장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