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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2호] 원우문화활동기고 (연혜원)

 

<효리네 민박>과 여성주의 예능의 미래

 

연혜원_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여성주의 예능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예능이라는 극 자체가 여성예능을 어떻게 실패시키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실패의 돌무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예능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남성의 이성애적 섹슈얼리티를 기준으로 순결하고 신비스러운 성녀와 욕망을 드러내고 도발적인 창녀, 못생기고 우스꽝스러운 악녀의 이미지 사이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다. 타자가 규정한 섹슈얼리티 속에서 하염없이 떠도는 사이 여성 출연자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는 희미해지고 여성 출연자들은 도돌이표처럼 남성의 투사체에 갇혀 버리고 말 뿐이다. 한국 예능에서 아름다운 여성 게스트는 늘 남성 출연자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지고, 못생긴 여성 코미디언은 언제나 좌절하길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여성 예능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 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KBS2<언니들의 슬램덩크>부터 EBS<까칠남녀>, On Style<뜨거운 사이다>, <바디 액츄얼리>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여성 예능을 표방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여성 예능이라는 포부를 밝힌 프로그램들의 가장 고전적인 오류는 출연자만 여성으로 채운 채 여성주의 예능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대표적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여성 출연자로 출연진을 메우고 난 뒤 그들에게 남성적인 시선이 반영된 캐릭터를 덧입히기를 반복한다. 여전히 캐릭터는 아름다운 여성과 못생기고 웃긴 여성으로 양분되어 있다. 양분된 캐릭터들은 때때로 의외성을 보여주며 웃음과 감동을 주지만 일시적인 의외성은 캐릭터를 온전히 전복 시키지는 못한 채 사그라져 버린다.

 

여성을 응시하는 여성주의 예능

 

<까칠남녀><뜨거운 사이다>는 최근 한국사회에 불 지펴진 페미니즘 담론을 토크쇼 포맷으로 옮겨오면서 여성예능에서 여성주의 예능으로 도약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과거 방송에서 감춰져왔던 여성의 진짜 경험와 욕망을 여성의 목소리로 드러내고, 남녀관계와 일상생활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을 보다 심도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분명 진일보했다. 그럼에도 여성주의 토크쇼는 여전히 여성이라는 범주를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이다. 과도기라는 표현은 아직 완성되지 못하고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다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범주를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범주 되어 있고, 왜 범주되었는지에 대한 집요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과도기를 거쳐낸 여성주의 예능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 예고편을 JTBC<효리네 민박>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효리네 민박>과 응시하지 않는 연습

 

<효리네 민박>이 가진 미덕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응시하지 않으면서 여성 주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지점에 있다. 이 같은 내러티브 방식은 역으로 여성 주체를 여성에서 벗어난 고유한 주체로 승격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아이유는 여자 연예인에게 뒤따라오는 흔한 수사들로 설명 당하지않는다. <효리네 민박>에서 편집과 자막은 이효리가 민낯인지 아닌지 궁금해 하지 않으며, 나영석의 수많은 예능들이 여배우들의 배우스러움에 집착하는 것과 같이 이효리와 아이유를 가수스러움에 가두는 실수를 범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효리네 민박>은 간편하게 가부장적인 규범에 기대어 극을 해석하지도 않는다. 이상순이 아무리 집안일을 잘 한다고 해서 이상순을 쉽사리 ○○주부라 부르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진보에는 제작진만큼이나 출연자들의 기여가 컸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결혼 생활과 여자 연예인에게 흔히 기대하는 역할극에서 탈피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이효리라는 개인의 수행적 역할은, <효리네 민박>에서 여성이라는 범주와 가부장적 상징틀을 해체하고, 출연자 각각의 고유한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예능이라는 장르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다소 경악스러운) 편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효리네 민박>은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사실 <효리네 민박> 이전까지 이효리 또한 여성 출연자의 전형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왔다. 그동안 이효리가 돋보였던 이유는 섹시한 여가수망가지는 여자라는 두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충돌하는 장면을 가장 매력적으로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는 이러한 전형성에서 탈피해 최초로 이효리라는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극의 성공이었다. <효리네 민박>은 예능 산업에서 남성의 섹슈얼리티 기준을 벗어난 여성 캐릭터의 가능성을 입증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효리네 민박>의 성공을 단순히 이효리 부부에 대한 대중들의 관음증과 이들 부부가 가진 예능감, 그리고 아이유의 스타성으로만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