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 10. 18. 11:01

정재원 기자 agnes1026@sogang.ac.kr

 

너희들은 다시 이 광장에 나오지 않길 바랐어.”

나는 지난겨울 광장에서 J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J와 나는 오래전부터 같이 공부를 하던 사이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 난해한 철학책을 읽어보겠다고 덤볐고, 책을 사이에 둔 우리는 책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고 오랫동안 하게 됐다. 우리는 서로 지난 과거사, 가정사 등을 길게 펼쳐놓았고, J가 그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한 것도 그 무렵이다. 내가 J로부터 전해 들은 그녀의 어머니는 과거 5.18 광주민주항쟁 때 그 중심인 전남대에서 가장 열심히, 선두에서 서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던 분이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계속 최전방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운동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50대 중반, 약간은 희끗한 머리에 웃음 자욱이 옅게 남은 얼굴의 그녀는 광장을 채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J,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과 J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우리는 광화문을 빼곡히 채운 인파를 겨우 헤치며 광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말을 꺼냈다. 본인도 대학 다닐 때 함께 책 읽으며 공부했던 친구들과 지금까지 가장 친하다는 말, 너희들은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 그래서 과거에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그렇게 열심히 싸웠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 1 | 201611월의 광화문 광장

너희들은 다시 이 광장에 나오지 않기 바랐어.”

그녀는 그녀 자신에 이어 자신의 자식들까지 불의와 싸우지 않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민주화 운동에 바쳤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이상한 생경함을 느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나에게 새로운 역사가 아니다. 이미 교과서를 통해, 수많은 책들을 통해, 그 시대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랫동안 접해온, 친숙할 수밖에 없는 역사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전해 듣는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이상하리만치 생경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는 내가 아닌데, 왜 유독 그날 그녀에게서 들은 그 과거는 그토록 새롭게 다가왔을까. 나는 이제까지 여성의 입으로 재현되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386 서울 명문대 남성들에 의해 쓰였고, 여전히 50대 남성들의 영역이다.

 

반쪽의 공감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활약은 눈부시다. 출간 7개월 만에 판매 부수 10만 부를 찍으며 상반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82년생 김지영>‘82년에 태어나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육아 우울증을 겪고 있는김지영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요즘을 살고 있는 대다수 여성의 이야기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선풍적 인기는 아마도 김지영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보는듯한 기시감을 느끼는 여성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연극으로 각색되기도 하고, 영화화가 진행 중이기도 하며, <SBS 스페셜>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세상의 절반 이야기편은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삶을 모았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모인 삶들 속에서 또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아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던 날, 나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우리 엄마처럼.

사진 2 |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 세상의 절반 이야기예고편 중

82년생 지영씨 중 한 명은 어린 남자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낳으며 하던 일을 잠시 그만뒀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시간 맞춰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는 회사에서부터 집까지 구두를 신고 전력 질주를 한다. 양손에는 서류와 노트북을 한 아름 안고,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을 때는 발을 구르며 시계를 확인한다. 62년생인 우리 엄마는 82년생 지영씨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기 자신도 아이들 키울 때, 뛰어다니는 습관이 생겼다면서, 그때 구두를 신고 뛰다 넘어져 생긴 오래된 상처들을 되짚는다. 62년생 우리 엄마와 82년생 지영씨 사이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사실이 슬펐다. 두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여성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아니 변화하긴 했는지 생각하니 조금은 아득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이 <82년생 김지영>에 반쪽짜리 공감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서툰 공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오래 생각했다. 여성주의 학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학생이든 아니든 젊은 여성들은 이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가장 대우받은 집단이다. 우리는 여성들을 급진화시키는 인생의 쓴맛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임금노동자가 되어 여성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알고, 결혼이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아이들을 키우며 혼자서 책임을 도맡고, 아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큰 짐으로 다가오는 노년의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현상을 지적한다. 나 역시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소설 속 지영이 임신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을 비꼬는 여대생의 모습이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는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반쪽짜리 공감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엄마라는 정체성을 겪어보지 못했으며 동시에 나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 엄마, 그리고 딸로 정체화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내 삶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공부하는 연구자로 정체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가의 엄마, 아내 혹은 딸

 

여성주의 학자 전희경은 그의 저서 <오빠는 필요 없다>에서 876월 민주항쟁 이후, 90년대 사회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한다. 전희경은 90학번에서 96학번, 열여섯 명의 여성 활동가를 심층 면접 방식으로 만나 사회운동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전희경은 책의 도입부에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사회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를 묻는데 그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수의 여성 활동가들이 그 이유를 재미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회에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전희경은 이러한 동기에 주목하여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의 의미를 짚어낸다. 전희경은 문승숙을 인용하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많은 시민이 집단적 열기가 넘치는 대규모 집회나 행진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전까지 노동자, 주부, 회사원, 학생이던 개인들이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집회에 참여하는 경험은 국가의 동원 대상에서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변화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들의 사회운동 참여도 해석할 수 있는데, 집회의 참여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사적인 장에 유폐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공적 주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 자신이 어머니, 주부, 딸이라는 사적 영역에 속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국가와 관계 맺는 시민이 된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주체성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운동 참여는 보다 다층적인 의미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전희경의 책에서 이어지듯, 여성들이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상대는 독재 정권, 혹은 비민주, 민족주의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그것들에 더해 가부장제와도 싸워야만 했다. 더군다나 가부장제는 독재정권과 다르게 선명한 을 상정할 수 없게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으로 하여금 의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진흙탕 싸움, 더 무겁고 어려운 싸움으로 이끌었다. 남성적, 가부장적 사회운동 영역 안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여성들의 인정욕구는 자신의 여성성을 본인 스스로 적극 부정하게 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자신이 다른 여성의 적이 되게 하기도 했다. 또한, 모두가 존경하는 남성 선배가 다른 의미에서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인권, 민주주의, 인간해방 등의 대의를 말하는 사회운동의 영역에 속해 도리어 가부장제의 질서에 의해 억압되어 대의와 자신의 삶 사이의 괴리를 겪어야만 했다. 여성이 주류 사회 운동 속에서 정치적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 남성 권력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아주 깊게 개입했고, 그 권력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부장제 사회운동의 구도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혁명가, 투사들의 상처를 안아주거나, 옥바라지를 해주는 어머니, 아내의 역할에 국한되었다. 여성들은 혁명가의 자리에 서기보다는, 혁명가의 아내, 혁명의 보조자 역할에 가둬졌다. 전희경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 분업은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별 분업은 공적 주체로서의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남성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비가시화된 노동으로서 보살핌과 가사노동이라는 여성적 노동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위계적 체제라는 것이다. 즉 여성의 노동은 남성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게 되며, 여성은 노동하면 할수록 평가 절하되는 구조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너라는 거울

 

전희경은 여성주의 문화연구나 방법론 연구에서 서사를 일련의 경험에 대한 선택과 배제를 통해 과거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구성적이며 힘의 구조라는 것을 밝혀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구성은 현재 힘의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따라서 과거는 정치적 관심에 따라 계속해서 다시 쓰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건 현재를 살았던 여성들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절반의 여성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은 최근 <영초언니>라는 자전적 에시이집을 발간했다. 서명숙은 대학 시절 함께 자취하던 천영초를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다고 회고한다. 서명숙에 따르면 천영초는 1970년대 고려대 운동권의 상징적 인물이며, 고려대 역사상 가장 큰 집회를 이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가장 앞장선 인물이고, 여성들의 학습운동조직을 이끈 인물이다. 서명숙은 지금 많은 남성 정치인들이 소위 운동권 팔이를 하며 먹고 살지만, 영초언니는 완벽하게 잊혔다는 것이 슬퍼 영초언니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한다.

사진 3 | 허정숙·주세죽·고명자(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영초언니의 시간에서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면, 조선희 전 씨네 21 편집장이 최근 출간한 소설 <세 여자>의 주세숙, 허정숙, 고명자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세 여자>는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세 여자의 삶을 다룬다. 주세숙은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이었고, 허정숙은 나중에 북한 정권의 사법상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고명자는 박헌영의 동지인 공산주의 활동가 김단야의 연인이었다. 소설 <세 여자>는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을 교차시켜, 세 여자가 역사를 통과하는 과정 그리고 역사 속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희는 1925년 고명자, 주세숙, 허정숙 세 여자가 단발머리를 하고 청계천으로 짐작되는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아마도 조선희는 단발머리에 맨발로 바로 선 신여성들을 보며 그들을 역사 속에서 복원해 당당히 위치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이 사진은 책 표지로 사용되었다.

역사 속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한 여성들의 삶을 복원한 <영초언니>, <세 여자>와 달리 여성주의학자 김은하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자괴감에 사로잡힌 활동가들이 자전적으로 적어낸 후일담 소설을 분석했다. 특히 김은하는 후일담 소설이 주로 남성 작가의 서사로 구성되었음을 지적하며,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여성 작가들의 자기 고백을 분석하고 그 존재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김은하에 따르면 후일담 소설은 80년대 혁명 세대들의 치욕적 현존에 관한 자기 고백적 보고서로서, 90년대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와 수적으로도 상당할 뿐 아니라, 장르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일정한 관습을 공유한다. 386세대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면, 김영하, 김영현, 김소진 등 남성 작가들이 주로 언급되는데, 이는 386세대의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이 청년-남성 지식인 주도의 변혁운동으로 기억되어 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은하는 여성 386세대가 자전적으로 기록한 후일담 소설은 혁명이 좌절된 뒤 비로소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별에 눈뜬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소환의 형식이 되면서 성별화된 기억의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 여성 386 세대는 고백적, 체험적인 젠더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지난 날의 자신을 반추하며 현재의 좌절한 자기를 응시하는 후일담의 글쓰기가 여성의 젠더 체험과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잊혀졌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망각’, 바꿔 말하면 선택적 기억은 여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여성들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세상의 일과 의무의 절반을 수행했고, 역사에서 능동적인 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인류 발전 과정에서 단지 주변적인공헌만을 한 존재들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남성 역사가들이 가부장적 가치들을 근거로 해서 내린 선택적 기억입니다. 여성들은 항상 역사 속에서 살았고, 역사 속에서 활동했으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여성사는 잃어버린 절반을 재구성하고 여성들을 능동적인 동인으로 사건의 중심부에 위치시키는 임무를 떠맡았습니다.

거다 러너(Gerda Lerner), <왜 여성사인가>, 149

거다 러너는 뒤이어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지워진 소수자들이 여성 뿐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역사에서 지워진 소수자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적었다. 왜 여성사인가를 묻는 질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세상의 절반을 복원하는 일이며 동시에 권력에 의해 기억하기를 선택받지 못한 소수자들의 역사 역시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겨울 <문라이트>라는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 남을 해프닝 이후 돌아간 상이기에, 그 해프닝이 수상 소감보다 더 주목 받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흑인이면서 성소수자인 주인공 샤이론의 삶을 고요하게 따라간 영화 <문라이트>의 감독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비추는 거울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 우리는 당신을 우리를 더 많이 보여지도록 할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당신을 위한 거에요.”

내가 나 자신으로 정체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하다. 미디어든 역사에서든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보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기에 한 명의 시민이 되고 싶은 여성들에게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의 분기점에서 한 명의 시민, 한 명의 혁명가 자리에 섰던 여성의 삶은 그들에게 거울이 되기도,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62년생 우리 엄마와 82년생 지영씨 사이에 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두 세대 사이에 슬픈 공감대 위에 문제의식이 생겨나고, 그 공감의 고리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끊기 위해 우리 사회가, 우리 모두가 공들여 노력해야 한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상상력을 싹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궁금하고, 내가 속한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상을 공부하고 싶고, 또 그 속에서 내 두 발로 설 자리를 찾는 나는, 나의 거울을 찾아 켜켜이 먼지 덮인 역사 속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여성들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나 이전의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은 작업을 오랜 시간 해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들을 거울삼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2017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런 나에게 공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들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사방에 즐비했으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