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42호] 소통이 힘든가요, 거울을 보세요. (경희대 임성민 교수)

소통이 힘든가요. 거울을 보세요.

 

임성민_ <지식인의 옷장> 저자, 경희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타타타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1992년 가수 김국환이 발매한 타타타란 노래의 가사이다. 산스크리트어인 타타타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걸 의미한 게 아닌데.” 자신의 의도가 전달되지 못해서 마음 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없다. 느낌을 통해 추론할 뿐이다. 말이나 표정, 행동 등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예측하고 이러한 예측으로 서로를 대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법에 항상 화가 나 있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에 문제가 있을 확률은 1에 가깝다.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는 방법의 시작은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직접적이며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패션이다. 보이는 것은 쉽고 힘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 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패션이란 단어에 럭셔리한 브랜드들만 생각난다면 패션의 부분을 패션 전체로 보는 모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패션은 자신을 알고 표현하는 것으로 애티튜드까지를 포함한다. 청순함을 드러내기 위해 흘러내리는 긴 머리를 조신하게 귀 뒤에 꽂는 것이 패션이며 터프함을 강조하기 위해 겉옷을 벗어 한쪽 어깨에 올리고 당당하게 걷는 것도 패션이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초창기에 패션관련 수업을 개설할 때 수업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 패션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기 때문에 수업 제목을 패션과 나로 지었다. 이 수업에는 학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오고 다른 학생들은 그 학생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하는 패션 크리틱시간이 있다.

처음에는 앞에 나온 학생이나 앉아 있는 학생들 양쪽이 어색해하고 패션에 대해 말을 해주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주저했지만, 서로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니 서로 말해주라고 독려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패션에 대한 지적은 활기를 띤다. 예를 들어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에게 안경대신 콘택트렌즈를 권하기도 하고 검정머리를 옅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가볍게 파마를 하는 것도 어울릴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에게 백팩 대신 크로스 백을 추천하기도 한다. 작은 패션 아이템이 착용자의 예상보다 더 크게 타인들의 눈에 크게 띄기도 한다. 줄무늬 양말하나로 교실에서 패셔니스타로 등극되는 학생도 있었다.

 

패션 크리틱을 하다보면 교실 안이 떠들썩해지면서 학생들의 장난기가 발동되기도 한다. 유명인 누구를 닮았다느니 혹은 쉽게 할 수 없는 독특하고 과감한 스타일을 언급하며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오는 차례였다. 살집이 있는 몸매의 덩치가 큰 여학생이었는데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우렁찼다. 뱅헤어의 앞머리와 레이스가 달린 옅은 핑크색 원피스에 발목까지 오는 흰색 양말, 귀여운 핸드백을 맨 그녀는 일본의 하라주쿠에서 볼 법한 일본 스타일의 여학생이었다. 패션과 더불어 목소리와 말투의 애티튜드는 그녀가 독특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이게 했다. 학생들은 어울리는 패션스타일을 말해주면서 다소 장난기 있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여학생은 재미있게 받아넘겼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는 도중 그녀의 어두워진 표정이 보였다. 수업용 ppt를 보기 위해 조명을 어둡게 했지만 스크린의 빛이 학생들을 비추면서 교단에 있는 나에게는 앞을 향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향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했지만 내심 기분이 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간에 그녀가 원하는 이미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이미지를 형용사나 명사 등 간략한 단어 20개 정도로 나타내고 컬러와 이미지를 조합하는 것이다. 그녀가 가장 먼저 썼던 단어는 여성스러운이었다. 유명인으로는 여배우 손예진을 기재했고 컬러들은 분홍색과 화이트, 노란색 등 파스텔 풍의 연한 컬러들이었다. 조합한 이미지를 보니 그 여학생이 바라는 이미지는 그녀가 좋아하리라 예상했던 독특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아닌 여성스러운 이미지였다. 게다가 자신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이미지도 비슷하다고 기재했다. 그녀가 스타일링한 패션 아이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레이스가 달린 옅은 핑크색 원피스는 과한 스타일은 아닌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다소 덩치가 큰 그녀가 사용하다 보니 특징이 부각되어 나온 것이었다.

타인들은 그녀의 패션을 통해 그녀가 자신들이 예상한 성격이라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대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 순간을 참아야 했고 마음 상해했다. 상대방은 그녀가 싫어서 했던 행동이 아니다. 사실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호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럴 경우 패션 크리틱 시간에 지적이 많은 것이 아니라 거의 없다. , 상대방은 악의도 잘못도 없다. 사실 피해도 없다.

이것저것 이야기 해니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점이 많았다. 자신의 외모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패션 스타일링을 한다면 그녀가 바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네이버에 검색해서 그에 따른 패션 아이템인 하늘거리는 레이스’, ‘원피스’, ‘핑크색 플랫슈즈’, ‘작은 핸드백등 이런 식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녀의 장점이 부각되고 바라는 방향으로 표출되면서 타인과의 생활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학생들에게 레포트 표지에 자신이 예쁘게 나온 사진을 붙여서 내라고 한 적이 있다. 대부분 위에서 45도 정도의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뿌옇게 나온 사진이었다. 위에서 찍은 사진이어서 치켜떠진 눈은 실제보다 동그랗고 컸으며 턱은 갸름하게 나왔으며 뿌옇다 보니 피부는 하얗고 모난 곳 없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각도로 뿌옇게 처리한 자신의 사진이 왜 이쁘게 보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처럼 나오지 않아서 마음에 든단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오면 그 사진은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색하고 불편한 사진이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색한 모습을 타인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자신을 알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꾸미라는 것은 단순히 멋을 내라는 것이 아니다. 가끔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좋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자신이 바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알고 이를 표현해야 한다.

 

 

가식과 컨셉

 

거짓으로 꾸민다는 의미의 가식(假飾)과 보여짐의 의도적인 컨셉을 동일시하거나 비슷하다고 오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식이 무엇을 숨기려하는 행위라면, 컨셉은 드러냄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상반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에서 컨셉이란 단어는 여타의 다른 단어들보다 특히 많이 사용된다. 컨셉이 무엇이냐란 질문은 무엇을 의도하고 나타냈냐는 질문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패션에서 내추럴이란 단어를 사용한 내추럴 컨셉은 내추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진한 화장을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하고 강렬한 컬러의 립스틱이 아닌 립글로스를 바르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포니테일로 묶는다. 사실 내추럴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다 깨서 부스스한 모습에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입은 모습이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드러나지 않으며 게다가 매력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컨셉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타인이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의도하는지의 방향을 타인이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2000년대 이후의 패션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은 스티브잡스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자신을 드러내는 컨셉을 고찰했다. 그가 즐겨 입는 일본 패션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색 터틀넥은 수십 벌을 입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와 크기를 찾은 것이다. 이 검정색 터틀넥과 함께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스니커즈는 대중에게 그를 나타내는 컨셉이었다. 그의 패션은 그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대중은 그의 패션을 통해 그를 이해하고 소통했다. 편안하면서 전문적이며 또한 적극적인 스티브 잡스를 드러냈고, 이는 애플사의 수장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며 결과적으로 회사 전체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로 인해 애플사의 이미지는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뿐만 아니라 터틀넥과 청바지, 스니커즈의 열정적이며 전문적인 스티브잡스의 이미지가 함께 하면서 회사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것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시작이다.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 필요는 없다. 시대는 변화하며 자신 또한 변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이미 한참 멀어져 있던 나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방법으로 자신을 대하면서 타인에게 드러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에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정 유명인의 패션 스타일은 줄줄 나열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고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없다면, 자신을 매력적으로 상대방과 소통하고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그 어떤 게으름보다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른 채 나를 알면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무조 패한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란 말이 나온다. 나를 알면 적어도 피해는 안 본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면 자신에게 좋은 향이 난다는 것을 알아서 자신감이 올라간다. 이 자신감의 애티튜드는 상대방에게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나를 알고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취한 자! 천하무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