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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3호] 무한한 열정을 발산한 두 사람의 이야기_최중휘

무한한 열정을 발산한 두 사람의 이야기

 

일반대학원 심리학과 석사과정 _ 최중휘

 

 

이번 글을 통해, 두 개의 소설책을 추천하고 싶다. ‘달과 6펜스그리고 용의자 X의 헌신이다. 두 책의 장르는 매우 다르지만 헌신적인 삶을 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젊을 때 뭔가에 몰입해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만 가는 것은 나 자신과 주변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한 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그래서 독자에게 짜릿함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대단한 성과를 이뤘지만, 그에 따른 희생은 만만치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싶은 꿈이 있을 것이다. 뭔가에 미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각 이야기의 세부 감상은 아래와 같다.

완전한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빚어낸 비극 -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고 게이고 >

뭔가 하나에 몰두해서 산다는 것은 꼭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수학이라는 세계에 몰두했고, 그것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건 그의 삶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주인공 남자는 그에게 수학만 남은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 뻔 했지만, 그 순간 옆집 사람에게 사랑에 빠져서 삶을 이어가게 된다. 그 후 그는 그 천재적인 머리를 이용해서 그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고, 아름답게 사라지고 싶었지만 모든 것엔 변수가 있었다. 수학이라는 완벽한 세상이 사람과 만날 때 어떻게 예상을 벗어나는지, 이 책에서 보여준다.

일이 삶의 수단이라면 삶의 목적은 사랑이 아닐까.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사랑에 완벽함이라는 게 있을까? 흔히 아무런 조건 없이 존재만으로도 사랑하는 것을 완전한 사랑이라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까지 허락할 위험이 있다. 영화 '마더'에서 엄마는 아들의 범죄에 대한 목격자를 발견하자 본능적으로 그를 해치고 만다. 그렇게 보면 이상적인 사랑은 한 사람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존재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그 수학자는,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이런 헌신적인 희생이 나온다. 비록 그녀의 선택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끝까지 헌신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경의를 표했다. 헌신적인 사랑이라,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걸까. 이 소설에서 수학 선생은 삶을 살아갈 이유도, 그만둘 이유도 없어서 자살을 택한다. 어떻게 보면 옆집 여자는 그 이후부터 그가 살아갈 목적이 된 것이다.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충성의 맹세. 언뜻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결국 감정적이고 약한 모습으로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사랑에 대한 욕망보다는, 순간순간 행복하는 데에 집중하는 게 더 현명한 태도인 것 같다. 하루하루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태도가 아닐까. 이런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그중에 하나다.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결실 -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하루아침에 지금까지 자신이 이뤄왔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림만을 향해 달려가는 스트릭랜드(주인공). 그 과정 중에 한 치의 흔들림과 오차도 없이 올곧은 그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는 강렬한 열정이 오히려 그를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 사람, 죽음 등 세속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해탈하고 그의 온 정신은 오직 하나, 그림뿐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스트릭랜드와 같은 삶을 꿈꾸곤 한다. 다른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만 열중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현실이라는 장막을 걷어내면 좀 더 명확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뭔가를 직업으로써 고를 때 그 직업 자체에 대한 선호뿐만 아니라 그 직업의 수입, 전망, 사회적 위치, 그 직업을 갖기 위한 노력 등을 고려한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따져보면 결국 다 비슷비슷해 보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선 이런 현실적인 조건이 모두 동일 선상에 있다고 생각했을 때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된다.

스트릭랜드는 그런 우리를 대리만족 시켜주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동시에 누구나 스트릭랜드처럼 잃어버린 꿈을 향해 달려나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꿈은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만 하는 수많은 젊은이를 비웃듯 스트릭랜드는 그런 현실을 빗겨나간다. 현실은 이미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그의 사후에나 인정받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가 직접 밝힌다. “나는 그려야 해요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102p(책속에서).

우리의 열정에 위와 같은 조력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