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4.30 00:19

협업을 통한 시각예술과 VR의 융합

-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 -

 

Tiffany Lee (이승연) _ 시각예술가, 국민대 미술학과 회화전공 박사과정

 

연구자이자 작가인 본인은 2017년부터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이후 이 작업을 선보이기 위한 개인전을 준비하며 협업 연구를 진행하였다. 오늘날 작가는 전통적인 작가들처럼 홀로 수행하듯 진행하는 작업방식을 넘어 다양한 장르 및 매체와 소통하며 작품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글은 본인 작업의 주요 개념과 함께 VR 분야와의 협업 연구를 통해 제작된 <VR - Liquid Nostalgia 5>에 대해 설명하며, 장르 간 융합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 작업의 주요 개념

본인은 2012년부터 일상적 기호를 재전유re-appropriation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일상적 기호들을 퍼스의 기호학에 따라 도상, 지표, 상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이를 기존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포스트 콜로니얼 문예 연구에서 중요한 문화비평 용어 중 하나인 재전유는 어떤 기호가 놓여 있는 맥락을 변경함으로써 그 기호를 다른 기호로 작용하게 하거나 다른 의미로 바뀌게 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는 점차 문화연구 전반으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본인은 재전유 개념을 시각예술에서의 방법론으로 적용하여 사유 확장을 위한 시공간의 틈을 생성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인 작업에서 ‘기호의 재전유’ 방식은 이미 고정된 의미작용이 이뤄지고 있는 기호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미가 가진 문맥 또는 맥락을 변화시켜 또 다른 의미의 관점을 제시하여 사유를 확장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최종적으로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의 질문처럼 “물신화 현상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완전한 자유와 해방이 가능한가?”라는 광범위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Tiffany Lee <Liquid Nostalgia 1> digital drawing, 2018

 

Tiffany Lee <Liquid Nostalgia 5> digital drawing, 2018

 

 

■ 리퀴드 노스탤지어 시리즈 Liquid Nostalgia Series

2018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리퀴드 노스탤지어> 시리즈 역시 기호(사진 지표)를 재전유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업이다. 이 시리즈는 구글 지도Google Maps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 서비스가 제공하는 거리 사진에서 출발하였다. 2005년에 제작된 구글 지도는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위치를 파악하는 데 있어 이미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현대인에게 일상적 미디어가 된 셈이다. 일상적 미디어로서의 구글 스트리트 뷰는 실용, 추억, 호기심 등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인은 구글 스트리트 뷰가 제공하는 거리 풍경들을 사진 지표론에 따라 하나의 지표기호로 보고, 바르트의 사진론을 적용하여 이 사진들이 불러오는 감수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구글 스트리트 뷰는 360도 카메라를 사용하여 실제 땅에 선 사람이 건물을 보는 각도로 거리를 촬영한 후, 이 사진들의 재조합을 통해 3D처럼 재현한다. 사용자는 이러한 디스플레이 시스템 안에서 방향 버튼의 클릭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세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거리는 명백히 현재의 거리가 아닌, 과거 어느 시점에 찍힌 모습이다. 실제로 현재 그 거리의 풍경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의 모습들로 때로는 조악하게 조립된 이 거리에서 본인은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이야기한 사진의 우울 그리고 밋밋한 죽음을 느꼈다. 이는 이 지도에 사용된 사진들이 하나의 지표기호로서 그가 말한 사진의 노에마noema “그것은-존재-했음”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지도 시스템의 거리 위에서 사용자는 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실은 2D인 사진의 조합이므로 그곳에는 어떠한 실제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지도의 거리에 “비현대적인(비시사적인) 수수께끼 같은 지점, 이상한 정지, 정지의 본질 자체 같은” 것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감정은 그 안을 돌아다니는 본인에게 노스탤지어로 다가왔다.

이후 스트리트뷰가 제공한 거리풍경들 위에 아이패드iPad와 애플팬슬Apple Pencil을 사용하여 디지털 드로잉 연작을 제작하였다. 디지털 드로잉 풍경은 구글 스트리트 뷰(기호)를 재전유하는 과정에서의 형태 왜곡, 색상 왜곡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보다 선명한 색 표현을 위해 디지털 드로잉을 RGB 방식으로 제작하고, 색감의 생생한 재현을 위해 모니터, 디지털 액자, TV, 프로젝터 등의 디스플레이 매체들을 사용하여 설치하였다. 이러한 과정으로 실제 명백히 ‘존재했었던’ 장소들은 그 본래의 지시대상과 목적성을 잃고 작가의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재전유된 공간에서 ‘일상적 미디어(구글 스트리트 뷰)는 우리가 현존하는 세계에 대해 얼마만큼 어떻게 진실한가?’라는 의심쩍은 물음을 던진다.

 

<VR - Liquid Nostalgia 5> 협업연구 과정

 

Tiffany Lee, <VR - Liquid Nostalgia 5>, VR 녹화 영상 캡처, 2018

 

 

■ 디지털 드로잉을 가상현실로 :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는 2D로 제작된 디지털 드로잉 <Liquid Nostalgia 5>을 서강대학교 아트&테크놀로지학과 박시은 연구원과 함께 3D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로 구현한 작업이다. 정지된 이미지가 보다 직접적인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각예술 작가와 VR 테크놀로지 연구원이 협업한 것이다. 이 작업은 2018년 12월 후쿠오카 art space tetra에서 열린 전시 <Tiffany Lee Solo Show - Liquid Nostalgia>에서 녹화된 영상의 형태로 전시되었다.

이 작업의 특징은 부동의 디지털 이미지와는 다르게 감상자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감상자들은 기존의 회화적 감상법처럼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HMD(head mounted display)를 착용한 채 디바이스Device를 작동하여 보다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가상현실에 단순히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작으로 움직임을 가하며 화면에 구현된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장비를 착용하고 작동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사물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때 공간 안의 몇몇 사물들은 센서에 의해 소리나 빛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면 공간의 가운데에 위치한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가까이 다가가면 센서등이 켜지는 것처럼 조명이 켜지며, 왼편에 위치한 나무 근처로 가면 나무 속에 숨어있던 까마귀가 놀란 듯 ‘까악까악’ 소리가 들린다. 또한 자동차 근처로 다가가면 비켜서라는 듯이 요란한 경음기 소리가 울린다. 이러한 반응 장치들은 감상자의 감각들을 다각도로 자극하며, 공간적-시간적 체험을 하게 한다.

이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2D의 픽셀 풍경을 다시 3D로 만드는 과정에서 풍경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마치 종이처럼 납작하게 배치하였다는 것이다. 감상자는 평면에서 오려낸 납작한 사물들이 배치된 풍경 안을 돌아다닌다. 기본적으로 가상현실(VR)은 체험자의 몰입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3D 사물들을 배치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드로잉의 특징을 최대한 유지하며 사물들을 2D 그대로 배치해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을 준다. 납작한 사물들을 통해 체험자들은 실제 공간이 아님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으며, 재구성되고 조작된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체험한다. 기존의 VR이 3D로 재현하며 실제 세계라고 “믿게끔 하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가상공간임을 전제로 두고 2D와 3D 사이의 공간을 제시한다. 이런 특수한 공간감은 디지털 드로잉이라는 평면적 회화 매체와 마땅히 3D로 재현되어야 할 VR 매체의 혼용을 통해 각각의 매체가 가진 고유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그 영역을 확장한다.

또한 이 작업은 미디어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보다 친근한 미술로 다가갈 수 있다. VR이 기존에 지닌 게임적인 즐거움을 주면서 동시에 시각예술 작품에 대한 직접적 감상이 이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HMD 착용 여부에 따라 감상자들은 현실과 상상 풍경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눈에 착용하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고 가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실재와 환영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게임적인 즐거움을 통한 재전유된 풍경의 직접 체험은 이러한 사고 과정으로 유도함으로써 구글 스트리트 뷰(미디어)가 제공하는 풍경 사진의 지시대상과 목적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해보기를 권유한다.

작품 <VR - Liquid Nostalgia 5>는 게임과 교육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응용된 VR을 본인의 디지털 드로잉과 접목해 시각 예술 분야에서의 새로운 감상 경험으로 제시해보려는 협업 연구였다. 시각예술은 오랜 역사 동안 그리고 최근에는 더욱이 기술과 융합해왔다. 키네틱 아트, 비디오 아트, 뉴미디어 아트 등은 이미 미술사에서 하나의 견고한 장르가 되었으며, 동시대 미술에서는 최신기술을 적용한 작품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융합은 각각의 매체를 재해석하며 그 고유의 영역을 확장 시켜나간다. 본인 역시 최근 주목받는 VR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의 평면과 설치 형식들을 넘어 보다 확장된 예술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디지털 회화와 VR이 융합된 이 작업은 성찰적 기능과 상상적 즐거움이 공존하는 효과적 실험이었다. 앞으로도 협업 연구를 지속해가며 작업을 통해 동시대 사회와 삶에 대한 보다 넓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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