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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48호] 자살 보도의 문제점을 꼬집다_한창현

자살 보도의 문제점을 꼬집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한창현 박사 인터뷰

 

자살에 대한 보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논문 소개

 

방송 뉴스 자살 보도 시 미화법 사용과 배경 설명이 대학생의 자살 관련 인식에 미치는 영향”

-한창현(서강대 박사과정 수료), 유현재(서강대 교수), 정휘관(식품의약품안전처), 한택수(국민건강보험공단), 서영지(University of Georgia 박사과정)-

 

2018년 엔자임 학술상 수상

 

 

인터뷰 및 편집 박시은, 전건웅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엔자임 학술상이란 어떤 상인가요?

 

한창현 박사(이하 한)> 엔자임이란 회사는 PR 회사인데 헬스 커뮤니케이션 관련 후원을 많이 해요. 엔자임 학술상은 엔자임 회사에서 헬스 커뮤니케이션 학회 소속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든 거고 1년에 한 번, 두 명씩 연말에 시상하고 있습니다.

 

서강> 이번에 수상하신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 방송 뉴스에서 자살을 보도할 때 이런이런 내용은 다루지 말라고 하는 지침이 있어요. 그 지침을 방송국에서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을 잘 못 해요. ‘어떠한 장면을 내보내면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면 내보내지 않을 텐데…’ 라는 취지죠. 방송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라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이러한 악영향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예요.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권고기준을 잘 지켜야 이러한 악영향을 막을 수 있다”라는 연구죠.

 

서강> 연구하실 때 데이터는 어떻게 모으시고,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셨나요?

 

한> 실제로 자살 장면을 묘사하는 방송뉴스의 앵커 중,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지킨 앵커와 동일한 기준에서 자살 보도 지침을 지키지 않은 앵커의 뉴스를 제작해서, ‘권고 기준을 지킨 사람과 지키지 않은 사람의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서로 어떠한 차이가 발생하는가?’ 집단 간 비교 연구를 한 거죠.

 

서강> 실제 뉴스가 아닌 실험 연구를 하신 거네요?

 

한> 그런데 그 앵커는 실제 앵커, 기존에 다른 연구들은 글로 읽거나 하는 방식이었거든요. 그런 게 아니라 실제 뉴스 방송과 똑같은 앵커를 써서 똑같은 방송을 만들었어요.

 

서강> 실제 앵커를 어떻게 섭외 하신 거예요?

 

한> EBS와 협의를 해서 EBS 앵커가 EBS에서 촬영을 하고, 대신에 그 내용을 저희가 다 만들어줬죠.

 

서강> 이해를 돕기 위해, 모방 자살이란 무엇이고, 자살 보도의 미화법의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한>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런 거예요. 미화법이란 것이 아름답게 꾸민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서 동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그럴 수 있겠다’라고 심정적으로 공감을 갖게 하는 것이 미화법에 가깝거든요. 예를 들면, “오늘 새벽 두 시경 서울에 사는 40세 김 모 씨가 다섯 살 세 살 난 두 딸에게 극약을 먹여 살해한 후, 자신도 같은 약을 마셔 숨졌습니다. 이들은 약을 마신 직후 친척들에 의해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병원에 도착해 숨졌습니다.” 이렇게 팩트만 전달해도 되는데, “가장 김 모 씨가 사업실패로 인해 아내가 집을 나가자 딸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동반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거죠. 동반 자살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미화법인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이와 함께 자살을 시도했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정확히 팩트대로 이야기하자면 이건 부모가 아이를 죽인 거잖아요. 부모가 아이를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 한 것인데, 일종의 이게(동반 자살로 표현) 자연스러운 묘사처럼 보이지만 많은 것을 무마하는 거죠. ‘부모가 혼자 죽으면 아이도 혼자 남게 되고, 그 아이는 어떻게…’ 처럼 사람들에게 공감을 만들고, 이렇게 팩트만 전달했을 때와 미화법을 사용했을 때 사람들의 생각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거죠.

 

서강> 그러한 미화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많이 사용하는 편인가요?

          

한> 그렇죠. 우리나라는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저희가 지적했던 부분은 이거예요. 미화법을 사용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동반 자살이 미화법이라는 얘기는 안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이 미화법이기 때문에 쓰지 말라고 해요. 그러니깐 “규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미화법을 사용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앵커들이 동반 자살이 미화법이라는 것을 인지 못 한다는 거죠. 이런 표현들 자체가 미화법이라는 것을 첫 번째 보여주는 거고, 그리고 실제로 이런 표현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서강> 자살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도 자살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한> 자살에 대한 배경설명 자체가 어느 식으로든 간에 들어가 버리면 모방 자살에는 트리거(trigger) 효과라는 게 있어서, 이런 배경이 설명되면 그것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도 자살로 이 고통을 마감해야겠구나 하는 근거가 되어 버리게 돼요. 지금은 많이 줄었는데, 많은 경우 기자들이 가정불화라든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쭉 설명을 하는 것이 기자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꽃(핵심)은 그거예요. 그렇게 설명해주는 거(배경설명) 자체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주는 거는 맞아요. 그런데, 자살 고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배경설명 자체가 자살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거죠. 배경설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자살에 대한 설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그 설명으로 인해서 자살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사람들이 자살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서강> 실제로 모방 자살이 자살 보도로 인해서 증감이 많은 편인가요?

 

한> 앞으로 이 부분이 추가적으로 발전시켜야할 부분인데, ‘실제로 자살로 이어지는가?’ 는 검증할 방법이 없어요. 이론적인 부분에서 놓고 봤을 때, 모방 자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베르테르 효과라고 해서 ‘(자살이) 소설에서 묘사됐을 때 유사한 형태로 자살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유사한 자살이 일어난다고 해서 배경설명 자체가 자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는지까지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을 수 있죠.

 

KBS가 故성재기 씨의 자살 퍼포먼스를 중계하는 장면. 대 부분의 미디어가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트위터 사용자(@ve****) 화면 캡처

 

서강> 그럼 이번 실험은 어떻게 설계되었나요?

 

한> 변인은 배경설명이 있고 없고 미화법의 사용이 있고 없고, 미화법의 사용은 동반 자살의 표현을 썼을 때와 ‘동반 자살’ 대신에 ‘살해 후 자살’이라고 썼을 때 둘 사이가 차이가 있는지. 배경설명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총 네 가지의 그룹으로 두 가지를 본 거예요.

 

서강> 실험의 결과는 어땠나요?

 

한> 결과는 ‘동반 자살이라고 표현된 방송을 본 사람들이 살해 후 자살이라는 방송을 본 사람들에 비해서 자살자들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다음에 ‘자살자에 대한 인식, 자살 행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방송을 보기 전에 자살에 대한 좋다 나쁘다는 인식이 있을 거 아니에요. 영상을 보여주고 난 뒤의 다시 조사했을 때 인식을 미화법이나 배경설명이 들어간 경우, 자살에 대한 태도가 나쁘다는 생각이 줄어든다는 거죠. 인식론적인 영향을 미친다. 추론을 해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변한다고 봤을 때, 자살 고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은 더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서강> 이러한 결과가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가요?

 

한> 자살에 대한 보도를 할 때 미화법과 배경 설명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봐라. 미화법과 배경설명을 설명하면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든다. 그러니 모방 자살의 위험이 늘어난다.” 보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언론에 말할 수 있죠.

 

서강> 자살 보도에 왜 미화법과 배경설명이 많을까요?

 

한> 이러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식을 못 하는 거야. 공부하고 일찍 자야 되는걸 알면서 안되듯이, 미화법을 쓰면 안 되고 배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걸 기자들도 알아요. 그런데 실제로 쓸 때 무의식적으로 쓰게 되는 거예요.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동기를 붙이는 자체가 미화법인 줄을 모르는 거죠. 어떠한 심리적인 스트레스와 상황에 의해서 자살에 이르게 됐다는 것을 보통 팩트로 보지만,. 헬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팩트가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 의해서 자살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미화법이거든요. ‘자살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쓰는 것이 미화법이 아니라,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자체가 미화법이라는 거죠.

 

서강>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미화법에 대한 관점이 기자들의 의무와 부딪히지 않을까요?

          

한> 자살에 대한 보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자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기자의 의무일 수 있지만,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 자살의 위기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일 수 있어요. 장애인들을 배려하고, 자살의 위험에 놓여있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자살에 대한 정보로 인해 자살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할 수 없겠냐는 거죠.

 

자살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살의 보도라는 자체가 팩트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안 하잖아. “누가 투신했다.”라고만 이야기하면 되는데 굳이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냐는 거지, 예를 들어서 ‘학생들에 의해서 놀림을 받던 사람이 투신했다’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팩트로밖에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아이들에 의해서 놀림을 받던 사람에게는 놀렸던 아이가 투신으로 인해서 처벌을 받으면 이게 하나의 수단이 되는 거예요. ‘아, 내가 그 아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구나!’라는 방법이 되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왕따를 받고 놀림을 받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아이들을 돌보아주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들을 돌봐주는 데 있어서, 놀림으로 인한 투신과 같은 보도는 이 아이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복수의 방법을 알려주는 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서강> 일상 속에서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에게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한> 놀림을 받던 아이가 투신해서 자살한 것은 팩트잖아요. 기자들에게는 이게 자살에 대한 미화라고 생각 못 하는 거예요. 기자들만 뭐라 할 수 없어. 정말 자살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이 더 좋은 방법일까 생각해봐야 해요. 노회찬 씨의 자살을 생각해봤을 때, 이게 가십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잖아요. ‘정치적인 도덕성에 의해서 흠결이 나자 자살하였다.’라고 보도했을 때,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주장함.’ 이런 식으로 간다고요. 문제는 딸려오는(부차적인) 방식인데, 죽음으로써 더이상 노회찬씨의 실제 도덕성에 대한 문제는 왈가왈부하지 않게 되는 거야. 문제 해결 방식을 제시하게 되는 거죠.

 

강예원씨 스튜디오 실장도 그냥 자살해버리잖아요. 나는 억울하고 자살한다. 이게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인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을까’는 인간의 심리에 있어요. 사회에서 계속 그런걸 확대 재생산 시킨다는 거죠. 나는 이것을 죽음으로 해결을 해버린다는 거죠.

 

옛날에 최진실 씨가 자살했잖아요. 최진실 씨가 죽기 직전에 자기가 살고 싶어서 이거(목줄)를 땡겼어요. 그런데 그런 걸 보도 안 하잖아. 자신이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자살한다는 자체가 복수거든 다시 생각해보니깐 죽을 일까진 아니거든, 그래서 다시 죽음의 순간에 풀려고 했는데 풀려고 했다는 것은 보도를 안 한단 말이지. 최진실 씨는 그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고 상대방은 빌런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최진실 씨를 완벽하게 피해자로 만들어야 하는 거야. 최진실 씨를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하고, 이도 저도 아닌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거야. 언론에서 봤을 때 이 사람은 완전히 나쁜 사람, 최진실 씨는 피해자로 만들어야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게 생리적으로 맞는 거죠.

 

서강> 이러한 보도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한> 권고지침만 준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죠. 지금 언론의 문제가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야 히팅(조회) 수가 올라간다고, 자살에 대한 권고기준을 줘도 의도적으로 낚시성 기사를 만들어요. 이 분야에 있어서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조차도 자살에 대한 미화법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데 어려움이 있죠.

 

당장 내가 히팅 수를 올릴 수 있는 기사가 있다고 하면, 그 자체로 돈이 되고 자신의 능력이 되는 거니깐 교묘하게 쓰고 있는 거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죠. (한 가지 예방법은) 자살 관련 기사들을 보면 요즘에 그런 기사들이 있어요. 자살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중앙자살예방 협회에 연락하도록 (기사 밑에 삽입) 되어 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그런데도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기사를 보고 자살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거죠.

 

서강> 실험의 한계점이나 향후 연구 방향이 있다면?

 

한> 이론적으로 헬스 커뮤니케이션에서 할 수 있는 거는 이런 거예요. 자살 관련 보도를 접하잖아요. 지급 같은 경우는 AI 시대잖아요. 특정 기사를 보고 이 사람의 심적인 변화라던가 이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던가 실제적인 데이터를 땡겨올(수집할) 수 있어요. 지금 같은 경우는 이론적인 부분에만 머물러 있는데, 이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인데… 우울증 환자가 있잖아요? 이 사람의 핸드폰 사용을 모니터링하는 거예요. 특정 기사를 반복적으로 접한 이후에 이 사람이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던가 하는 데이터로 연계시킬 수 있다는 거죠. 이럴 경우에 법적으로 권고사항을 정할 수 있다는 거죠. A, B, C라는 기사 중 C라는 기사를 계속 보고 자살 시행까지 옮기게 되는 걸 알 수 있다는 거죠. 이 사람이 병원에 가는지 의료 데이터, 핸드폰을 보려면 이 사람의 신상정보와 모니터링, 이걸 통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추출해내서 정책까지 만들 수 있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것인가. 생명을 존중할 것인가 하는 법적인,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데, 기술적으로는 접목시킬 수 있다는 거죠.

 

 

서강> 인권 문제 라던지, 법적으로 많이 부딪힐 것 같은데요?

 

한> 자살 관련 캠페인이 있잖아요. 실제로 우울증이 높고, 자살 고위험군이 있는 사람이 실제로 어디로 많이 가는지 (GPS를 통해) 조사하면, 어떤 방식의 캠페인이 더 효율적인지 조사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은 그런 것들을 발견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정말 우리가 부딪히기만 할 것인가. 우리가 심야버스가 만들어질 때 사람들이 어디서 택시를 많이 타는지, 버스를 많이 타는지 빅데이터를 만든 다음에 심야버스를 만들었잖아요.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면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거죠. 자신들의 승차 정보가 서울시에 의해서 모니터링되었다는 거는 신경 쓰지 않아요.

 

새벽 4시 반에 가장 많이 차는 버스. 만원 버스는 강남으로 가서 청소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이용해요. 새벽 4시 반 버스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 새벽 4시 반에 버스를 증차하자고 하면 아무도 동의를 안 하겠죠. 새벽 4시 반에 강남으로 가장 많이 유입된다는 데이터를 보여줘야 그분들을 위한 버스를 증차시킬 수 있는 거죠. 이건 전부 사람들의 개인적인 데이터죠.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예를 들어 TV에서 자살을 극적으로 묘사한 장면을 많이 보여주게 되면 핸드폰 GPS를 통해서 이 사람들이 그 묘사한 장소를 많이 가더라, 관련된 영상을 많이 보더라 이런 정보를 뽑을 수 있죠.

 

지금 논문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거고, 그렇다고 우리가 자살 위험군들을 다 찾아내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원하기는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데, 기술만 가능하면,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이 연구가 원래 진행되어야 했을 방법이 가능하죠. 실제로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이 자살 관련된 영상을 볼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조사가 가능하죠.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순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현실적으로 이렇게라도, TV 방송을 만들었고, 실제 보았고, 이전에는 글로만 보여줬었거든요. 그런데 이거는 실제 방송을 만들고 100명이 넘게 모으고 이런 게 획기적인 거죠(웃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거는 기술적으로 모두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정교화하고 법제화할 수 있다는 거죠. 법제화하는 거는 자살 위험군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돌봐주길 원하는 거고, 권고사항으로 힘들죠.

 

서강> 자살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런 걸 다 모니터링하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잖아요.

 

한> 아니지,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을 잡는 건 아니잖아요. 담배 피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 피고 싶어서 피는 게 아니라, 자꾸 담배 피우는 장면을 보니깐 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 사람은 담배를 피지 않을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는 것일 수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도 자살에 대한 묘사가 없었으면 굳이 자살로까지 안 갈 수 있는 거죠. 사실 표현의 자유가 더 문제인데 영화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이게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자살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 지하철 도어에 지금 스크린 도어가 생겼잖아요. 스크린 도어가 생겨도 정말 자살할 사람은 자살할 거라고 생기는데, 실제 자살률이 줄어요. 이건 자살할 권리를 침해하는 거랑 조금 다른 거예요. 자살을 많이 하는 다리가 있는데 거기를 막으면 다른 데 가서 자살을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살률 자체가 줄어요. 사람들 심리가 그렇다는 거죠. 자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조금 다르게 접근할 수 있어요.

                                                                   

정말 자살이 자의에 의한 선택이냐는 거죠.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대부분 자살이 순간적이고 충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거죠.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니잖아. 인지과학에서 보면 3초만 기다리면 돼요. 3초만, 3초만 더 기다리면 전두엽에서 그걸 정리해요. 충돌을 억제할 수 있어요. 얼마나 웃긴 거야. 지하철 스크린 도어만 막아도, 다리만 막아도 자살률이 준다니까? 괴롭힘당한 아이가 미디어를 통해 자살로 복수하는 것을 보고 자살을 한다면 그 아이가 정말로 선택해서 하는 자살이냐는 거죠. 가뜩이나 더 나가면 3, 4살짜리도 아빠가 죽이고 자살을 해요. 그러면 ‘이 불쌍한 애들 남길 바에야 같이 죽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미디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표현하는 거지.

 

 

*본 논문은 학술연구정보 서비스(RISS)에서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