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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9호] 신분제와 신인종주의

신분제와 신인종주의

 

서도원 _ 연세대 미디어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시기적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 각 사회의 지역적, 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근대화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적으로는 시기가 아닌 사회 구조와 정치질서의 차이로 전근대와 근대를 나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개인적으로는 인권 존중 사회가 근대 사회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정치적 차원에서 신분과 계급의 구분은 대표적인 시대적 경계로 인식되어 왔다. 백광렬(서울대, 박사)은 신분제의 특성을 특권의 위계, 사회적 강제, 세습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특성들이 근대에 들어오며 계약을 골자로 한 사회 체계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회에서 특권의 위계와 세습이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있다. 최근 언론 매체와 포털사이트를 점령한 마약과 YG 성 접대 의혹에서 남양유업 3세 황하나의 태도는 특권의 위계를 잘 보여준다. 헌법에 인간의 평등 지향성이 명시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장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법을 우습게 보는 태도는 황하나의 신분적 특권 의식을 드러낸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태도나 박찬주 대장의 인터뷰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재벌그룹의 경영권 세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심지어 근래에는 교회를 세습하는 문제까지 논쟁이 되고 있다. 대한항공 일가의 ‘땅콩 회항’ 사건은 특권의 위계와 세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이들의 생각에는 절대적으로 평등해야 할 인간의 권리보다 계층적으로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신분제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오늘날의 사회는 전근대의 모습과 상이하지 않다. 근대적 차원에서 본래의 자본주의적 노동계약 관계는 인격이 인격을 지배하지 않는 상품거래 관계이다. 하지만 돈으로 인격을 산다는 인식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팽배하게 퍼져있다. 매년 공정거래위원회에는 ‘갑질’에 대한 조사 요구가 수백 건씩 올라오며 학계에도 ‘갑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구조 안에서 같은 문제들이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태도이다. 드러나는 사건들 외에도 인격이 거래되고 있는 현상은 현실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며 심지어 노동자가 이를 당연하게 묵과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통계조사 결과, 직장인 89.1%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동아일보<직장인 10명 중 9갑질  당한 경험...가장 빈번한 갑질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진지한 자성의 결과를 찾기 어렵다며 징역 3년이 구형되었다.

출처: 연합뉴스 <검찰 ‘땅콩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징역 3년 구형>

 

그렇다면 현대의 사회는 전근대의 신분제로 돌아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늘날 사회적 지위에 따른 위계질서는 정치적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특권의 위계와 세습, 후기 자본주의의 인격 거래 현상은 내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구별짓기’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돈이 많다고 ‘갑질’을 하지 않는다. 내가 타자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지 정하는 사회화의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상정하고 스스로 합리화해야 ‘갑질’이 나온다. 그리고 이 구별짓기는 인종주의의 특성이다. 창원대학교 신동규 교수에 따르면 인종주의는 문화적 정체성에서 타자를 배제하며 형성되었다. 따라서 오늘 한국 사회는 문화적 정체성을 토대로 타자를 배제하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의 사회’. 즉 신인종주의의 사회인 것이다.

 

전통적인 인종주의가 인종을 매개로 했다면 신인종주의는 노동과 자본을 매개로 한다. 처음 신인종주의 담론이 활성화된 곳은 1970년대 프랑스이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유럽인과 북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의 문화적 차이에서 신인종주의가 대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신인종주의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은 국민적 정체성 안에서 노동과 관계해서 문화적 차이를 만든다. 일용직 노동자를 위생적으로 깨끗하지 않고 성격이 거칠다고 인식하는 태도나 간호조무사의 전문성 없음을 비난하는 태도도 이런 문화적 구별짓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날 신인종주의적 의식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 나오는 오염의 메타포 역시 이런 신인종주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객용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선 안 된다거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건물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비가시적 노동자의 현황은 흑인이 병균을 옮기므로 화장실을 따로 써야 한다는 1960년대 미국 남부인들의 태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혹은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더라도 노동의 질적 차이를 두고 인식하는 모든 태도, 대기업을 간 친구를 능력 있다고 칭찬한다거나 대학원생으로서 은연중에 대중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든 자세가 신인종주의의 여파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박찬주나 재벌가를 비난하기는 쉽지만, ‘갑질’과 특권의 위계 같은 신분제적 행태에 우리 모두는 무관하지 않다. 거칠게 말하자면 신분 상승 욕구가 충족될 수 없었기에 비난하는 입장에서 뉴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법부를 개혁하고 적법절차를 실현한다고 한들 문화적 정체성에서 구별 짓는 모든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박찬주가 생성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에 기사를 접할 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연구자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되짚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진지한 자성의 결과를 찾기 어렵다며 징역 3년이 구형되었다. 출처: 연합뉴스 <검찰 ‘땅콩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징역 3년 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