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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49호] 김진아, 일상 속 숨어있는 노동을 찾고 무기력감을 재해석하기_김진아 작가

김진아, 일상 속 숨어있는 노동을 찾고 무기력감을 재해석하기

 

 

작가 김진아는 현 사회에 많은 문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무기력과 무력감을 소재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가는 반복된 일상 속 매일 밥을 입에 넣으며 살아가는 것에 의문을 느꼈을 즈음, 스스로 느낀 무기력감을 재해석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일상의 유지에 관한 것이며, 작가는 무기력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려 한다.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인 만큼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일상의 유지를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 호의 주제인 “되짚다”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로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우리의 일상에 숨어있는 노동으로 인한 무기력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마련해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시은, 이승은, 전건웅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작가님이 해오신 작업을 보면 ‘노동’, ‘무기력’이란 키워드가 자주 보이는데요.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이를 소재로 작업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진아 작가(이하 김)> 제 개인사와 많이 연관되어있습니다. 저 또한 굉장히 내성적이고 무기력했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완전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이랑 얘기하게 된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겪고 나니깐, 저의 원래 외향성과 내향성, 이 둘이 마음 안에 있는 거예요. 제가 원래 가진 건 내향성인데, 사람들을 대할 때는 외향적으로 대할 수도 있고. 그런 부분들을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 무기력한 것도 사실은 굉장히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죠. 씨앗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씨앗 같다고 한 것은 어떤 계기로 갑자기 팍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능성이 저는 너무 좋았죠. 무기력한 태도는 바로 그런 부분에서 매력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기력해도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지 상황이 안 될 뿐이라면 그대로 있어도 됩니다. 한국인은 대체로 무기력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침략, 전쟁 등을 거치면서 ‘한의 정서’와 더불어 비슷한 무기력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서를 누구는 냄비근성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폭발적으로 일어날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논문에도 ‘변곡점’을 제시하였는데, 저는 어떤 것이 매우 크게 흐름이 바뀌는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일상을 맞닥뜨렸을 때 작품으로 만들어냅니다. 무기력은 지나친 노동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집니다. 그 바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노동이었을 때도 있었고, 경제 자본주의라든지 굉장히 여러 가지의 노동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숨어있는 노동입니다. 예를 들어 <오 이 소박한 전시>에서 보시면, 김치를 만들었고 타임테이블만 만들어놓았는데요, 관객들이 알아서 움직였습니다. 어떤 단계를 대놓고 보여줄 수도 있는 게 퍼포먼스지만, 저는 그것을 제가 짜지 않고 우리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학습 당했던 것들을 자동으로 겪게 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것을 올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서강> 이러한 소재들을 가지고 다양한 창작물로 표현하실 때, 어떤 고민과 작업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 전반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김> 일단 이론적으로 접근합니다. 감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요. 남이 해준 밥이라는 전시를 처음 할 때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기혼자인데요, 평생 엄마가 집안일을 하시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이 밥을 먹었나?’, ‘뭘 해줘야 하나?’, ‘밥을 같이 먹었다면 설거지는 누가하나?’, 그리고 밥을 다 먹고 그릇을 딱 놓으면 내가 해야 한다는 내 업무, 의무감을 가지게 됩니다. 한창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렇게 생각 안 할 순 없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오게 된 전시가 ‘남이 해준 밥’입니다. 전시장에서 ‘밥을 짓는 행위’가 내 일이 되었을 때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를 스스로 실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마주한 노동을 다시 새롭게 마주하게 되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서강> 작년 <출가외인: 무용의 레이어>를 포함해 전시 때 직접 농사를 하신 작물로 밥을 대접하는 퍼포먼스를 자주 하시는데요. 농사를 직접 하시게 된 계기와 관객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퍼포먼스는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2018 남이 해준 밥 현장

 

김>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할 때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하게 된 이유는 여성 인력 개발센터에서 하는 국비 지원 수업에 도시 농업 커뮤니티 가드너 자격증반이 있었는데요, 도시 농업 커뮤니티 가드너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궁금해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무렵에 식물 키우는 것에도 관심이 커졌어요. 식물을 키워주는 것을 알려 주는 건가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는데 면접을 봐야 한다고 해서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에서 이 수업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지 테스트만 하였던 것 같아요. 한번 갈 때마다 5시간씩 걸리는 수업인데도, 수강생분들이 꼬박꼬박 잘 나오셨어요. 그걸 하면서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본인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죠.

제가 그 수업으로 농사를 짓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을 보면 당근도 당근만 있고 토마토도 토마토만 있어요. 우리가 보는 형태는 그것의 본 모습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죠. 제가 마트에서 사는 것 말고도 아주 많은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들을 어떻게 보면 소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이나 경제적인 상황에 맞게끔 단순화 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걸로 전시를 하게 되면서 사람 인생도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체계화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단순화되어 있는 거죠. 거기 안에 매우 많은 고민이 있어서 무기력해지는데 부분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때문에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서강> 올해 하신 개인전 <Ground, up, ready>의 관련된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보았습니다. 전시회 제목부터 작업까지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전시 제목을 <Ground, up, ready>로 지으신 이유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두 번째 개인전 <Ground, up, ready>에선 ‘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할 때가 되었는데, 내가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내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제 근간이 너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동에 관한 경제체제에 관한 사유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경 작업 시스템도 인간이 관리하기 쉬운 실내로 이동하거나 바이오 식물도 많이 생겨나고 있죠. 오로지 우리의 편리를 위해서 생겨나는 겁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들고 다닐 수 없어졌고 제가 계속 움직이면서 살아야 하는데, 제 것이 없는 거죠.

그래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밭을 만들어서 들고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떠나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이동하면서 풍요로울 수 있는 관점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풍요 - 풍년의 관점을 끌어들여서 작업했습니다.

 

땅, 땅, 땅_드로잉, 암면, 식물_<Ground, up, ready>

 

전시 제목의 뜻은 유전자 조작 식물을 나타냅니다. 라운드 업은 제초제 항상성을 가진 식물을 라운드 업과 라운드 업 레디라고 부릅니다. 농부들이 제초제를 쓰다 보면 계속 그것만 쓰게 될 수밖에 없고 그들의 굴레 안에 끼어버리는 것이죠. 제가 땅 위에서 이동하는데 항상 내 안에 발전(up) 욕망이 있고 항상 준비상태로 있어야 하는 거죠. 저는 항상 준비상태에 있고 항상 발전 과도를 달려왔죠. 그거를 유지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내가 항상 준비상태로 있기 위해서는 계속 이동해야하는데 이것이 정말 내 의지인지. 이것에 대한 실험이었죠. 움직인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자의인가 타의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어디까지 벗어나고 싶은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선택의 여지는 항상 가지고 살아갑니다.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메시지입니다.

 

서강> 관객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참여한 결과물을 다시 작가님의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에서도 작가님의 노동에 대한 사유가 엿보입니다. 기억에 남는 참여 전시와 이를 작품화한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김> ‘오 이 소박한 전시’가 제일 재밌었습니다. 오이소박이김치를 담그는 퍼포먼스가 기억에 남는데요. 제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그다음, 김치를 담그고 예쁘게 포장해서 올려놓으면 여자분들은 바로 김치를 가져가셨는데, 남성분들은 타임 테이블을 찍고, 김치 사진도 찍고서 이걸 가져가도 되는 건지 쭈뼛쭈뼛하면서 고민하다 가셨어요. 여성분들은 김치를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 등 김치에 대한 가치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 가방에 3개씩 챙겨서 가져가는데, 남성분들은 이 상황을 예술로 보는 것이죠. 이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참여 전시 중에 가장 재밌었습니다. 일상적인 일이 예술로 승화되는 것에 김치 만드는 데 같이 참여한 사람들도 감격했었어요. 숨어있는 노동에 조명을 켜준 거죠. 일상적인 행위가 예술로 넘어왔을 때, 가치 있게 되었던 것들을 좋아합니다.

 

<오 이 소박한 전시> 퍼포먼스 현장

 

 

서강> 앞으로 계획하시는 작업이 있나요? 다음 작업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김> 삶에서 부딪히는 무기력함이나 의무감들, 제 감정이 요동치는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틀어서 재밌게 해서 비꼬는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저는 미래 식량이라든지, ‘이 땅을 떠나서 우주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합니다. 풍족하게 먹고 사는 것이 다 해결되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죠. 공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상상들을 전시로 옮기기도 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일상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찾아내거나 제 감정을 건드렸던 것들을 전시를 통해 전환 시키는 작업도 할 것 같아요.

 

서강> 작가님의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김> 전시 문화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예술의 벽이 높다 느껴지는데, 예술은 어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 예술이 그냥 편안하고 쉽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굉장히 우울한 상태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평생 아무것도 안 하진 않을 테니까. 자신을 좀 더 여유롭게 해줬으면 좋겠고, 여유를 주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