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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9호] 아현동의 어제와 오늘을 예술로 되짚다 ―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의 예술목욕

아현동의 어제와 오늘을 예술로 되짚다

―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의 예술목욕

 

김미교 _ 독립큐레이터

 

 

  오래된 공간들은 한 지역의 기억과 오늘을 마주하게 한다.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탕의 어제는 동네의 현대식 목욕탕이었고, 오늘은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과거 행화탕에서 목욕을 즐기던 동네 주민들의 노랫소리가 남탕과 여탕을 나누던 벽을 넘나들었다면, 현재 행화탕에서 동시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선사하는 ‘예술목욕’으로 세대와 세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넘어서는 문화교류를 시도한다. 이 글을 통해 행화탕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역사적, 장소적 맥락이 주민과 시민들의 인식에서 변모하는 과정을 문화 예술 플랫폼의 역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행화탕이 위치한 아현동의 어제와 오늘, 주민들이 교류하는 사랑방으로써 행화탕, 복합문화공간에서 즐기는 예술목욕이라는 세 가지 흐름으로 글을 이어갈 것이다.

 

 

아현동의 어제와 오늘

 

1956년(왼)/1963년(오) 서울 마포구 아현동 김장시장 전경 모습(출처: 국가기록원)

 

  1950년대 마포종점이 위치하고, 서울역이 가까워 60년대 상경민들의 주요 터전이었던 아현동은 작은 고개 혹은 아이고개로 불리던 곳으로 광복 이후 대표적인 저층 주택지였다.  강변북로를 끼고 2호선 아현역과 5호선 애오개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울교통의 요충지로써의 가능성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아현동의 일부 주거 건물들이 재건축을 진행하게 하는 주요한 지리적 요건이다.

 

2019년 6월에도 활발히 포스팅되고 있는 아현시장(네이버 포털 검색화면 캡처)


  현재 새로운 고층 아파트 단지와 함께 아현동에 등장한 새로운 이주민 가정들과 오랜 세월 아현동에 삶의 터전을 닦아온 원주민들이 아현시장, 아현초등학교와 같은 생활권을 함께하며 서로 부대끼고 공존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현동 주민들은 아동 및 청소년 인구와 중장년, 노년층 인구가 고르게 분포하며, 지역적 연고보단 인간관계 중심으로 시작된 다양한 커뮤니티가 조성되어 있다.

 

 

주민들이 교류하던 사랑방-행화탕


  현재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을 운영 중인 “축제행성”의 서상혁 디렉터가 아현동 주민의 행화탕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할 때 단적인 사례로 주로 언급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스윗소로우의 ‘아현동’이다. 그들이 데뷔전 아현동 반지하연습실의 생활을 추억하는 노래의 한구절에  “그때도 손님이 없던 행화탕에 가면 우린 수영을 했지”라며 행화탕을 언급하는 가사가 있다. 이처럼 아현동에 살았던 이들이 추억하는 공간, 행화탕은 건축된 1958년부터 현대식 대중목욕탕으로 지역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행화탕에서 아현동 주민들은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목욕’이라는 행위를 함께하는 공공의 장소, 대중목욕탕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의 삶을 내려놓는 동시에 일상을 마주하였다. 아현동 주민들에게는 행화탕이 과거 탈의실 평상에서 마주하며 담소를 나누던 동네 사람들, 목욕탕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들과 같은 기억들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서울의 근대화 역사를 함께해온 아현동에서 현대식 대중목욕탕으로 건축된 행화탕은 시설이나 위생 상태, 수질이 좋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찜질방이나 스파 등 목욕문화가 다양하게 변모함에 따라 과거에 하루 100여명도 수용했던 행화탕을 찾는 이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2010년(2007년부터 2011년까지 사이로 추정)을 즈음하여 아현동의 재개발계획이 수립되며 목욕탕도 문을 닫게 되었다. 그 뒤 개인 임대인들에 의해 사무실, 창고 등 그동안과 다른 활용으로 행화탕의 사랑방 역할은 그저 추억 속에만 머무는 듯했다.

 

2016년 5월 15일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개관 당시 전경(촬영_채드박(Chad Park), 사진 제공: 축제행성)

 

  그리고 문화예술을 기획하는 ‘축제행성’이 행화탕을 임차하며 2016년 5월 행화탕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이후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은 아현동 주민을 포함해 서울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교류의 장을 기획해오고 있다. 또한 자체 기획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대관을 통해 동시대 문화예술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날 행화탕은 단순히 물리적인 그 장소와 건물이 유지됨을 넘어서 사랑방이라는 지역 커뮤니티 내에 고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새로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예술목욕”하는 사람들

 

  2016년 행화탕이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이후 수많은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행화탕을 거쳐 가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필자가 2년간 직접 기획에 참여한 “축제행성” 의 “예술로 목욕하는 날”을 중심으로 “예술 목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역과 사람을 되짚어보았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은 개관한 2016년 5월부터 지금까지 개별적인 자체 기획프로그램과 대관 프로그램, 서울문화재단의 ‘복작복작예술로 사업’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들을 운영하며 지역주민들이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과거 행화탕이 목욕문화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에 기여했다면, 현재의 행화탕은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서 다양한 “예술목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 특히 단발적인 이벤트이기보다 지속해서 지역과 연계할 수 있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오며, 이와 관련한 기획을 하게 되었다.  아현동 주민들의 지속적인 예술교류를 위해 기획한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컨셉은 기존 행화탕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담아보고자 한 시도로써, 2017-18년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로 목욕하는 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련의 “예술로 목욕하는 날”들은 개별 주제들을 엮어 1년 동안 하나의 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2017년 예술로 목욕하는 날 전체 페이스북 커버

(참고 : 2017년 10월 예술로 목욕하는 날 아카이브 및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mUjigRJRvk)

 

2017년의 “예술로 목욕하는 날”은 특히 장소를 의인화해 1958년 건축된 이후 환갑을 맞이한 행화탕이 아현동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  삶과 이야기를 모티브로 잡아 일련의 소주제들을 잡아보았다. ‘에술목욕개업’. ‘자연소풍목욕’, ‘노천휴가목욕’, ‘가족추석목욕’, ‘환갑잔치목욕’까지 5회에 걸친 행화탕의 ‘예술목욕’을 다각도로 구성하였다. 특히 마지막 10월은 아현동에 평생을 살아온 실제 환갑을 맞이한 원주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다양한 공연과 전시 작품들을 선보이며, 아현동의 이야기를 행화탕으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2018년 예술로 목욕하는 날 전체 페이스북 커버

 

2017년이 아현동에 대한 세월과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2018년은 ‘목욕’이라는 행위에 집중해 자신을 돌보고 가꾸는 행위로써 다양한 개인의 ‘감각’들을 깨우고 확장해 서로 교류 가능한 커뮤니티로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획구성을 잡아보았다. 이렇듯 2017-18년의 ‘예술로 목욕하는 날’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되짚어보고 발굴하는 과정에 지역과 장소를 넘어 특히 사람에 더욱 집중했다.

 

이러한 일련의 문화예술기획이 주민들의 지속적인 예술교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기본 모토로 돌아가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상호 이해의 부재에서 오는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문화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