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52호]코로나19가 던진 질문들_하태현

하태현 기자 hathyun815@

 

이제 뉴노멀한것은 무엇인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적 유행으로 번지며 현재(11일)까지 바이러스 확진자 수는 170만 건에 이르렀고, 사상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2020년 1월 한국과 홍콩, 일본으로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는 동아시아권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기 시작해, 미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로 퍼져 세 달 만에 전 세계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한국의 경우 최근엔 50명 안팎의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공공 의료체계와 방역체계,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 덕에 점차 코로나19 확진율과 사망률이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는 단연 한국 언론의 주된 논제이며 뉴스거리였다. 언론은 어제보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확진자가 나왔으며, 확진자의 경로는 어떠했는지, 모범적인 사례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줄곧 보도했다. 정부와 언론에서 코로나19를 국가적 차원에서 예방하고 물리쳐야 할 감염병으로 지목하자, 병리적인 정보 역시 쏟아져 나왔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논제들은 코로나19라는 선결과제 해결을 위해 지연되었다.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일상을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일상의 정지였다. 국민들이 제각기 일상적인 활동을 잠시 멈추는 동안 주시했던 정보는 코로나19 감염 정보와 확진율, 그리고 사망률이라는 통계적 수치였다. 어제보다 오늘 줄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두 촉각을 세우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멈춰선 사이에, 코로나19는 그 공백 너머에 새로운 일상을 구축해냈다. 

먼저,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려는 트렌드인 언택트 문화(untact culture)는 이제 매장에서의 키오스크나 배달음식의 주문에만 있지 않다. 대학가에 들이닥친 코로나는 대면 강의를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뒤바꾸고 있다. 사이버 대학이 도래한 것이다. 강의실에서 수업하던 교수님은 이제 인터넷 강사가 되었고, 학생들은 어디서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이버 대학에 다니고 있다. 화상회의 어플리케이션 줌(Zoom)은 학생들이 어디서든 강의를 듣게 해주었다. 업무 환경 개선의 차원에서 도입된 재택근무는 직장인들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고, 일터와 가정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재택 근무하게 된 직장인들과 개학이 연기된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리고)'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집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식당가와 마트 그리고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는 손 소독제가 어디에나 비치되어 있고, 마스크는 피부의 일부로서 외출 필수품이 되었다. 심지어 충주시와 파주시, 그리고 부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은 택시에 탈 수 없도록 한시적인 승차 거부를 허용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4월 1일부터 평일 심야시간대 서울지하철 1시간 단축 운행을 실시했다. 코로나19 유행의 장기화 국면에서 심야에 이동하는 시민의 수도 줄었을뿐더러 소독과 방역 작업을 위해 기존에 운행하던 열차 시간을 1시간 단축 운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출처: 서울교통공사)

일상적인 소비가 위축되면서 각종 산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상영 예정이었던 영화들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자 상영 연기와 넷플릭스 개봉을 고민하고 있고, 항공업계는 노선을 감편하거나 비운항을 내걸었다. 산업의 변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다. 일자리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3월 29일(현지 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호텔과 레스토랑, 항공사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문을 닫으며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재택근무나 이동 제한으로 인해 식료품점이나 온라인 소매업체, 그리고 병원의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WSJ에 따르면, 월마트나 약국체인 CVS헬스는 몇 주에 걸쳐 총 50만 명을 신규 채용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유럽에서도 일자리 재편은 남 일이 아닌 듯하다. 지난 3월 30일 이투데이 기사 <코로나 팬데믹에 2차대전 이후 최고속 일자리 재편 물결>에 따르면, 독일 의회에서는 쿠어츠아르바이트(Kurzarbeit)로 농업 부문에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자는 법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농장 일을 돕겠다는 사람이 불어났다. 코로나19 이전에 농장일은 폴란드와 루마니아 일용직 노동자의 몫이었는데 그들이 각국으로 돌아가면서 농업 부문 노동력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프랑스 농업부도 국경 봉쇄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국에 들어오지 못해 8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과 학계에서는 이러한 총체적인 변화를 두고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본래 ‘뉴노멀’은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저금리, 저소득 시대에 부상한 용어였다. ‘뉴노멀’이란 경제 위기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게임의 규칙으로서 경제적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시되며, 소유에서 공유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하는 시대에 '뉴노멀'을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재편만을 일컫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코로나19로 인해 재편된 세계는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보다 훨씬 큰 변화 즉, 정치부터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상상치도 못한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1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정례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며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방역 활동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대유행병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는 좌파의 논리라고 터부시하던 정치권에서도 이제 여야(與野)할 것 없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에게도 상식적인 논의로 받아들여진다. 코로나19가 만든 사회 변화를 두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급진적인 변화는 일어나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공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돈다고 생각했지만, 공장은 가동을 멈추기 시작했고, 각 나라의 시민들을 이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여(lockdown) 아파트 방에서 생명을 보전하고 있다. 지젝은 “우리 모두는 불확실한 미래를 매일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의 반응도 기존의 세계 질서가 만들어 놓은 좌표 위가 아닌 이를 벗어나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이 일어나 우리의 세계를 멈추었다면 이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불가능한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젝이 언급한 바와 같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뉴노멀’한 것은 무엇이며, 뉴노멀한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연합뉴스TV)

바이러스는 모두에게 공평한가 

 

전염병과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모두가 우울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코로나19라는 재난은 각기 다른 얼굴로 각자에게 다가온다. 지난 3월 2일, 질병관리본부는 '자가격리 수칙'을 공개해 코로나19 증상을 느끼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자들에게 생활수칙을 전했다. 그러나 과연 자가격리는 우리 모두에게 쉽고 간편한 수칙일까 그리고 모두에게 가능한 일일까. 혼자서 생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가격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국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사회적 약자였다는 것은 기우가 아니다. 그는 청도 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연고자 없이 20년 넘게 생활하던 정신 장애인 환자였다. 청도 대남병원에서는 102명의 환자 중 10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이 중 7명은 사망했다. 지난 2월 26일 전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어 "청도 대남병원 집단감염 사태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이 사회적 소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재앙을 불러오는지 확인시켜주는 사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잇따라 집단 감염이 확인된 곳도 다름 아닌 칠곡 중증장애인시설과 대구 성보재활원이었다는 것에서도 바이러스는 사회적 약자에게 유난히 더 모질게 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집단 감염을 피하고자 선택된 코호트 격리가 장애인에게는 집단 감금과 다름없어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노출이 심한 집단은 비단 장애인만이 아니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 노동자의 집단감염은 한국의 사회적 약자를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구로구 콜센터 노동자들은 상호 간 거리가 1m도 떨어지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매일 8시간 동안 전화 상담을 해왔다. 이러한 콜센터 환경을 두고 콜센터 직원들은 '닭장'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과장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 감기에 걸리면 모두가 감기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아파서 병가를 내고 싶은 직원이 당일에 상사에게 연차 신청 시엔 페널티가 적용된다는 점 역시 노동자가 아파도 일터에 나와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 구조를 부추긴다. 이러한 측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은 예고된 인재(人災)였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코호트 격리가 시행된 대구 한마음아파트는 한국 사회 취약한 계층에게 바이러스가 얼마나 모질게 구는지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례였다. 언론은 대체로 대구 한마음아파트를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거주하는 공간으로 그려내며 신천지 교인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안일한 태도와 행동에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은 한마음 아파트 거주자 중 다수가 신천지 교인이었다는 사실 이전에 그들이 주거환경이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점은 놓치고 있었다. 대구 한마음 아파트는 1985년 준공 이래로 근로 여성 임대 아파트로서 대구 시내 사업장에 재직하는 35세 이하의 미혼 여성만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였다. 임대 아파트는 주거환경이 취약한 저소득층 여성 노동자에게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가장 비싼 월 임대료가 5만 4,000원이라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 한마음 아파트에서 많이 나왔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구 한마음 아파트의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천지 교인이기 전에 사회 취약 계층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재난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들이닥치지 않음을 마주하고 있다. 

마스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이를 가른다. 지난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정규직에 KF94 마스크를 지급하는 반면 비정규직에는 면 마스크를 지급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마스크 재고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하청업체 노동자인 비정규직 직원들은 해당 업체가 마스크를 지급하는 게 맞다며 대응했다. 이러한 사기업의 논리는 공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에서는 정규직 역무원들에게 1인당 13장씩 마스크를 지급했지만, 용역업체에 포함된 청소노동자에게는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았다. 부산교통공사도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협력업체의 몫은 원청이 지급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와 협력 업체 직원은 원청인 현대차와 부산교통공사의 직원이 아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자에게 먼저 마스크를 지급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기업의 태도와 지침은 누가 먼저 보호받을 만하며, 어디까지가 ‘우리’ 직원인지 명확한 경계선을 긋고 있다. 그 이면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코로나19에 더 노출된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공적 마스크 5부제는 외국인들이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들일 길을 제한하기도 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과 같은 신분증이 없는 외국인은 외국인등록증과 함께 건강보험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건강보험에 가입된 수가 전체의 6%다. 정부는 약국이 아닌 하나로마트나 우체국에서는 건강보험증이 없더라도 마스크를 살 수 있게 조처를 하였으나, 수도권의 경우엔 공적 마스크가 약국에서만 공급돼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숨겨진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연고자 없이 20년 동안 병실에서 지내던 노인, 좁은 공간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콜센터의 열악한 근무 환경, 월세로 간간이 5만 4천 원을 지불하는 저소득층 여성의 삶,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기업의 논리, 그리고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등등. 코로나19는 계층과 계급, 국적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동안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사회 곳곳의 문제점들을 들추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코로나19가 집단 발병하는 곳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약하다는 곳에서 다 발생하고 있다"며 "그만큼 우리가 대비해야 할 영역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전염되고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코로나에 대한 예방책이자 대응책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 구조에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한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의 확산이 점차 불어나면서 정부를 중심으로 공공기관과 지자체로 뻗어 나가며 시민들이 따라야 할 실천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전염병 감염을 피하고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 방역하겠다는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개념은 코로나19와 함께 나타난 전략은 아니다. 공중보건 분야에서 감염병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던 개념이다. 공중보건의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를 권유하는 이유는 시민을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을 지킬지 모르지만, 동시에 특정한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성찰이 부족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인을 사회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게끔 유도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구체적인 실천 내용은 대학에서 개강 이후에 비대면 강의를 하거나, 사적인 모임을 취소하거나, 결혼식을 미루는 등이 있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떤 개념인지 분명히 정의하고 있지 않아 사회의 범주는 임의로 설정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개념의 시작은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파커(Robert. E. Parker) 교수의 사회적 거리 개념이란 사회계급과 인종, 민족, 그리고 성적 지향이나 성별과 같은 범주 안에서의 거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사회적 거리는 정서적인 거리이면서 누가 안팎에 존재하는지 설정하는 규범적 거리인데, 차이와 구별이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화적인 거리를 설정하기에 이른다고 밝혔다. 사회학자 보가더스(Bogardus)는 사회적 거리 개념을 개인이나 집단 간의 공감적 이해 혹은 동정의 차이로 이해했다. 보가더스는 특정 집단의 성원과 얼마나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친밀해질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서 사회적 거리 개념을 사용해 실증적인 연구를 발표했다. 보가더스의 실증 연구는 특정 집단이 외부 집단에 보이는 호감이나 비호감을 어떻게 보이는지 알기 위해 미국인을 대상으로 이주민에 관한 설문을 시도했다. 이주민에 대해 심리적으로 얼마나 거리감을 느끼는지 알기 위함이었다. 보가더스는 해당 설문 결과가 미국인이 이주민에 대해 어떤 여론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거리감을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로 제시했다. 타인에 대한 배제의 잣대를 가리키는 척도로써 사회적 거리 개념이 사용된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 대응책으로서의 거리두기를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사용하는 것은 다분히 문제가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물리적인 거리를 두자는 것이지, 특정 계층이나 집단과의 거리감을 느끼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질병관리본부)

세계보건기구(WHO)의 마리아 반 케르크호베 신종질병 팀장도 지난 20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람 간 거리를 유지하자는 용어로 사용되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으로 바꾸자고 권고했다. 세계보건기구의 신종질병 팀장은 “우리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 계속 연결돼 있을 수 있다”며 상호 간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두되 사회적으로는 고립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 한편, 용어의 올바른 사용은 단순히 지시하는 바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의 감염을 피하고자 상호 간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시도를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말하게 되었을 땐 사회와 떨어질 수 없거나 떨어질 수 없는 존재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장애인과 콜센터 직원들의 사회라는 불평등한 위치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감염병의 시대에도 일상은 저마다 속한 환경에 따라 다르며, 어떤 이들은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사회의 도움과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적 거리두기로 표현을 바꾸는 것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가 곧바로 상이하게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코로나19 사회에서 인식해야 하는 거리감은 이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집단들 간의 차이에서 느끼는 친밀감과 심리적인 거리감이 아님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의 공포에 맞서서 사람 간의 일정 거리를 확보하는 언택팅(untacting)을 실천하자는 것이라면 물리적 거리두기로 표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