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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2호] "그럴 만했으니까"라는 시선, 성착취의 공모자들_김유경

-성착취 피해자 혹은 걸레·창녀’, ‘여성의 정조라는 미신을 볼모 삼은 성착취 산업

-“직접 찍은 영상 아니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떳떳한 가해자들

 

김유경 기자 k71904720@

 

‘n번 방’, ‘박사 방’, 그리고 박사 조주빈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착취 사건이 사회를 강타했다. 주범과 범행 수법, 범행 과정상의 반인륜성이 밝혀지면서 사회적 분노가 극에 달한 한편, 그 순간에도 텔레그램에서는 새로운 피해자에 대한 성착취와 성착취물의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범행수법은 동일했고, 딥웹과 다크웹을 오가는 유통망은 뿌리 뽑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만드는 사회적 조건들은 여전히 같은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n번방', '박사방' …  동일한 범행수법의 기저에 깔린 사회적 시선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은 작년 초부터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n번방의 운영자로 알려진 갓갓 2019 2, 1번 방부터 8번 방까지 8개의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만들었다. 같은 시기 와치맨은 불법 성인 사이트 및 성인 음란물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고담방을 운영했다. 2019 7, ‘갓갓은 고담방에 등장해 n번방의 링크를 공유하고, 관련 성착취물을 무료로 유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고담방의 참여자 수는 약 4천여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유통된 성착취물은 대부분 청소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개 흉내 내기,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탈의하기,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위하기 등을 강요당한 피해자의 모습을 담고 있었으며, 숙박업소에 감금된 미성년자를 성인 남성이 강간하는 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n번방이 폐쇄되던 2019 9월경, 고담방에는 박사가 등장한다. ‘박사는 성착취 영상을 유포하는 비밀방을 3개 만들었는데, “양질의 자료를 주기적으로 관리해 수질이 관리되는” ‘고액 후원자방’, “한국형 스너프 제작 및 공유를 주로 하는 하드 방’, 그리고 실시간 노예 방으로 이루어진 최강 최상위등급방의 구성이었다. 이 세 개의 박사 방에서 유통되는 성착취물에는 몸 위에서 칼로 노예’, ‘박사 등의 글씨를 새기고 나체로 찍은 사진, 신체에 벌레 등 이물질을 넣거나 대소변을 보는 영상, 화장실 배수구를 핥는 등의 영상이 포함됐다.

‘n번방 박사방에서 유통된 성착취물의 대부분은 피해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었다. 인간성을 훼손하는 수준의 요구에 피해자가 복종하게 하는 갓갓 박사의 범행 수법은 동일했다. SNS에서 조건만남이나 스폰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여성을 대상으로 신상정보와 신체 주요부위가 노출된 사진을 취득한 후,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취득한 사진을 피해자의 주변인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이었다. 

 

걸레로 만들어주겠다는 협박보다 걸레라는 낙인이 더 괴로운 사회

‘n번 방’, ‘박사 방이 대표적이지만, 같은 범행수법은 텔레그램 채팅방 대한민국 창녀 Database’를 비롯한 기타 채팅방과 개인 간의 채팅에서도 발견된다. 채팅 앱을 통해서 만난 상대방의 자위 및 성행위 영상과 개인 및 주변인의 신상정보를 취득한 후 나한테 복종하지 않으면 동영상을 부모님이랑 학교에 퍼뜨려 걸레로 만들어주겠다”는 협박을 통해 성착취를 시작하는 것이 대표적인 범행 수법이다.

가해자의 협박은 그 자체로 엄연한 범법행위다. 대한민국 형법에서는 공포심을 일으키게 할 목적으로 해악(害惡)을 가할 것을 통고하는 일체의 행위 협박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죄질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을 처할 수 있는 범죄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이때, 해악의 내용은 제한되지 않음으로 생명·신체·자유·명예·재산 및 그 밖의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폭행·협박을 통하여 사람에게 추행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제추행죄가 적용되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미수범 역시 처벌 대상이다. 또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역시 형법상의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상물이 유포되는 것에 대한 공포심에 우선적으로 반응했고, 자발적인 노예화의 수순을 밟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협박에 순순히 응하게 되는 것은 피해자가 법적으로 무지해서도 아니고, 스스로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도 아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중대한 범법행위를 고발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고통을 감내하는 데에는, 자신의 일탈이 밝혀졌을 때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운 결과를 따를 것이라는 예측이 작용한다. 범행 사실이 밝혀졌을 때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먼저 조건만남을 제안했다는 변명으로 귀책 사유를 피해자에게 전가한다. 논리적으로 어떠한 의미도 없는 이 변명들이 사회적으로는 일종의 납득 가능한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반복되어왔다. 동시에 성범죄 피해자에게 누군가의 성적 대상물이었다는 낙인이 찍히는 사회적 현실 역시 반복되어왔다. 

1997, 14세의 여자 중학생이 17세의 남자 고등학생 2명에게 윤간당하는 영상이 담긴 비디오가 유포됐다. 이 사건은 빨간 마후라 사건으로 명명됐다. ‘빨간 마후라는 영상 속에서 여중생이 두르고 있던 붉은 스카프를 의미한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속에서 피해자는 단 한 번도 피해자로 호명되지 않았다. ‘빨간 마후라 이후에도 성착취 영상물, 혹은 리벤지 포르노가 피해자의 이름으로 명명되는 현상은 반복됐다. 유명 탤런트 A와 연인의 성행위가 담긴 영상물이 유포된 사건은 탤런트 A의 성을 따서 일명 ‘O양 비디오 사건이라고 불렸다. 이 사건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피해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 가수 B에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심지어 가수 B의 영상물을 유포한 가해자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영상 속의 남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탤런트 A와 가수 B는 법적으로는 피해자였으나, 각각 10년과 3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에 다시 연예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래도 되는 여성과 일반 여성, 법의 시선에서 시작한 2차 가해

‘2차 가해라는 명칭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반복된 사회적인 2차 가해는 피해자들에게 무력감을 학습시키기에 충분한 시간 동안 지속됐다. 한국에서 강간과 추행 1995년에 이르러서야 죄의 이름이 됐다. 1995년에 법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형법 제32장의 정조에 관한 죄에 의해 규정됐다. ‘정조에 관한 죄에서 법은 보호해야 하는 가치를 여성의 정조로 규정했는데, 이에 따라 여성의 정조는 법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정조와 그렇지 않은 정조로 분리됐다.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는 오로지 법적으로 정조라는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여성에게만 부여됐다. 이러한 사법적 논리에 따라 대구 경찰 윤간 사건의 피해자는 다방 종업원이었다는 이유로 정당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피해자를 윤간한 두 경찰은 무혐의 처리됐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아니라 여성의 정조를 사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가치로 규정하는 법은 40년 넘게 존속했다. 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성폭력·성착취 사건에 대한 수사는 우선적으로 여성의 정조를 확인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된 성착취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자가 직접 영상물을 촬영한 사실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가해자에 대한 사법적 처리보다 피해자의 휴대전화 교체와 텔레그램 삭제를 제안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이 확보됐다. 2019년에 진행된 수사였다. 당시 피해자는 미성년자였으며, 영상물 유포에 대한 협박과 함께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상습적인 협박을 받아오면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을 지속해서 강요당하고 있음을 경찰에 고지한 상황이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으로부터 지속적인 2차 가해를 당하고, 스스로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반면, 가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대응은 과도하게 미온적이다. n번 방의 전 운영자 와치맨은 음란물 유포죄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또다시 유포했음에도 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징역 3 6개월에 그쳤다. 또한 채팅 메신저 디스코드를 이용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포 및 판매하다 검찰에 검거된 미성년 피의자에 대해서 경찰 관계자는 검거된 미성년 피의자 대부분은 성착취 동영상 유포 행위가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라며 범죄나 처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처리기준’,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

  이달 9, 검찰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처리기준을 발표했다. 강도 높은 구형을 명시하고 있는 해당 기준은 성착취 영상물 제작 사범에 대해 가담의 정도를 불문하고 전원 구속하도록 했다. 주범은 죄질에 따라 징역 1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까지 구형하게 되며, 유포 사범의 경우 영리 목적 유포의 경우 전원 구속, 징역 7년 이상을 구형하기로 했다. 영상물 소지 사범에 대한 사건 처리 기준도 높아져 일반 소지자도 초범일 경우엔 벌금 500만 원, 동종 재범이거나 유료회원 등 적극 참여자는 정식 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 

검찰의 해당 기준에서 성착취 영상물 제작·촬영 과정에서 성범죄, 폭행, 협박 등 타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강제하는 별도의 범죄가 결부되거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적 영상물로 규정됐다. 이 규정이 유통의 항목을 제외했기 때문에 리벤지 포르노는 여전히 해당 기준의 외부에 존재한다. 처벌 기준이 강화되고 법망이 더욱 치밀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하지만 여성의 성행위가 협박의 빌미로 사용될 정도로 여성으로서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 되는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치밀한 법망으로도 성착취 범행을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