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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52호] 코로나-19, 그리고 1000번을 저어 만든 달고나 커피_정재원

(출처: Instagram: @mango.closet.photos)

정재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방송계 근무)

 

2020. 시각적으로 뭔가 동글동글한 것이 귀엽지만, 동시에 공상 영화의 배경이 되었을 것만 같은 이질적 느낌을 주는 해.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는 자라면서 수많은 조직에 속했다가 벗어났지만, 그중에서도 혁신적, 미래 지향적이고 싶어하는 조직에 속할 때마다 그 조직은 하나같이 ‘vision 2020’ 등의 구호로 2020년에는 모든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것처럼 선언했었다. 그래서 나는 2020년은 뭔가 이상적인 일만 일어날 것 같다고 착각 했었나 보다.  ‘2020에 역병이 돌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는, 그야말로 SF영화에서만 보던 인류의 위기를 길거리 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마스크를 낀 채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근 몇 년간 SF영화의 단골 소재는 전염병이겠지?’ 하는 생각에, 코로나-19시대를 후에 영상 매체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영상 매체를 제한적으로 접한 나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전염병 시대를 영상으로 구현했을 때, 시청자가 그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보다 섬세한 연출이 필요하지 싶다. ‘지진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비현실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내가 평생 발 딛고 살아온 땅이 쩍 하고 갈라진 다거나,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인간을 덮치는 공포는 감각적인 시각 효과를 통해 구현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반면 전염병을 다룬 영상은 그 공포감이 보다 일상적이어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생활 밀착형 공포를 구현해야만 할 것 같달까? 모든 전염병이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코로나-19 경우 비말을 통해 감염된다고 하던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비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염된 비말을 접한다고 해도 즉각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누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한 번에 알 수도 없고, 나 자신이 나도 모르는 새 감염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도 없으며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으로 인지된다. 또한 이 시기를 관통하는 정치, 사회, 경제적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다시 말해, 전염병은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삶을 한 번에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변화시킨다.

 

나의 일상에 한해서 내가 느낀 것들만을 이야기하자면 방송국에서 일하는 나는 방송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람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란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들어서니 방송 일이 얼마나 사람과 밀착해야만 하는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일단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해야지만 즉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지만 동료들이 있는 사무실에 다다를 수 있다. 회의 중에 나오는 아이템 중 많은 것들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제외되었고, 앞으로도 제외될 예정이다또한, 계획되었던 많은 촬영들이 취소되었고여차여차 촬영하러 나가도 수많은 문제와 마주친다. 촬영 장소를 소독해야 한다든지, 촬영 장소에 모인 스태프들의 안전을 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들. 

 

특히 취재원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 일인데 너와 나 사이에 낀 두 개의 마스크는 안 그래도 어려운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일단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감염자일 수 있다는 공포(너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너를 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 아니던가)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신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내 말도 제대로 다다르기 힘드니 결과적으로 의사소통 실패를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느낌설상가상으로 촬영 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작은 골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후반 작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제작 환경의 변화 외에도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직장 역시 지역 사회, 국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변화 역시 존재한다. 근 몇 달간 나의 일상도 많이 변했고, 앞으로 이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 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 감염병의 공포를 한층 무겁게 만든다.

 

마치 일상에 마스크를 끼게 한 것처럼 습하고 따갑고 답답하고 숨이 찬 그런 공포.

 

뜬금없지만 그럴 때 나는, '1000번을 저어 만든 달고나 커피' 영상을 본다. 커피와 설탕을 1000번 저어볼 생각을 했다는 그 창의성에 놀라고달고나 커피를 마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깻죽지가 빠지도록 숟가락을 1000번 휘두르는 그 집념과 열정을 보면서 존경심을 느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영상의 압권은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다. 수 백 가지 드립이 난무하는 댓글 창은 마치 '너 거기 있니? 나도 여기 있어'라고 수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각자 몸을 움츠리고 이 시기를 버티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서로의 안녕을 비는 모습인 것만 같아 사랑스럽다.

 

다시 마스크를 낀 채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먼 훗날 내게 이 시기를 SF 영화로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스크 낀 사람들이 1000번 저은 달고나 커피 영상을 보며 키득거리는 듯한 영화를 찍어야지.

 

일상적인 공포를 사랑스러운 일상으로 견뎌내는 영화를 찍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