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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52호] 코로나19가 던진 질문과 숙제_이근화

이근화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졸업생 (정치계 근무)

 

2020 1월 여야가 총선 100일을 앞두고 야심 차게 공약을 발표했다. 여당은 무료 와이파이 전국 확대를 강조하며 기술과 데이터 강국으로의 발전을 다짐했고, 야당은 군인 정년 연장과 현역 2 3일 외박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복지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 여느 때와 같은 총선일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후, 코로나19 그 이름만큼이나 이 기이한 질병이 우리를 덮쳤고, 정치와 제도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들도 함께 던져졌다.

 

무엇을 해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이미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는 방법을 몰랐다.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과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하는지 몰랐다. 덮고 지나가기 바빴다. 급하게 수습하느라 외면한 징후들은 곪아 터져 더 큰 참사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제껏 정치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해왔다. 뚝딱 무엇을 안겨줄 것 같은 희망 섞인 선언을 해왔다. 그러나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2020년의 질병은 우리에게 사람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본질이자 사회의 기본적인 역할이 아닌지 되묻는다.

 

가장 일상적인 것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인간이 배운 것이 있다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경험한 데 있다. 특히 더 빠르고, 편리하고, 세련되고 화려한 것을 쫓아온 현대의 시민들에게 코로나19  그저에 지나지 않았던 당연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동시에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이 의식주의 불편을 경험하며 인간생활의 기본이 불안한 이들의 심정을 경험했다.  나아가 의식주의 자유로움이야 말로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생활의 핵심 요소임을 다시금 인지하게 했다.

 

명도 좋고 실도 좋은 말로써 정치적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통용되어야 한다.  

한 정치인은 명은 좋으나 실이 없는 말 중에 하나가 진정성이라며 정치에서 진정성은 허망한 담론이라 한국사회에서의 정치를 비판한 바 있다. 무능한데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읍소,  얼마나 간절한 마음에 해당하는 개념이 한국 정치권에서 정치적 진정성으로 통용되어온 것이다. 일부 동의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이루고, 촛불로 정권을 교체한 이 사회의 국민들에게 정치적 진정성은 그저 알맹이 없는 감정적 호소 그 이상으로 인지한다. 정부의 시행착오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정부의 노력의 과정과 성과를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이들이다. 잘못된 언행에 대해선 과감하게 채찍을 들고 심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살아있다.

마스크를 끼고 무뚝뚝하게 걸어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대로변에 멈춰 선다. 유세차를 쳐다보고 후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말과 눈빛을 예리하게 듣고 본다. 출근길 인사를 하는 후보를 향해 창문을 내리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다가와 두 손을 꼭 잡으며 눈을 맞춘다. 시장 한복판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만남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하늘길이 막히고 중소상공인의 삶은 더욱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자 투표장으로 향한다.  

 

코로나19는 분명 우리사회가 겪은 크나큰 재앙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호흡질환의 일상의 모습들을 모두 바꿔 놓았고 삶의 규칙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코로나 국면은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정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장 기본에 뿌리내린 형태여야 한다고 말한다.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자유롭고 기본적인 일상이 유지되는 것’, 그리고 허울뿐인 외침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국가의 운영이 가능케 하는 것. 코로나19 2020년의 정치에 던진 질문과 숙제를 정치권이 답을 해나갈 차례다.